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속삭이듯 말해보세요, 허~브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풀과 꽃을 식량이나 치료약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해 왔다. 그러다 점차 인간에게 유용하고 특별한 식물을 구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허브(herb)’다.
허브는 푸른 풀을 의미하는 라틴어 ‘허바(herba)’에서 따왔다. 고대 국가에선 향과 약초라는 뜻으로 썼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학자인 데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가 식물을 교목, 관목, 초본으로 나누면서 처음으로 허브라는 말을 사용했다. 현대에 와서는 꽃과 종자, 줄기, 잎, 뿌리 등이 약, 요리, 향료, 살균, 살충 등으로 사용하는,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초본식물을 허브라고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잎이나 줄기가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과 향미(香味)로 이용되는 식물’이라고 허브를 정의하고 있다. 달리 말해 허브는 ‘향이 있으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허브로는 원산지가 주로 유럽이나 지중해 연안, 서남아시아 등인 라벤더, 로즈마리, 세이지, 타임, 페퍼민트, 오레가노, 레몬밤 등이 유명하다. 우리 조상들이 단오 때 머리를 감는데 쓰던 창포와 양념으로 빼놓을 수 없는 마늘․파․고추, 그리고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쑥․익모초․결명자 등도 허브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허브에는 소염, 보습, 항균, 수렴 등 여러 가지 유효성분이 있다. 이 같은 효능은 미용에도 폭넓게 이용된다. 더구나 항균작용과 방부작용까지 있어 화학성분이나 다른 첨가물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특히, 허브를 사용한 화장품에는 약리(藥理)효과뿐만 아니라 허브 향이 뇌에 전달되는 심리효과, 즉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허브를 차로 만들어 마시면 소화기의 약리효과도 얻을 수 있다. 허브는 꿀풀과(科), 지치과, 국화과, 미나리과, 백합과 등 2500여종 이상이 자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생육(生育)이 매우 강해 어느 곳이든 무리 없이 잘 자라지만 대부분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통풍과 배수가 양호하고 유기질이 많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때문에 허브를 키우고 싶다면 넓은 노지(露地)나 상록수와 낙엽수가 어우러진 정원 등 햇빛이 충분하고 배수가 양호한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브는 고대인들에게 약초로서 큰 힘을 발휘했다. 중국에선 기원전 5000년경부터, 이집트는 기원전 2800년경, 바빌로니아에선 기원전 2000년경에 허브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집트에선 미라를 만들 때 부패를 막고 초향(焦香)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스파이스(spice)와 허브를 사용했다. 당시 무덤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는 식물의 치료효과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는데, 펜넬(Fennel)이 시안액으로 눈에 좋다고 기록돼 있다.
허브의 향을 이용해 아픈 곳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경애와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인도에선 홀리바질(Holly Basil)을 힌두교의 크리슈나신(神)과 비슈누신에게 봉헌하는 신성한 허브로 여겼다. 현재에도 이 허브가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연다’고 믿어, 죽은 사람 가슴에 홀리바질잎을 놓아둔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토된 점토판에는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의 목록이 새겨져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학자 디오스코리데스가 기원전 1세기에 저술한 약․의․식물학의 원전(原典)인 ‘약물지(藥物誌)’에는 600여종의 허브가 적혀있다. ‘의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에 400여종의 약초를 수록했는데, 특히 타라곤(Tarragon)을 뱀과 미친개에 물렸을 때 사용하는 약초로 기록했다.
중세 사람들은 치커리(Chicory)를 학질(말라리아)이나 간장병을 고치는 약초로 여겼다. 로즈마리는 산뜻하고 강한 향 때문에 악귀를 물리치는 신성한 힘을 지닌 허브라고 생각했다. 특히 두통에 뛰어난 치료효과가 있고, 그 향은 집중력과 기억력 증진에 좋다고 기록했다. 12세기경의 약제사이자 식물학자였던 ‘허벌리스트(Herbalist)’들이 저술한 식물지 ‘허벌(Herbal)’은 동양의 ‘본초강목(本草綱目)’과 같은 것으로, 각종 약초가 그림으로 잘 나타나 있으며 약효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허벌리스트였던 존 제라드(John Gerard)가 1597년에 저술한 ‘식물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허브의 역사를 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약용으로 이용하던 허브는 점점 사치용품으로 발전했는데 향 마사지, 향 목욕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인들이 유럽 전역을 지배하게 된 후부터는 지중해 연안에서 유럽 각지로 허브가 확산됐고, 방향(芳香)요법인 아로마테라피가 정착됐다. 또 중세 수도원에선 정원에 약용식물, 과수류와 함께 허브를 재배했는데, 이것이 ‘허브 가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허브 가든은 처음엔 단순히 실용 목적이었지만, 점차 보고 체험하기 위한 ‘플라워 가든’이나 식용을 목적으로 한 ‘키친 가든’으로 발전했다.
