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平澤) 미군기지 방문
(미디어원=이연실 기자) ‘KMA(Korea Military Academy)역사포럼'(회장 김칠주 박사, 육사 38기)에서 평택에 자리 잡은 한미연합사를 방문했다. 부사령관인 강신철 대장의 환대를 받았다. 그의 인문학적인 소양도 돋보였다. 그는 문무를 겸비한 대한민국의 진정한 장군이자 리더였다. 평택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특별히 선발된 최우수 정예 요원들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 군인들은 통역 없이도 미군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우수 인재들이다
평택 기지는 프랑스의 파리처럼 큰 산이 아예 없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평야지대였다. 도시가 ‘평택(平澤: 평평할 평, 못택)’이란 지명처럼 평평한 지역이다. 여의도 5배 면적이라서 군사 도시를 실감나게 했다. 전략적이고 전술적인 기지이다. 부대 안에는 없는 게 없다. 헬기장, 비행장, 훈련장, 기숙사, 학교, 병원, 상가, 대규모 체육시설 등 규모가 엄청나다. 그 안에서 모든 게 가능하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정확히 꿰고 있는 미국, 그들의 강한 국방력과 철저한 시스템 앞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평택 미군기지로 불리는 그곳은 마치 미국의 어느 도시 같고 실제로 카드를 사용하면 사용처가 LA로 나온다. 전세계 미군기지 중에서 가장 크고 최신식이며 모든 면에서 최고 기지라 할 수 있다.
미국은 군사 시스템도 철저한 국가가 아닌가? 군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활동한 이들이 사회에 나가 국가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군에서 배운 기술이 민간 사업도 발전시키는가 하면 지구촌을 움직인다. 미국이 최강의 선진국인 것은 군대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미국과의 한미연합이 곧 혈맹의 인연이 되어 우리로서는 행운이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동맹이나 산업화를 성공시킨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열정이 없었다면 한국의 운명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연합군의 역사가 깊다. 신라시대 나당 연합군, 조선시대 조명 연합군, 21세기 한미연합군까지 두 국가는 전략적 파트너이다. 서로의 장점과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푸르른 5월이다. 산천이 누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이다. 아무런 준비도 못한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도둑처럼 북한이 우리를 쳐들어 왔다. 머지않아서 6.25남침전쟁이 시작된 6월이다. 인류 역사 자체가 전쟁의 역사가 아니던가? 그동안 인류는 전쟁으로 인해서 최소 33억 명 이상 희생됐다. 21세기에는 영토를 빼앗는 전쟁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구촌 사람들도 국제사회도 믿었다. 보라!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다.
군인이든 사업가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모두 애국자이다. 나라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어찌 사업을 할 수 있으랴? 쿠르드 난민들, 전세계를 떠돌거나 구걸하는 여러 나라 출신들의 난민들을 보자. 그들은 과거 한국인보다 훨씬 잘 살았었다 고유의 문화도 발전시킨 사람들이 지금은 얼마나 비참한가?
특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고마운 존재이다. 선진국일수록 군인에 대한 예우가 극진하다. 435만 평 규모의 평택 군 기지를 건설할 때에도 너무 넓어서 토지를 보러 다니던 군부대 관계자들이 길을 잃기도 했다. 그건 바로 장차 나라가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평택과 제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군인이 폭도들에 의해 감금을 당하거나 폭행도 당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선진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연평도 해전 참상의 흔적을 두 가지 보았다. 두 동강이 나버린 천안함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현실을 다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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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가를 부르는 대신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과 손을 잡은 건 신의 한 수였다. 탐방 후 돌아오며 바라본 논에서는 벼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도로나 주택가에 덩쿨장미가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바라보든지 매우 평화롭다. 푸르른 가로수 길을 따라 달리던 순간에도 전쟁으로 울부짖는 지구촌 이웃들이 계속 떠올랐다. 한 순간에 난민이 되어 구걸용 밥그릇을 들고서 아우성인 난민들, 삶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모두 내일도 미래도 기약을 할 수 없는 이들이다. 우리도 ‘설마’하며 단잠을 자던 1950년 초여름, 3일 만에 수도 서울은 적의 손에 넘어갔고 피난민의 거처가 된 부산을 제외하고 전국이 공산주의자들의 무대가 된 역사도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상무정신도 갖춰야 나라가 바로 서리라. 미국은 프리만(Freeman) 대령을 예우해서 미군기지의 어느 건물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프리만홀’로 지어놓은 걸 봤다. 미국은 군인의 명예를 높이고 군인정신과 애국정신을 영구히 기린다. 미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확실하고 전세계에 모범도 보인다.
평화와 안정없이 오늘날의 미국은 불가능 했다. 한국도 국가의 안보가 최우선 돼야 미래가 있고 국민 또한 평화롭게 살 수가 있다. 체 게바라는 순수한 의학도였으나 몽상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현실을 직시했었고 미래 50년 후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의 지도자였다. 오늘날 남미와 쿠바는 어찌 되었으며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지구촌에서 평가를 받고 있는가?
역사에는 가정이 의미가 없다. 현실은 냉혹하다. 그리고 지구촌은 나날이 무섭게 돌아간다. 미국과의 협조로 군사 강국이 된 대한민국, 지구촌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한국의 놀라운 번영이 가능하도록 나라를 지킨 군인들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나라와 군인을 사랑하는 정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