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냄새 물씬… 이것이 사람 사는 맛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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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직거래하는 ‘5678행복장터열차’

출·퇴근시간, 굳은 표정에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 넘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곳. 지하철이다.

그런데 이 삭막한 지하철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에 장터가 생기는가하면, 물 없이 샴푸하는 미용실과 오다가다 볼 수 있는 공연장까지 생겼다. 지하철의 영역이 교통수단에서 ‘삶의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고향냄새 물씬 나는 ‘5678행복장터열차’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생기가 넘치는 행복장터열차,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다.

#‘가짜 꿀만 있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5678행복장터열차’는 지난 1월부터 안전운행을 위한 예비선로 중간에 8칸짜리 열차를 장터로 꾸미고, 팔도 지자체에서 인증 받은 특산물을 판매하기 시작한 장터다. 농민이든 어민이든 생산자가 직접 나서서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인 것. 이런 기가 막힌 생각은 자매결연을 통해 농촌봉사활동을 추진하면서 농가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접한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장터열차는 매주 화·수·목요일마다 다른 시·도에서 직거래 장터를 연다. 첫째주는 강원도, 셋째주는 전라남도, 둘째주와 넷째주는 전국팔도에서 농·특산물을 판매한다.

1량에서 ‘가짜 꿀만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유지되겠습니까? 진짜 토종꿀도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맨 처음 눈길을 끈다. 시골특유에 귀여운 순박함이다. 꿀이름도 ‘양심토종꿀’로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평소 마트에서 보던 꿀과는 때깔부터가 다른 높이 25cm정도 하는 꿀이 15만원이다. 꿀을 담은 유리병은 포장 스티커도 없고 온 것 그대로 황금색 꿀만 담겨있다. 그 옆에는 ‘참맛 나는 닭갈비’가 역시나 소박한 포장으로 담겨져 거품을 뺀 안전한 먹거리임을 드러낸다. 가공공장의 90%가 속초에 있는 속초 노가리는 40마리에 15,000원이다. 또 생으로 먹어도 시원한 맛이 일품인 참마는 흙이 묻어 있는 것 그대로 구매할 수 있다.

찾아간 날은 달의 첫째주로 강원도가 지하철 8량을 도의 특산물로 가득 채웠던 날이다. 지하철을 기다리기가 지루한 사람들과 처음부터 장터열차를 목적지로 온 사람들이 뒤섞여 장터열차 안으로 들어간다. 장터열차의 안과 밖은 고작 열 발자국 차이지만 장터열차 그 안은 생기가 넘친다. 한발 내 딛자 재래시장에서나 날 법한 구수한 시골장터 냄새가 ‘훅’하고 코끝으로 들어온다.

장터열차에서 판매하는 먹을 수 있는 농·식품 대다수는 시식을 해보고 구매 할 수 있다.

잡곡이 유명한 영월에서는 15가지 정도의 잡곡을 큼지막한 통에 담아서 판매한다. 영농조합에서는 일괄구매해서 일괄판매를 하기 때문에 판매자와 영농조합이 서로 이득이 된다. 서로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말 할수록 늘어나는 450개의 된장독’

퇴근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장터열차에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장터에 온 사람들은 남녀노소 그 연령층도 다양하지만, 주로 일을 가진 주부들이 가족의 저녁식탁에 오를 반찬거리를 구매하러 퇴근길 많이 들른다.

한 주부가 된장에 눈길을 주자 집안에 된장독이 450개 있다는 ‘강릉 해맞이된장’ 판매자는 말을 할수록 된장독 개수가 늘어난다고 멋쩍게 웃는다. 강릉에서는 된장뿐만 아니라 매실고추장과 청국장도 함께 판매한다. 가격은 4,000원~5,000원 선이다.

표고버섯은 버섯은 1.2kg에 10,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다. 버섯을 조리되지 않은 채로 먹으면 버섯 특유의 향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강원도에서 판매하는 새송이 버섯 특산물은 부담스러운 향이 없이 깔끔하다. 실제로 새송이 버섯을 썰어서 소금참기름에 찍어 시식할 수 있도록 준비했는데 판매자들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시식을 해 보면 질감과 향이 육류를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역시 강원도 청정 지역의 돼지만 판매해 품질을 보증한다. 정육점의 칙칙한 조명 아래 보던 돼지고기와는 다르게 지하철의 밝은 조명 아래서도 선명한 붉은 빛깔을 자랑한다.