이렇듯 기원전 유럽의 고대 국가에서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허브는 현대의 선진국 여러 나라에서 약효, 건강, 미용, 방향, 장식품 등으로 다양하게 생활에 응용하고 있고,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 차로 마시면 좋을 허브의 종류
라벤더(Lavender) 라틴어의 ‘lavando’에서 비롯됐다. ‘lavare(씻는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 향기는 청결, 순수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기독교에선 라벤더가 원래 향이 없는 식물이었는데 성모 마리아가 이 꽃덤불 위에 아기 예수의 속옷을 널어 말린 후부터 생겨났다고 전하고 있다. 두통이나 현기증에 좋다. 그러나 임신 초기에는 사용금지.
레몬그라스(Lemongrass) 인도, 스리랑카, 아프리카, 중남미가 원산지다. 억새풀처럼 생긴 허브다. 말려서 포풀리, 목욕제로 사용한다. 파리, 모기, 벼룩, 진드기가 싫어해 퇴치용으로 쓰이고 정원용으로 키우기도 한다. 잎을 잘라 손으로 비비면 레몬 같은 상쾌한 향이 난다. 꽃은 드물게 핀다. 설사나 두통, 복통, 무좀 치료에 좋다.
레몬밤(Lemon balm)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 역사가 오래된 약초다. 50㎝쯤 자라는 허브이며, 레몬향이 난다. 레몬밤차(茶)는 뇌의 활동 강화, 기억력 증진에 도움을 줘 수험생에게 좋다. 우울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하며, 해열 발한(發汗) 작용이 있어 감기 초기에 조석(朝夕)으로 마시면 효과적이다. 체력 소모가 많은 여름철 청량음료로도 좋다. 신경성 두통, 신경통, 소화불량에 특히 좋다.
로즈마리(Rosemary) 지중해 연안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꿀과의 다년생 상록 저목(樗木). 2m까지 자랄 수 있다. 좁고 가는 솔잎 모양의 잎이 가죽처럼 질기고 윤이 나며, 특유의 강한 방향이 있는 서양 약초다. 잎과 잔가지는 육류요리에 향을 낼 때 쓰고, 꽃은 설탕절임을 해서 과자로 만들며, 잎은 차로 이용한다. 뽑아낸 기름은 화장품이나 비누의 방향제로 쓰고, 잎과 꽃은 향주머니의 향단지로 사용한다. 신경통, 두통, 편두통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임신, 고혈압, 간질인 경우 해로울 수 있다.
민트(Mint) 꿀풀과의 다년초. 크게 서양종과 동양종으로 나누는데 허브로 쓰이는 것은 서양종이다. 생육이 가장 튼튼한 허브 가운데 하나. 잎을 스치기만 해도 상쾌한 향이 난다. 페퍼민트, 스피아민트, 애플민트, 오데코롱민트, 파인애플민트, 페니로얄민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감기, 두통, 눈의 충혈, 인후의 종창에 좋다.
바질(Basil) 잎을 뜯기만 해도 공기 중에 향이 퍼진다.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시 하는 식물. 이탈리아요리에 빼놓을 수 없는 재료로도 유명하다. 달콤하면서도 상쾌한 향이 있으며, 약간 쓴맛과 매운 맛이 있다. 두통, 신경과민, 구내염,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
세이지(Sage) 예부터 만병통치약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가 오래된 약용식물이다. 차, 향수 원료, 약용, 목욕제, 린스나 로션 등의 화장품, 포플리 등으로 쓰인다. 강장효과, 방부, 항균․항염, 살균소독, 해열, 구풍, 정혈작용 등 쓰이는 곳이 많다.
캐모마일(Chamomile) 인도와 유럽이 원산지. 국화과의 허브다. 꽃에는 달콤한 사과향이 나는데, 봄이 되면 자그마한 꽃이 여기저기 일시에 개화해 달콤한 향기가 가득 퍼져나간다. 정원에 심어놓으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 향기가 그윽하게 퍼진다. 유럽에선 비상상비약 하면 캐모마일을 떠올릴 정도로 보편화된 약초다. 불면증, 발한 해열, 신경통 등의 진통 진정, 여성의 냉증에 좋다.
타임(Thyme) 로즈마리, 라벤더와 함께 잘 알려져 있는 허브. 지중해가 원산지다. 꿀풀과의 상록성 저목으로 줄기는 15~30㎝까지 자라며 풀 전체에서 향이 난다. 서양요리의 대표적인 향미료로 육류요리에 즐겨 쓰며 계란, 어패류, 채소요리의 부향제로도 사용한다. 살균, 방부, 강장, 소화촉진, 식욕증진, 항균 등에 효과가 있는 차는 수면장애, 두통, 우울증, 빈혈, 피로에 효험이 있다.
펜넬(Fennel) 생약의 방향성 건위제, 구풍제로 위통, 위확장, 복통 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젖이 부족할 때 최유제(催乳劑)로도 이용한다. 그리스신화에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태양의 불을 훔쳐 펜넬의 줄기에 옮겨 붙인 후 이를 숨겨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통경약, 요로결석, 해독효과 등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