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핀처
주연 브래드 피트,케이트 블란쳇,줄리아 오몬드
개봉 2009.02.12 미국, 166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0년대에 쓴 단편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영화제목대로 벤자민(브래트 피트)의 시간은 일반인과 정반대로 흐른다.
80세의 외모와 그 나이의 노인질환을 갖고 태어난 벤자민은 특별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유전자의 시간을 무시해버리고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서 온 벤자민을 통해 감동을 선사한다. 벤자민은 모든 인간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동안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시작점만 다를 뿐 벤자민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생과 사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어갈 때 자신만 젊어 가는 것을 보면서 가족과 자신의 아이 곁을 떠나 결국 갓난아이로 외롭게 죽는다.
이 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든 점이 돋보인다. 감독은 특히, 젊어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과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간파했음이 분명하다. 핀처는 영화 속에서 벤자민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준다. 물론 관객들은 벤자민의 젊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잠깐이지만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을 것이다. 좋게 보여 지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의 열정적이고 감미로운 사랑도 시간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사라지고만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더욱 슬프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이별이다. 벤자민은 갈수록 젊어지는데 데이지는 반대로 늙어간다. 정상대로라면 둘이 함께 늙어가야 맞겠지만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던져주었다. 지금 자신의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늙어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데이빗 핀처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에서 피츠제럴드가 작가적 영감에 의해 충동적으로 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거의 6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처음 제작화가 추진된 것은 1950년 대. 하지만 40여 년의 세월을 떠돈 끝에 지금의 제작자를 만나게 되었고 10년에 가까운 각본 작업 후, 또 다시 10여 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온전한 모습의 영화로 탄생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단순히 소설을 옮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사랑을 담아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삶의 경험을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단 한 편의 영화 안에 무덤에서 요람까지 인생의 굴곡을 묘사하여, 매 순간이 보는 이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영화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경험을 투사했다. 사랑한 이들을 잃었거나 사랑을 얻지 못한 이야기, 떠났거나 혹은 떠나버린 경험들을 녹여냈고 영화는 원작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1992년 초고 대본을 받은 핀처 감독은 수년 간 아이디어를 키워오다 2003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화에 착수하게 된다. 핀처 감독에게 있어 특별한 대상이었던 아버지와의 이별은 그 어떤 때보다 이번 영화를 ‘이성’보다 ‘감성’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심오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의 흐름을 지켜보는 논평자로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인정하는 본인 아버지의 모습을 벤자민이 사람과 상황에 대처하고 반응하는 모습 속에 녹여 넣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연출과 함께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두 주연배우의 연기다. 브래드 피트는 벤자민 버튼이라는 역할을 맡아 모든 연령대에 걸친 특별한 연기를 선보였다. 벤자민 버튼은 브래드 피트가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로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방대하고 심오한 역할로 인생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 준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삶을 산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브래드 피트는 ‘벤자민’의 비범한 매력을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해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점점 동화되어 가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데이지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자신은 점차 늙어가는 반면, 사랑하는 남자는 시간이 갈수록 거꾸로 젊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댄서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인물. 블란쳇은 마치 여신 같은 모습으로 역할을 연기해냈다. 특히 어린 시절 잠시 발레를 배워 본 것이 전부였지만 프로 발레리나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의 사랑 속에서 관객들은 시간은 다르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설 때 자신의 시간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