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송태영 칼럼니스트) 생산성, 시스템, 이런 주제야 말로 경영학, 경제학 전문가들이 다뤄야 할 문제이지만, 비 오는 하루내내 엉뚱하게 이 키워드에 자꾸 생각이 머문다. 온 나라를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최저임금제도의 망상(妄想)도 사실은 ‘돈’의 문제라기 보다는, ‘생산성’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산성’이야말로, 개인의 능력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20대 사회생활의 시작을 아주 영세한 무역회사에서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 무역회사, 특히 수출전문회사란 곳은 바쁘다. 그리고 열심히 일 한다. 특히 거래처와의 時差(시차)도 있어서 별로 ‘나인 투 파이브’라는 업무시간 관념도 없었다. 내 기억에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니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었다. 아침 8시 출근에 회의를 마치고, 하루종일 이곳저곳 공장을 다니며 생산관리에 제품검사까지 하고, 다른 사람들이 퇴근할 시간에 사무실로 돌아와서 다시 외국거래처에 팩스를 보내고 나면 보통 밤 9-10시였다. 그렇다고 바로 귀가하는게 아니었다. 업무적인건지, 업무를 빙자한 건지 또 술자리. 새벽에 귀가하고 새벽에 출근하는게 茶飯事(다반사)였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때로 아주 먼 곳에 공장이 있으면 정말 지옥이었다. 한동안 부산-서울-의정부-안산(반월공단)-다시 부산이라는 무려 1200키로를 당일 코스로 매주 한번은 운전하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젊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을게다.
그러다가 30대초반 어느날, 내가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게 대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었다. 당시 한국에 아쿠아 운동을 소개하면서, 계약차 미국 플로리다 어느 해변에 위치한 미국협회 본부를 찾아가서 열흘 정도 그들과 함께 일을 해 본적이 있었다. 처음 본부사무실을 방문하고 얼마나 실망했었는지 모른다. 해변가 전형적인 미국 2층 가정집을 개조한 사무실이었는데, 세계 수십개 나라와 미국 전국을 네트워크화해서 일년에도 수 없이 많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그 사무실에는 여자직원만 겨우 10명 미만이 일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모두가 오후 다섯시면 퇴근하더라는 얘기다.
처음 느낀 실망은 단 며칠간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일하면서 완전히 반전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일해 왔었다고 생각한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도 깨달았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중소규모 회사에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설치된 회사에서도 타자기를 대신하는 워드작업이나, 로터스 등을 활용한 도표 작업 등의 기본적인 업무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 뿐이랴. 일찍 출근한다지만, 하나마나한 회의를 매일 했고, 회의가 끝나면, 조간신문도 뒤져보고, 커피도 한잔 마신다. 외부 손님은 시도 때도 없이 약속도 정하지 않은채 방문하면 또 응대를 하고, 때로 점심까지 함께 하고, 외근을 나가고… 돌아보니, 하루업무 가운데 쓸데없이 허비한 시간이 너무 많았더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괜히 바쁜 척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때 미국 사무실에서 본 여자 스탭들의 하루는 아주 잠깐의 티타임이나, 식사시간 외에는 정말 알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뿐이랴, 이미 업무에 특화된 내용으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든 바로 업무에 투입이 되어도 문제가 없었고, 특히 본부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또 많은 부분은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등. 말 그대로 일의 흐름 자체에 전혀 낭비적 요소가 없었다. 바로 선진사회의 모습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몇년 전 고향 부산에서 어릴 적 친구와 하루를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某자동차에서 현장근무를 했었고, 이미 노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데, 하루를 함께 하면서 결국 저녁 술자리에서는 내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그 친구의 하루는 출근해서 대충 현장 지시 내리고, 다시 벤더 업체 관리한답시고 나와서 거나하게 점심식사를 飯酒(반주)까지 곁들여 대접을 받고, 오후에는 노조 사무실에서 바둑을 두고, 다시 저녁이면 술자리… 그러면서 받는 연봉은 무려 1억이 넘었다.
한국의 자동차공장 생산성이 세계 최하위를 기록한다는게 당연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뭐 그 후 우리나라 자동차 현장라인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일은 적당히 하고, 돈은 더 받아 가고 싶고.. 이거야 말로 “도둑놈 심보”와 뭐가 다른 것인가.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이런 행태가 오랫동안 먹혀 들어갈거라고 착각하는 귀족노조들은 그 IQ가 어느 정도수준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暴亡(폭망)해서 베네주엘라로 갈 것인가. 그래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 국가 大改造(대개조)의 新粧開業(신장개업) 수준으로 갈 것인가의 岐路(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만약 後者(후자)로 갈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정말 우리 모두가 정신 바짝 차려서 의식개조를 해야 할 것이다. 철저히 사회는 Meritocracy(能本主義능본주의)에 입각해서 운용되어야 할 것이며, 그 어떤 업무에도 시스템공학적 설계가 전제되어야 하지않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때로 정신줄 놓고 사는 이 민족성도, 개성과 창의성은 그래도 쓸만할 때도 많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 어릴 적 사회 곳곳에는 줄을 길게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 항상 그곳에는 “새치기”하는 얌체족도 있었으며, 그 때문에 머리채 쥐어 뜯고 싸움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은행 등에서 ‘순번대기표’라는 기계가 도입되는 순간 그런 후진국형 모습은 사라졌다. 심지어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관공서 등지에 서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겐 오히려 그게 생소한 모습이 되었다. 단지 단순한 기계 하나의 도입으로 차례로 번호표를 뽑아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면 될 뿐이다.
이런게 바로 ‘시스템 아닐까? 適材適所(적재적소)에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그리고 능본주의에 입각한 ‘생산성 향상’. 이 두가지가 바로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