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해체에 앞장서는 똥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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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앨범 속에서 빠져나온 초급장교 시절, 함정근무 때 찍은 사진이 눈에 뜨였다. 그 사진에 함께 나온 후배 모습을 보면서, 그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가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폐함되었지만 LSM이란 소형 상륙함의 작전관(당시 중위)으로 근무 중이었을 때였다. 수송임무 후, 인천 외항에 투묘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함장이 잠시 부재 중에 급히 보고할 일이 생겼다.

그 당시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함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주위에 있던 타 함정에 갔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하고, 같이 당직을 서던 그 후배 통신관(소위)에게, 주위 함정에 알아보라 지시하고는, 전탐실 쪽에 일이 있어 함교를 내려갔다.

그런데 잠시후 통신관이 얼굴이 누렇게 떠서 내려 오더니,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한다.
무슨 일이냐 하니, 함장을 찾는다고 다른 배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통신 감청부대로부터 통신보안을 어겼다는 신호에 이어, 직책을 묻는 전화가 왔기에 응답 안한 채, 바로 끊고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인천지역은 전방 접적지역으로 간주되어, 무선 전화기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암호나 음어를 쓰도록 지시받고 있었는데, 그 후배는 경험이 없다 보니 평문으로, 통화를 하다가 걸린 모양이었다.

그런 후 한 달인가 지났는데, 모월모일에 통신보안 위반했던 담당자를 징계처리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함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고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 여쭤보니, 함장은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상부에서 이렇게 정식공문으로 지시가 내려왔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면서, 나보고 징계위원장을 맡아 징계 처리하라 한다.

당시 보안대(지금의 기무사)는 파워가 막강해 다들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지시를 받은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 한창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을, 사관학교를 나온 초임장교가 징계를 받는다면, 그 정신적 충격이 클 것이 자명했다.
개인 비리 때문도 아니고 나름 열심히 일한다고 하다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억울한 느낌도 들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징계를 받게 해서는 안된단 생각에, 통신보안과 관련된 규정집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군 통신의 3대 요소로 정확성, 신속성, 보안성을 정의하고 있었는데, 그 중 보안성을 위배해 걸린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보안성보다는 신속성이 더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평문으로 통신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내세워, 징계 위원회 결과, 만장일치로 무죄로 결정되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함장에게 가져갔다.

함장이 괜찮겠냐며, 결재하는 걸 망설이기에, 일단 올려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해도 되니, 그대로 결재해 달라고 주장하자, 함장도 그대로 상부에 올렸다.
그리고 나서 한참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추가 지시가 없었고 이 건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요즘 군의 고위급 장교들의 국방안보와 관련된 무책임한 행태들에 대해, 비난하고 질책하는 국민들이 많다.

나는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요즘의 공무원들이 비난받는 것과 똑같은 이유~ 영혼이 없는 관료같은 일처리 태도에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설사 상부의 정치적인 차원의 지시가 있었다 치더라도, 국가를 보위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 별을 단 장군급들이, 나같은 일개 초급장교까지도 고민하면서, 문제 해결책을 찾었던 그 정도 수준의 생각마저도 안하고, 무뇌아처럼, 나라 안보를 허무는 자들의 대변인과 허수아비 노릇만 한다는 게 속터진다.

만일 조금이라도 군 입장에서, 또 나라 입장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했다면, 남북군사합의 같은 황당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려니와, 설사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그 이후 실행조치 취하는 과정에서도, 최대 한도로 지연시키려 했을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노력의 흔적은 하나도 안보이고, 오히려 안보를 해체하는데, 다른 어느 부처보다 앞장섰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꼴이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똥별 소리 듣고, 추후 이적죄 처벌소리 나와도 할 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군 선배 입장에서, 지금이라도 제 정신차려, 국민의 신뢰를 되 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글: 권오현/페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