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전

70년대 한국 비디오 아트 태동기부터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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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전시실 전경,제공:국립현대미술관

–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 소개
– 육근병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1988), 송주한·최은경 <매직 비주얼 터널>(1993), 문주 <시간의 바다>(1999) 등 1980~1990년대 중요 작품 재제작
– 11월 28일(목)부터 2020년 5월 31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디어원 공연전시] 요즘 미술관에서 비디오 아트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장르의 예술이다. 그럼 우리에게 비디오 아트를 각인시킨 때는 아마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1980년대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는 비디오 아트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비디오 아트는 1970년대 김구림, 박현기, 김영진, 이강소 등에 의해 이미 시작되었다.

비디오 아트의 등장은 역시 TV, VCR, 비디오 카메라, 컴퓨터 등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모해 왔다고 하겠다. 1970년대는 비디오 카메라가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대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는 당시 예술가들이 퍼포먼스, 비디오, 필름, 설치, 프로세스 아트 등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었던 장으로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1978년 제4회 《대구현대미술제》의 ‘VIDEO & FILM’ 부문에 참가한 이강소, 김영진, 이현재, 최병소, 박현기 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물의 모습과 신체의 반복적인 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하며 ‘시간성’과 ‘신체’를 중심으로 비디오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1977년 이후 김덕년과 장화진 역시 ‘영상’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그보다 이른 시기 해외에서는 곽덕준, 김순기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비디오 아트의 본격적인 전개는 박현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돌과 모니터를 중첩시키는 등, 자연물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과 실제 자연물을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실재와 환영, 실재와 재현의 문제에 주목하며 한국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다.

지난 28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 과천관에서는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전을 통해 70년대에서 90년대의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비디오 아트에서 시작하여 1980~1990년대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 그리고 영상 이미지와 서사에 주목한 1990년대 후반 싱글채널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세대별 특성과 변화를 조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과천관 2, 3층 전관을 활용하여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이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오래된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복원하여 선보이기도 한다.

전시는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 ‘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 ‘신체/퍼포먼스/비디오’, ‘사회, 서사, 비디오’, ‘대중 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등 7개 주제로 기술과 영상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변모, 진화했던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시대’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있다.

첫 번째로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70년대 한국 비디오 아트의 태동기를 살펴본다. 국내에서 비디오 아트는 김구림의 <걸레>(1974/2001)와 초기 필름 작품 <1/24초의 의미>(1969), 박현기의 초기작 <무제>(1979)를 비롯해, 김영진, 이강소 등 한국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던 1세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두 번째 ‘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에서는 기술과 뉴미디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탈 평면, 탈 장르, 탈 모더니즘이 한국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중반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경향을 살펴본다. 이 시기에는 조각이나 설치에 영상이 개입되는 ‘장치적’ 성격의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혼합매체와 설치, 오브제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전시장에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된 육근병의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1988), 송주한·최은경의 <매직 비주얼 터널>(1993) 등을 만날 수 있다.

송주한 최은경, 매직 비주얼 터널, 1993(2019), 디지털 영상, 거울, 라이트 박스, 팬시 라이트 등 설치, 각 6분, 4분, 작가 소장

송주한 최은경, 매직 비주얼 터널, 1993(2019), 디지털 영상, 거울, 라이트 박스, 팬시 라이트 등 설치, 각 6분, 4분, 작가 소장

세 번째 ‘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에서는 영상을 독립적으로 다루거나 영상 내러티브가 강조되는 싱글채널 비디오보다는 조각 및 설치와 함께 영상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한 비디오 조각/비디오 설치에 주목하였다. 영상의 내용을 다층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조각의 ‘움직임’에 주목한 문주, 안수진, 김형기, 올리버 그림, 나준기 등의 비디오 조각을 비롯하여 기억, 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숙명 등 보다 관념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었던 육태진, 김해민, 김영진, 조승호, 나경자 등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네 번째 ‘신체/퍼포먼스/비디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성, 정체성, 여성주의 담론의 등장과 함께 신체 미술과 퍼포먼스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 비디오 퍼포먼스를 살펴보고 있다. 오상길, 이윰, 장지희, 장지아, 구자영, 김승영 등의 신체/퍼포먼스 기반 영상 작품은 비디오 매체의 자기 반영적 특성을 이용하여 예술가의 몸을 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다섯 번째 ‘사회, 서사, 비디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세계화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국내 및 국제적 쟁점과 역사적 현실을 다룬 비디오 작품을 살펴본다. 이주, 유목을 작가의 경험, 기억과 연동한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인 김수자, IMF 외환위기를 다룬 이용백, 아시아를 여행하며 노란색을 착장한 사람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상의 함경아,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오경화, 육근병, 심철웅, 노재운, 서동화, 김범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여섯 번째 ‘대중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에서는 1990년대 정보통신매체와 영상매체의 확산 속에서 대중문화와 기술이 결합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노래방을 제작·설치한 이불과 광고, 애니메이션, 홈쇼핑 등 소비와 문화적 쟁점을 다룬 김태은, 김지현, 이이남, 심철웅 등의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일곱 번째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에서는 시간의 왜곡과 변형, 파편적이고 분절적 영상 편집, 소리와 영상의 교차충돌 등 비디오 매체가 가진 장치적 특성을 온전히 활용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영상매체 특유의 기법에 충실하며 제작된 싱글채널 비디오는, 시선의 파편적 전개, 시간의 비연속적 흐름, 시공간의 중첩과 교차 등을 구현하는 멀티채널 비디오로 전개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김세진, 박화영, 함양아, 서현석, 박혜성, 유비호, 한계륜, 문경원, 전준호 등의 초기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미술관에서 과거에 비해 비디오 아트가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예술 장르로 비해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는 색다른 기회임은 틀림없다고 하겠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내년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