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영 칼럼] 곡학아세 [曲學阿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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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원=송태영 칼럼니스트)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가 무척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오늘은 <규작의 문학교실>이 열리는 날이고, 또 약속도 있어서 조금 일찍 을지로 사무실로 나왔지만, 또 이게 무슨 낭패인지 내 개인적인 문제가 생겨서, 사무실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1층에 있는 통유리 커피숍에 앉아 있노라니, 모처럼 시원한 소나기가 내린다. 4계절이 있는 우리는 이래서 삶의 희망을 항상 놓지 않는 모양이다. 또 그래서 4계절이 있는 민족과 국가가 상대적으로 번성하는 이유이기도 할게다. 오늘 아무리 더워도 곧 서늘한 가을이 오겠지. 오늘 아무리 추워도 곧 따뜻한 봄이 오겠지. 오늘 아무리 태양이 작열해도 이런 소나기가 대지를 식혀 주겠지.

어제는 뉴스에 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니 자랑스러웠던 국군의 장군들이 문재인에게 “충성맹세”하는 인증사진을 보면서 서글프다 못해 분기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장군이라면…. 명예보다 더 중요할게 뭐가 있겠는가?

무슨 경제칼럼이니 사설이니 하면서 유명대학교수들의 글을 보니, 그냥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식이 아무리 없어도, 이 세상을 먹고 살기 위해 제대로 살아본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작금 경제침체의 원인을 온갖 교묘한 말장난으로 본질을 糊塗(호도)하고 있다. 저들이 지식인인가. 교수? 박사? 솔직히 내 눈에는 버러지(蟲) 너댓 마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게이츠도 그저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땐 맥도날드를 먹는다고 했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국 한정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기껏해야 조금더 맛있는 걸 먹느냐 마느냐의 차이이지 그저 삼시세끼를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뭐가 그리 욕심이 나서, 스스로의 이름 석자를 누대에 더럽히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일까. 그저 “바람처럼 살다가 이슬처럼 가는 인생’에서 “내가 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최소한 이름 석자라도 남기고 가면 그 또한 얼마나 행운인가. 그러나 그 이름 석자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 애써 비싼 돈 들여 밤을 새워 배운 학문을 저렇게 “곡학아세”하면서 살고 싶을까.

소나기가 정말 시원하게 내리고 있다. 몬순 지역의 우기가 연상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가 내린다. 아.. 이 대한민국이 저렇게 시원하게 청소되는 날을 하루빨리 보고싶다.

“곡학아세”의 어원

한(漢)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찾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을 등용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90세의 고령이었으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 같은 선비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사이비(似而非)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少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을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늙은이라고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서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私設)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일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 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란 말을 들었네. 그러니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원고생의 말이 끝나자 공손홍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매한 인격과 학식이 높은 원고생과 같은 눈앞의 태산북두(泰山北斗)를 알아 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손홍은 당장 지난 날의 무례를 사과하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글: 송태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