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기술인가?’ 인류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에게 사랑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사랑의 기술’은 1956년 첫 출간 이후 3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문예출판사에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표지를 입힌 ‘사랑의 기술’ 5판을 출간했으며, 4판에 실린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을 함께한 라이너 풍크 박사의 ‘사랑의 기술’ 50주년 기념판에 부치는 글은 5판에도 수록되어 있다.
프롬은 사랑을 ‘감정’의 영역이 아닌 ‘기술’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사회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연인들 사이에서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관습’과 ‘계산’이 대신 들어서 있다.
프롬은 현대 사회가 시장의 교환 원칙에 지배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인간의 가치도 결국 경제적 교환 가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인간의 사랑을 고갈시킨 외부적 원인이라고 말한다. 외부적 요인에 더해 프롬은 개인의 무의식층까지 파고들어가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이유를 밝혀낸다. 프롬은 인간이 참된 자아를 상실한 것이 사랑을 상실한 원인이라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의 상실, 즉 사랑하는 능력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 천착이나 종교적 설교, 도덕적 교훈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나 자신, 타인, 인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고 외쳐도, 또 모든 사람이 이러한 외침에 진심으로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사랑의 부재 현상이 극복되지는 않는다.
사랑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랑에 실패하고 점점 더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고, 점점 더 고립되고, 점점 더 뼈저린 고독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사랑하려는 노력의 실패는 사람에 대한 공포를 일으키고 자기 자신의 무능력을 은폐하기 위한 합리화에 급급하게 만든다. 분리 상태에서 불안과 고독이 두려우면서도 이 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사랑은 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가 된다. 사랑은 신이 준 능력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안이한 대답을 하기에는 현대 사회와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교묘해졌다.
그러므로 이제 사랑을 회복하는 데는 절실하게 기술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프롬은 우리가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실패하는 원인은 기술의 미숙성에 있다고 말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 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사랑의 기술을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밝혀놓았다.
프롬은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다.
‘사랑의 기술’에는 사랑에 대한 이론이나 사랑을 실천하는 기술 외에도 뛰어난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의 현대 문명과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전망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