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와 나] 여정의 시작

7289

그 여름의 태양은 몹시도 강렬했다. 5월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대지를 감싸기 시작한 뜨거운 열기는
바람에 실려 채 흩어지기도 전에 빈틈없이 다시 채워지곤 했다.

상쾌한 봄날의 기억을 담아놓을 시간도 주지 않고 온 세상은 내내 뜨거웠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허덕허덕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가을의 문턱을 막 넘어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던 6월 어느 날 “인도 여행이 준비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이름에서부터 웬지 모를 신비함이 묻어 나오는 인도, 내내 여행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런 지독한 날씨에 과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할 수밖에 없었다.

찰나만큼의 망설임을 뒤로 하고 이내 “좋습니다. 언제 출발할까요?” 라는 질문에 “네 7월초에 일정이 시작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평균온도는 38도, 최고 온도는 42~3도가 될 것이라는 대단히 친절한 안내는 가슴 속에 묘한 희열로 내려 앉았다.

“혹시 같이 가실 분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요. 왕복항공권만 준비하시면 경비는 최소로 해서 모시겠습니다.”

여행은 혼자가 좋지만 불교성지순례에 문화 탐방을 이어붙인 아주 특별한 여행일정인지라 스님을 모시고 간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침 인도여행을 염두에 두고 계시던 스님 한분, 그리고 속가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다는 신도 한 분과 함께 떠나기로 한다.

여행 준비

늘상 그렇듯 내 여행의 시작은 여권과 항공권을 확인하고 크레딧카드를 챙기고 몇백불의 비상금을 찔러 넣는 것이 거의 전부다. 출발 하루 전날이 되어서야 매주 정해진 날 폐기물을 봉투에 담듯, 그저 오랜 습관대로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쓸어 담는 것으로 짐가방싸기는 끝이난다.

혹여 입맛에 맞지 않을까하여 이런저런 인스탄트 음식-놀라울 정도로 발달되었더라-을 준비하는 사치는 단연코 사절이다. 여행이란 것이 내 입에 맞지 않아도 즐겁게 먹어야겠다는 야무진 마음가짐이 없다면 그래서 일상에서 익숙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다면 어찌 그들의 문화를 느껴볼 수 있겠는가?

때로 참기 어려운 향신료나 젓갈 등을 만나게 되더라도 진저리를 치기 보다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즐겨온 그 음식의 속맛을 알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 끼니를 대한다. 음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은 방역복으로 온몸을 틀어 막은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니 그런 여행에서 남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 않는 한가지가 더 있다. 사전에 자료를 찾고 블로그 글을 포함한 여행기 읽기는 절대 사절이다. 이미 내 머리 속에 자리잡은 무언가는 내가 그것을 볼 때 선입관으로 작용하여 내밀한 속을 볼 수 잇는 기회를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

어떤 기대도 없는 텅빈 가슴으로, 단촐한 짐보따리와 카메라 가방만을 들고 나선 여행, 출국 수속을 다 마치고 게이트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좌석에 앉고 나서야 “이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전혀 새삼스런 질문을 던지곤 이내 답을 찾기 시작한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것이 AD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였고 이후 불교는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국교로 자리 잡았고 조선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았다하나 1000년 세월을 넘도록 이 땅에서 융성하였으니 인위적인 홀대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의 생활 속에 깊숙히 자리한 불교는 모든 것의 근본이었을 것이다.

새삼스런 기대-보통의 인연은 아닐 것이다

이 땅에 절경이라고 알려진 어떤 곳에서든 그 규모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사찰이 한 곳쯤 없는 곳은 없다. 여행을 좋아하기로는 둘째가기 서럽기에 전국의 명산과 대찰은 발걸음을 놓지 않은 곳이 드물다.

그러나 그것은 여행자로서 였을 뿐, 불자나 혹은 구도자의 마음가짐으로 찾은 기억은 없다. 불자가 아닌 사람의 불교성지순례는 어떤 의미와 과정으로 다가올 지, 삶에 지칠대로 지친 내 육신과 영혼에 한줄기 빛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스믈스믈 가슴 밑바닥에서 피어 오른다.

붓다의 발자취를 쫓는 수만리 길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미 꿈결처럼 그의 내음을 맡고 그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다.

사진:이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