직접 손으로 만든 엿을 가져온 판매자도 있다. 가마솥에 오랜 시간 고아서 갱엿을 만든다고 한다. 시중에서 파는 네모반듯한 엿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모양의 엄지손가락만한 엿이다. 갱엿은 그리 달지 않으면서 구수한 맛이 난다. 엿을 파는 판매자는 지나가는 구매자들의 입 속에 무턱대고 엿을 넣어 준다. 옥수수를 파는 판매자도 역시나 옥수수를 하나 입에 덥석 물려준다. 시골의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즉석에서 옥수수를 쪄서 한 묶음에 5,000원에 판매한다.

이름 모를 한약재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영월에서 온 판매자도 보인다. 구매자들은 판매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들이 필요한 한약재를 적절하게 구매한다. 황기 같은 경우는 600g에 60,000원이다. 한약재들은 미리 썰려 있지 않고 다발로 묶여져 처음의 모양을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어 안전하다.

신선제품들은 판매하는 날마다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서 들여와 항상 신선함을 유지한다. 곤드레와 누리대 등 각종 나물은 강원도의 고랭지 농업으로 인한 온도차이로 그 향이 일품이다. 신선한 양이 매력적인 취나물로 만든 취떡도 보인다. 특히 누리대는 강원도에서 주로 먹는 나물로 향이 독특하고 강해 돼지와 같은 누린내가 나는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다. 너무 커서 산삼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인 더덕은 2kg에 80,000원 이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대다수가 목적구매를 하기 때문에 장터열차에 오기 전에 미리 살 것을 비교, 염두 해 두고 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터열차 농·특산물의 품질은 보증된다. 눈썰미 매서운 주부들도 사려고 한 농·특산물을 직접 보고 구매하면서 만족감과 흡족감을 느끼며 돌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어디 도심 내 재래장터와 비교 될 수도 없는 장터열차의 시골인심이다. 지금도 행복장터열차 판매자들의 순박한 웃음과 넉넉한 인심은 삭막한 도시생활, 사람들의 마음 속 고향이 되고 있다.

Tip

청담역 예비선로에서 열리는 ‘5678행복장터열차’는 매주 화, 수, 목요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열린다. 첫째주는 강원도, 셋째주는 전라남도, 둘째주와 넷째주는 전국팔도에서 농·특산물을 판매한다.

<인터뷰>

“겉포장이 아닌 품질로 평가해주세요”

박창원 강원도청 진품센터 점장

지하철 7호선 청담역 5678행복장터열차에서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선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박창원 강원도청 진품센터 점장을 만났다. 11개의 시·군 32개 업체가 장터열차에 참가한 강원도에서는 매달 첫 주에 열차를 임대한다.

장터열차에서 제일 인기 있는 상품은 어떤 상품이냐는 질문에 첫 시작부터 박창원 점장의 구수한 사투리가 정겹다.

“다 인기가 많지요”

박창원 점장은 강원도는 산나물이 유명해 소비자들이 산나물을 믿고 구매한다고 슬쩍 귀띔하며 인재의 두릅, 양귀, 곰취와 영월의 곤드레 같은 산나물이 많이 팔린다고 말한다. 최근에 비가 많이 오고 일조량이 부족해서 나물이 많이 안 나와 나물을 사려는 소비자들에 비해 물량이 많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지역특산품으로는 지역브랜드인 ‘하이로 한우’를 들었다. 하이로 한우는 강원도의 대관령과 횡성을 제외한 지역의 품질이 좋은 한우를 통합한 브랜드다. 직거래를 통해 유통비용을 최대한 절감해 질 좋은 한우를 싼값에 구매할 수 있다. 한우뿐만 아니라 강원도의 잡곡, 건어물, 젓갈, 옥수수, 취떡, 찐빵 같은 지역 특산품도 시가보다 20% 가량 저렴하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행복장터는 직거래로 함으로써 직접 보고, 맛보고, 만져보면서 질이 좋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행복장터에서 이뤄지는 도매는 매우 적은 영리를 취하기 때문에 홍보를 위한 것이 더 크다. 제값을 받으면서 거품을 빼는 것이다. 신선도가 필요한 나물이나 버섯 같은 제품들은 매일 매일 현지에서 공급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항상 신선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강원도의 특산물에 자긍심을 갖고 말하는 박창원 점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테마열차도 계획 중이다. 정선의 토마토 열차나 포도열차를 추진 중이며 조만간 서울 시민에게 시기적절하게 알릴계획이다”며 “포장이 미흡하더라도 내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준비한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믿어주길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