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대나무의 고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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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이 주목받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 전 부터다 . 여기서 주목받는 것과 각광받는 것의 차이가 있다 . 현대사회에서 느림은 주목은 받았지만 각광받지는 못했다 . 빠름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진정 , 느림의 미학을 펼쳐 보일 곳은 없을까 .

슬로우시티란 말은 동양의 유유자적이란 말과 어울려 동양에서 탄생됐을 법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과 전 세계로 확산됐다 .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시작한 슬로우푸드 운동 정신이 확대돼 생긴 개념이 바로 슬로우시티다 . 전 세계 93 개의 도시가 가입돼 있는 슬로우시티는 그 이름만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소쇄원 폭포
소쇄원 , 개인정원이렸다 !

소쇄원은 담양 삼지내마을로 들어서기 전 들를 수 있는 곳으로 이곳 역시 느림의 미학을 이해하기에 부족할 것이 없다 .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집권 체계가 일찍 자리 잡은 나라는 아무래도 지방문화가 발달하기 힘들다 . 이러한 연유로 지방에는 서원이나 절을 제외하면 거의 볼거리가 없다는 점에서 개인이 조성한 정원인 소쇄원은 특이하면서도 반가운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

소쇄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대나무의 고장 담양답게 대나무가 빽빽하다 . 정원 안으로 들어서는 길 , 소쇄원의 담은 담이라기보다는 그저 공간을 구분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냇물은 흐름을 변화시키지 않고 다리를 만들어 담을 올린 것이 정겹다 . 소쇄원 내에서 주로 책을 보던 장소는 도선서당처럼 좌측은 방이고 우측은 마루로 꾸며 놓았다 . 소쇄원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주인집이라는 인상이 바로 든다 .

방보다 마루가 훨씬 큰 광풍각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곳인데 폭포 바로 옆에 있어 손님을 맞이하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 더운 여름 , 선선한 가을께 이곳에 앉아 우렁찬 폭포소리를 들으며 손님을 맞이하거나 책을 펼치고 한자 한자 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

우리나라의 정원은 종종 일본과 중국의 정원에 비교된다 . 일본과 중국의 정원은 관찰자의 취향에 맞게 풍경을 변화시켜 정원을 만들고 한국의 정원은 맘에 드는 풍경을 담기위해 담을 둘러 정원을 만든다 . 우리나라가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부족해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 이는 옛 조상들이 자연을 사람에게 맞추는 개념이 아닌 사람을 자연에게 맞추는 개념으로 정원을 꾸몄기 때문이라는 의미 부여가 더 적절할 듯하다 .

소쇄원은 한국적 정원 미학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정원의 건립자인 양산보는 이 폭포를 보고 듣고 즐기기 위해서 소쇄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소쇄원 측면에는 제월당과 광풍각을 잇는 샛길 있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

고택
슬로우시티란 이런 것 ‘ 삼지내마을 ’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슬로우시티 삼지내마을은 돌담길을 천천히 걸어 산책을 하고 고택을 둘러보며 한옥에서의 멋진 하룻밤을 보내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곳이다 .

소쇄원에서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창평파출소에서 내려 옆 골목으로 이어진 돌담길로 들어서면 슬로우시티 삼지내마을의 시작이다 . 처음 버스를 타고 마을로 들어서면 입구쪽 약간의 정체와 작은 읍내의 모습에 슬로우시티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의아할 수도 있지만 곧 등장하는 돌담길을 보게 되면 안도감이 든다 . 느림의 미학을 염두하며 의식적으로 천천히 걷고 , 듣고 , 느끼는 여행은 슬로우시티를 즐기는 방법이고 슬로우시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

한옥민박이나 고택체험을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 . 한옥민박집 중에서 ‘ 한옥에서 ’ 라는 민박집은 대문 안쪽에 아름다운 정원이 가꿔져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 고즈넉한 정원은 보기만 해도 평안함이 밀려온다 .

대문을 들어서면 푸른 잔디와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멋들어진 고택과 한옥이 눈에 띈다 . 민박은 새롭게 지은 한옥형방과 고택숙박 두 가지를 운영하는데 고택숙박이 조금 더 비싸지만 기존의 민박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 그도 그럴 것이 실내에 에어컨과 TV, 냉장고까지 갖춰져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도 고택 옛것 그대로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한옥은 불편하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

민박집 내에는 찻집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 산책을 하다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 찻집은 집같이 편안한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해 놓아 한번 그곳에 발을 디디면 다시 나오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마을전체가 워낙 아름답다 보니 반드시 숙박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차를 마시고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고택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밤 , 귀뚜라미 울음소리만이 들려온다 .

죽녹원
대나무 소리가 들리는 ‘ 죽녹원 ’

죽녹원은 약 16 만제곱미터의 울창한 대나무숲이 펼쳐진 곳으로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2Km 정도의 산책로가 운수대통길 , 죽마고우길 , 철학자의길 등 8 가지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

죽녹원 입구에 들어서면 대나무와 친한 팬더 인형들이 반겨줘 웃음을 자아낸다 . 대나무숲길에 들어서서 걷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올 때 마다 들려오는 대나무 소리가 청량하고 상쾌하다 . 산책로에는 대나무로 만든 지압길도 마련돼 있어 신발을 벗고서 맨발로 걸어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

대나무에서는 음이온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피로한 심신 건강에도 좋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산책인 셈이다 . 하늘 위로 시원하게 쭉쭉 뻗은 대나무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하다 . 대나무 숲은 밖의 온도보다 4-7 도 정도 낮은데 이는 산소발생량이 높아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라고 한다 .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지만 가을에는 옷을 조금 두툼하게 입고 가는 것이 좋다 .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명상하기에 딱 좋은 정자도 있고 바로 옆에는 축향체험마을이 있다 . 이곳은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의 정자 문화를 대표하는 면앙정 , 송강정 등 정자의 소리전수관인 우송당 , 죽로차 , 제다실과 같은 한옥체험장을 집중 배치해 담양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담양군에서 조성한 문화 역사의 공간이다 . 생태전시관에서는 대나무 분재를 비롯한 대나무 공예품과 여러 가지 용품들도 구매 할 수 있다 .

가는 길
버스편 : 광주고속터미널 – 문화동에서 303 버스 – 창평파출소 앞 하차
승용차편 : 호남고속도로 창평 IC- 창평 나들목에서 창평면소재지방향 3-4 분
기차편 : 광주역 근교 구 시청 홈플러스앞에서 303 번 버스 – 창평파출소앞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