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MMCA)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 展을 MMCA 서울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전시명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모든 사물과 관념을 뒤집어 생각하고 미술이라고 정의된 고정관념에 도전해온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한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은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고 하는 작가의 언명과 기성 조각의 문법에 도전한 그의‘비조각’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이승택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독자적 예술세계로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을 이끈 이승택의 60여 년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망하고자 마련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내년 3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비미술, 물질-비물질, 주체-대상의 경계를 끊임없이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이승택 작품의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특히 1960년대 주요 작품들을 재제작해 비조각을 향한 작가의 초기 작업을 되짚어보고 작가의 예술세계 전반에 내포된 무속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무속은 이승택이 서구 근대 조각 개념을 탈피하여 비조각의 세계, 작가가 ‘거꾸로’라고 명명한 이질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또한 이승택이 초기 작업부터 선보인 사진 매체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들, 특히 사진과 회화가 결합된 일명‘사진-회화(Photo Picture, 포토픽처)’를 통해 작가만의 거꾸로 미학을 새롭게 시도하고 조명한다.
이승택은 1960년대부터 전통 옹기를 비롯하여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 일상 사물들로 새로운 ‘재료 실험’에 몰두함으로써 당시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조각 개념과 결별하기 시작한다. 1970년 전후에는 바람, 불, 연기 등 비물질적인 요소들로 작품 제작을 시도하고,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소위 ‘형체 없는 작품’을 실험한다. 또한 돌, 여체 토르소, 도자기, 책, 고서, 지폐 등을 노끈으로 묶는 ‘묶기’ 연작을 선보이며 사물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기성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예술실험은 1980년 무렵 ‘비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0~80년대 ‘묶기’ 연작을 대거 선보일 뿐 아니라 당대 전시자료를 바탕으로 <성장(오지탑)>(1964) <무제>(1968) 등 1960년대 주요 작품들을 재제작하여 작가의 초기 실험을 새롭게 조명한다. 그리고 1971년 제2회 《A.G전-현실과 실현》에 선보인 <바람> 및 1980년대 <바람>(일명 종이나무) 원작을 포함하여 주요‘바람’작품을 대형 설치와 사진 및 영상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승택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 역사, 문화, 환경, 종교와 성, 무속과 같은 삶의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확장하면서 퍼포먼스, 대형 설치, 사진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나간다. 7전시실과 미디어랩에서는 이와 관련한 작품들을 ‘삶·사회·역사’‘행위·과정·회화’‘무속과 비조각의 만남’ 등의 주제로 살펴본다. 동학농민혁명이나 남북분단을 주제로 한 <무제>(1994), <동족상쟁>(1994) 등에서는 전위미술가이자 역사가로서의 이승택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일찍이 이승택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생각으로 민속품, 고드렛돌, 석탑, 오지, 성황당, 항아리, 기와 등과 같은 전통적 모티브를 비조각의 근원으로 삼았다.
이번 ‘이승택-거꾸로, 비미술’ 展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이승택의 대규모 회고전이며, 지난 60여 년 동안 미술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이승택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