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극 ‘올모스트,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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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문화면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떴다. 지난 17일 올라온 이 글의 제목은 ‘New York Flop Becomes a Hit Everywhere Else’. "뉴욕에서는 실패한 연극 한 편이 다른 모든 지역에서 대박이 났다"는 내용의 기사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지만 과거 한국에서도 이 연극이 공연됐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기사 속의 연극은 2006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의 대릴로스 극장 무대에 올려졌다가 관객이 기대만큼 들지 않아 한 달만에 막을 내린 작품. 제작비 80만달러는 고스란히 날렸다. 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의해 2006년 최악의 연극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미국 내의 이 극단 저 극단이 꼼지락대며 이 작품을 올리기 시작한 것. 그때 이래 미국과 캐나다에서 무려 600개가 넘는 전문 또는 아마추어 극단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고등학교 연극 동아리들 사이에 이 연극의 인기는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북미주의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린 작품 리스트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 등을 제치고 단연 1위에 올라서 있다.

이 기사 속 연극이 22일 서울 대학로의 아트원씨어터3관 차이무극장 무대 위에 올려진 ‘올모스트, 메인(Almost, Maine)’이다. 제목의 올모스트는 캐나다와 접경하고 있는 미국 동북부 끝자락에 있는 메인 주(州)에 있는 가상의 지역 이름.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의 하늘밖에 없고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황량한 벌판지역으로, 지역 이름이 거의(almost) 지어질 단계에 있다고 해서 올모스트라고 부르는 곳이다.

연극은 프롤로그, 8개의 짤막짤막한 이야기,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장소배경은 각기 다른 올모스트의 여러 공간. 각 에피소드는 달빛도 없는 한겨울의 차갑고 청명한 금요일 밤 9시에 일어난 일들이다. 모두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 소묘(素描)와 같은 이야기들 속에는 아픔이 들어있기도 하고, 기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장면 속에는 남자의 기습키스가 있는가 하면 여자의 기습키스가 있고, 난생처음 본 사람을 대상으로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이 있다.

글로리는 자신의 깨진 심장을 봉지에 싸서 들고 다닌다. 이스트는 자신은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며 깨진 심장 조각을 모아 온전한 심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랜디와 채드는 절친한 남자친구들. 어느 날 둘이 평소처럼 얘기를 나누다 헤어지는데 갑자가 채드가 쓰러진다. 놀란 랜디가 부축하자 채드는 "나,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당황한 랜디는 마구 욕을 해댄다. "오랜 친구간에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며…. 욕을 퍼붓던 랜디는 갑자기 채드 처럼 쓰러진다.

아픔도 있지만 푸근함도 있고 정겹기도 하다.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관객들의 폭소를 자극하며 대부분 코믹하게 전개된다.

무대는 장면에 따라 긴 의자 1~2개, 또는 테이블이 덜렁 놓여 있을 뿐 거의 비어 있다. 달빛도 없는 밤인 만큼 무대도 어둡다. 메인 주 촌 구석의 황량함이 드러나 보인다. 양옆으로는 눈이 깔려있다. 하늘을 나타내는 무대 뒤 벽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이처럼 빈 무대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뿐이다. 극단 차이무의 젊은 배우들은 사랑의 대사와 몸짓을 통해 빈 공간을 메운다. 무대 왼쪽 위로는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메인 주에서 잘 볼 수 있다는 붉은빛의 오로라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면서 관객의 꿈과 상상력을 지핀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올모스트, 메인’이 북미의 고등학교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뤄져 있어 연극경연대회 참가용으로 제작하기가 좋고,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19명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을 다양한 숫자로 쓸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모두 19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 연극을 극단 차이무 작품에서는 배우 8명이 분담한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형식적인 측면보다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랑을 하는 또는 꿈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년층도 즐길 수 있는 연극이다.

『…이 연극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ㅡ사랑을 정말로 진실하게 솔직하게 만나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공연하는 사람들은 올모스트 주민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픔을 존중하고, 고통을(대부분 감추고 있겠지만) 연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연극이 희극임을 잊으면 안 된다. 슬픔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다.』
이상우 연출이 번역한 대본에 나와있는 작가의 이 지문은 이 작품이 드러내게 될 느낌을 명료하게 전한다.

공연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3관에서 12월22일~새해 1월30일. 공연문의는 ☎02-74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