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기와 아이들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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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터인가 아이들이 칼로 연필을 깎지 못한다.

화실에 오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이를 막론하고 칼로 연필을 깎을 줄 아는 아이들이 없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참으로 큰 문제이다. 성능 좋은 연필 깎이도 많고 무엇보다 칼이 가진 위험성 때문에 부모님들이 칼을 쥐고 뭘 하질 못하게 하는 것이다.

칼이란 불과 더불어 어렸을 때 처음 경험하는 위험한 도구에 해당된다. 양면성을 지닌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잘 쓰면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되고 잘 못 쓰면 상처를 입게 되는…..

연필을 깎을 줄 알아야 비로소 연필의 심이 굵기도 하고, 얇기도 하며, 단단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한, 섬세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이 흑연을 감고 있는 나무가 그리 만만한 재료가 아니다. 처음엔 대부분 연필을 깎는게 아니라 연필을 토막 치듯 잘라내는 미숙함부터 시작한다. 이 때가 중요한데, 절대 나무라거나 아는체 하면 안된다. 그냥 깎는걸 여러 번 보여 주면 된다.

아이들이 “저, 잘 못깎겠어요. 잘 안되는데요” 하더라도 “그냥 다 깎아 없애도 되니까 해봐.” (물론 속으론 저거 한자루에 1200원인데.. 어우야…속이 쓰리지만) 이럴 필요가 있다. 칼로 연필을 기계처럼 깎는 단계까지 가면 균형감과, 인내심 모두가 단단한 결정체로 아이들의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직접 깎으면서 연필을 납작하게 깎아서 눌린 심도 만들어 보고, 부러뜨려 막대기 같은 갈필의 효과도 느껴보고, 심을 갈고 나온 가루로 번지게 하는 느낌도 두루 경험 할 수 있다. 연필을 깎을 수 있은 후에라야 판화의 조각도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톱이나, 펜치 등의 여러 공구와 연장으로 관심이 옮겨 간다.

사실 연필만 칼로 잘 깎아도 많은 부분의 가능성이 열린다. 절단할 수 있는 많은 연장들을 이해할 수 있고 기계화 할 수 있는 상상력도 가능하다. 포토샵, 페인터 등의 2d 그래픽 프로그램의 브러쉬도 현실의 재현이기 때문에 연필을 잘 모르는 기술자 였다면 그런 브러쉬 팔레트를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드는 건 고사하고 그래퍼들 중에 그 브러쉬 툴을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연필을 자세히 다루어 본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많은 컨텐츠를 다른 방향을 갖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쓸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 내지 컴터 관련 it기술이 우리의 삶에 함께하기 시작한건 불과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시적인 우리의 뇌는 오랫동안 운동신경과 손의 조작 능력에 의해 발달해 왔다는 것을…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실물에 대한 감각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연필깎이 말고 칼을 쥐어 주는 것만으로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물론, 피 보는 가능성을 포함해서 말이다.

글 이미지: 정명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