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이정찬 기자) 이스라엘. 아시아 대륙인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경상도 크기의 나라, 하지만 세계적인 기술대국으로 첨단기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라, 예수의 탄생으로 알려진 나라다.

성서 속 수천 년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곳이며, 매년 수백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聖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의 영향력은 대중의 삶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있기에, 여행지를 방문하기 전 그들의 종교를 살피고 갈 수 있다면 더욱 내밀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끊이지 않는 전쟁, 고난과 역경의 역사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는 남부 지역의 유명 관광지 쿰란(Qumran)과 마사다(Masada) 그리고 사해로의 여행은 그곳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을 감동 속에 느끼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세계 4대 문명 중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와 접해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러하듯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패권을 가진 자에 종속될 수밖에 없던 패자였기에 고난과 역경의 역사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스라엘 남부의 유명 관광지 쿰란 유적

쿰란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의 65개 국립공원 중 하나다. BC 1세기에 당시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영적 순수를 추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에서 집단생활을 했는데, A.D.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 이곳 역시 파괴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죽기 전 절벽의 동굴에 숨겨 놓았던 고대 성경 사본은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이라 불리며 가장 오래된 성서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사해문서가 2천 년 세월을 고스란히 견디어 낸 것은 바로 건조한 날씨 덕분이라 한다.

쿰란 지역에서는 에세네파들의 2천 년 전 삶의 현장을 유적지에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성서사본을 복사하는 방, 주민들이 대추열매를 말리는 보도, 도예가의 작업장, 휴게실 및 정화 의식용 욕조 등은 당시의 생활을 짐작케 한다.

헤로데스의 야망과 최후, 마사다 요새

쿰란에서 남쪽으로 32킬로미터를 내려가면 다윗이 사울을 살려 주었다는 엔게디 국립공원(ein Gedi)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다시 18킬로미터를 더 가면 유명한 관광지 마사다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흥미롭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마사다에서는 인내와 힘, 신앙과 굴복 그리고 야망과 비극적 종말의 순간을 생생히 그려 볼 수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 군인과 학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선조들의 용기와 신념을 담아가곤 한다.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마사다

마사다(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는 기원전 40년부터 기원전 30년 사이에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했던 헤로데스(헤롯왕)에 의해 별장 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피난처로 지어졌다고 한다. 사해에서 멀지 않은 곳의 고도 410미터 산은 평지에서 솟아올라 상당한 높이이며, 정면은 깎아지른 직벽이고 정상에는 길이 600미터, 너비 320미터의 평탄한 지대가 천여 명의 군사를 수용할 수 있으니 가히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은 이곳에서 몇 년이고 살 수 있도록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있는 물 저장탱크와 곡물창고, 병기고를 만들었으며 호화스러운 궁전을 지었지만 일생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한다.

B.C. 68년 로마에 대항한 대반란이 시작되었을 때 마사다는 열심당파가 차지했고, 결국 그들은 이 요새에서 최후를 맞는다. 72년에 로마의 장군 플라비우스 실바가 마사다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난공불락의 요새를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 로마군은 궁리 끝에 마침내 요새의 뒤쪽, 서쪽 능선의 경사로를 흙과 돌 그리고 나무로 쌓아 올려 마침내 요새와 같은 높이에 이르렀다. A.D 73년, 마사다의 꼭대기에서 저항하던 960명의 열심당은 포로가 되어 굴욕을 당하느니 자결을 선택하기로 하고 동이 트기 전에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택한 이들의 영웅담과 최정예 로마군을 맞아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운 무용담은 우연히 살아남은 노파와 두 여자아이의 입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유적지는 기후와 지역 특성상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정교한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유적지 중 으뜸은 아래 협곡을 내다볼 수 있는 세 개의 바위 테라스 위에 지어진 헤로데스의 북쪽 궁전이다. 궁전 가까운 곳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과 벽화로 장식된 벽들이 있는 거대한 로마 스타일의 욕실이 있으며, 이외에도 유대교 세례욕실, 저장실, 전망탑, 그리고 마사다 역사와 관련된 예배당 같은 많은 건축물과 저장실, 채색된 도자기, 동전들과 같은 공예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상에서 로마군이 진을 쳤다는 곳과 흙과 돌, 나무로 돋우었다는 서쪽 경사로를 바라보면, 2천 년 전 전투의 함성,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를 독려하는 결기 가득한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해, 죽음의 바다가 아닌 생(生)의 바다

유입량의 감소로 사해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쿰란 엔게디를 거쳐 마사다로 오는 동안 옥빛 호수가 도로 왼편으로 함께 하니 이 호수가 바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Dead Sea)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 해발 -418미터에 위치한 사해는 북쪽 요르단강에서 물이 유입되지만 아래쪽에 유출구는 없다(해마다 조금씩 낮아진다). 사해 지역의 건조한 기후로 흘러들어오는 수량과 같은 양의 수분이 동시에 증발되어 염분농도는 최고 리터당 340그램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호수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으며 사해(死海)라는 이름도 여기서 기인한다.

사해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헬스 스파”로도 불리는데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검은 사해 진흙과 미네랄 온천수 그리고 사해 소금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는다. 사해 진흙과 온천수는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또한 건조한 사막 기후 덕에 오염되지 않고 꽃가루가 없는 맑은 공기는 산소와 브롬 및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천식과 폐, 심장질환에 좋고, 일 년 내 비추는 강렬한 태양은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대표적 휴양 요양지역이다.

사해에서는 몸이 뜨는 현상을 즐길 수 있다.

사해 주변에는 국제규모의 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고 관광기반 시설이 훌륭하게 조성돼있다. 사람 몸이 뜨는 것으로 유명한 사해에서는 직접 체험 외에도 유대광야의 사막투어, 낙타투어, 지프 투어, 베두인 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쿰란, 마사다, 사해 여행은 순례자가 아닐지라도 너무나 감동적이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것이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서 느끼는 끊임없는 흥분과 긴장감으로 짧지 않은 여정이 일순 끝난 듯하다. 이곳을 다시 찾을 즈음에는 투쟁과 대립의 역사가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바뀌어 더욱 아름다운 땅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가는 길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공항까지 직항노선으로 대한항공이 주3회 운항하고 있다. 국영 이스라엘항공인 엘알과 터키항공, 우즈벡항공, 네덜란드항공은 북경, 타슈켄트, 암스텔담을 경유지로 운항하고 있다. 직항의 경우 11시간정도 소요된다.

숙박
숙박은 호텔리조트 키부츠 외에도 아주 저렴한 호스텔도 이용 가능하다. 관광예약은 숙박 호텔의 프론트에서 가능하며,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직접 이용할 경우 센트럴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왕복권을 끊는 것이 좋다. 당일 관광도 좋지만 사해에서 1박 정도를 하는 것이 여행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여행 팁
이스라엘 여행에 있어 유의할 점은 출국 시 체류 기간 동안의 활동에 대하여 상당히 까다로운 일대일문답을 출입국관리 직원과 가져야 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사진: 이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