시린 비가 내리고 밤공기는 어느새 스산해졌다 . 거리의 나무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고 있다 .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 움츠려 들기 쉬운 요즘이다 . 하지만 대한민국의 단 한 곳 , 제주도만큼은 다른다 . 왠지 모를 쓸쓸함에 마음이 공허하다면 , 늘 푸른 제주도 그 푸른 밤을 맞이하러 떠나보자 .

“ 쓸쓸해지면 푸른 제주도로 옵서예 ”
서울에서 제주도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 중국을 그 정도의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둔다면 가까운 곳의 해외여행을 하는 듯한 마음이 든다 . 가을이 다가옴에 따라 꽤 추워진 날씨에 두툼한 옷을 입고서도 여벌의 옷까지 챙겨왔지만 , 제주도에 도착하자 무용지물임을 깨닫게 된다 . 그러나 바다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만큼은 녹록지가 않다 . 제주도에 많은 것 . 돌 , 여자 , 그리고 바람 .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야자수다 . 쌀쌀한 날씨와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금방 그것이 제주도만의 매력임을 알게 된다 . 야자수뿐만 아니다 .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이 길가에 도로가에 줄지어 서있다 . 특히 많이 보이는 키가 큰 삼나무는 귤나무를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야 된다는 사연을 가지고 귤나무 옆에 바람막이 나무로 서 있다 . 바람을 온 몸으로 흔들흔들 막으며 저 아래의 귤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심어진 삼나무의 사명이 이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왠지 애잔하다 .
“ 추운 육지에서 마음이 쓸쓸해지거나 추워지면 언제든지 제주도로 옵서예 . 제주도는 이런 푸르름으로 위안을 주니까요 .”
이 택시기사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을까 . 말투에 나고 자란 사람만이 가지는 뿌듯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온다 . 택시 안에서 밀려오는 피곤함에 눈을 좀 붙이려는 시도가 창밖에 스치는 아름다운 반짝이는 풍경에 무산되고 만다 . 풍경들은 바다와 태양이 만들어낸 ‘ 자연스러움 ’ 으로 말 그대로 반짝이고 있다 .


렌터카를 몰고 기생화산의 분화구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산굼부리로 향했다 . 산굼부리 입구에서 산굼부리까지는 걸어서 20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 걸어가는 길은 이곳을 많이 찾는 관광객을 위해 잘 꾸며 놓았다는 인상이 든다 . 주변 사물들과 사람마저 숨죽인 이곳을 걷고 있자니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를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
자연이 만들어낸 벅찬 감동들은 늘 그렇듯 카메라 안에 결코 고스란히 담을 수 없다 . 어떻게 해도 성에 안차는 사진들은 사진작가들의 고뇌에서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마저 갖게 한다 .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 생전 처음 보는 광대한 갈대숲의 향연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포기하고 눈을 통해 마음이라는 필름에 새긴다 . 이제 이 광경은 삶에 지친 순간 , 아련히 떠오르는 아름다운 마음의 사진이 될 터다 .

한동안 시간을 들여 산굼부리를 머물고 내려와서는 제주도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에코랜드를 찾아갔다 . 에코랜드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자연에 가까운 넓은 호수와 그 호수를 건너는 소박한 나무 건널목이 있다 . 잔디로 만든 테디베어가 있는 포토존과 넓은 들판 가운데 네덜란드에를 떠나온 고독한 풍차가 있다 . 그리고 숲 속을 천천히 지나는 유럽풍의 빨간 기차가 숲 속의 기차여행을 완성한다 .
기다림이 여행이 되는 곳
제주도 여행에 긴박함과 조급함이란 없다 . 제주도에서 마라도를 연결하는 배가 한번 떠나면 다시 타기 까지 두 시간 가량을 기다려야한다 . 도시에서라면 그 기다리는 두 시간의 시간이 못 견디게 아까울 테지만 제주도에서의 기다림이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

여행의 본질이 자기 성찰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행자라면 예상치 못한 기다림의 시간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임도 인지한다 . 우연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인지 마라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곳 바로 옆에는 올레코스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주올레 10 코스가 있다 .
사람이 꾸민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한 , 바다를 마주한 갈대밭 사이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 그들은 애초부터 올레 10 코스를 잇는 송악산을 염두하고 걷기를 시작한 것이다 . 송악산에 들어서기 전에는 드라마 < 대장금 > 과 < 인생은 아름다워 > 촬영지가 있다 . 그 주변에는 한류열풍을 대변하듯 중국어와 일본어가 들려온다 .
그러나 올레 10 코스의 길들은 촬영지 표지판마저 이질감이 들 정도로 자연에 흡수돼 있다 . 송악산 코스에 들어서면 산을 오른다기보다 산책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산으로 가는 이동로를 완만하게 만들어 놓았다 . 코스 중간 중간에는 사람을 기다리는 외로운 벤치가 하나씩 있다 . 벤치를 한곳에 여러 개 만들지 않은 사람의 의도가 충분히 짐작이 간다 . 바다를 보며 올라가다 보면 저 멀리 곧 가려고 하는 마라도가 보인다 .


오늘처럼 맑은 날은 제주도를 여행하는 것은 정말 운이 좋다고 했던 택시기사의 말이 떠오른다 . 마치 맑은 날 산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은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이라는 관용어구적이지만 , 그럼에도 더 없이 감격적일 수밖에 없는 감동을 설명하는 것 같다 .
송악산 코스를 끝까지 다 오른 뒤 내려오면 마라도로 가는 배가 떠나 버릴 터였다 . 이처럼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쪼개서 올레길을 걷는 것은 올레길이 가진 의미를 퇴색하는 일이었다 . 올레길은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걸어야할 사색의 길이다 .
마라도로 가는 배는 비교적 그 크기가 작아 바람에 많이 흔들렸다 . 이동 중에 책을 읽는 다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시간활용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바다 한 가운데 있다는 경이로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몸을 맡긴다면 배 멀미는 없다 .
30 분정도 배를 타면 마라도에 도착한다 . 생각보다 작은 마라도는 최남단이라고 더 따뜻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 바람막이 나무 , 애잔한 삼나무가 많은 것도 아니고 큰 건물들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마주해야 한다 .
마라도는 우선 조용하다 . 자연스럽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생필품을 구매하러 가기위해 배를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한다 . 마라도를 둘러보기 위해 작은 렌터카를 빌릴 수도 있지만 두어 시간 정도 천천히 걷는 것이 마라도와 더 어울린다 . 청명한 하늘과 바다와 섬을 구분 짓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울타리를 따라 걸으면 소박한 등대와 성당과 초콜릿박물관이 연이어 나타난다 . 그러나 사실 마라도에는 볼거리가 아닌 여유로운 평화의 시간이 넘친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

다시 돌아오는 배를 타고 제주도에 닿아 하늘을 본다 . 아직은 해가지지 않았지만 겨울의 밤은 일러 곧 별이 반짝일 것이라는 암시가 보인다 . 그리고 제주도의 밤은 낮과 같이 푸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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