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인 대한민국의 입장으로 남아공을 바라본다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무’지개의 나라’라는 닉네임이 있는 만큼 문화와 역사, 경제, 교육에서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그 배경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종적 다양성
남아공 인종비율은 흑인(75%), 백인(14%), 그 외 유색인종(11%)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세워 진후,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유색인종을 정치, 경제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종차별법을 실시합니다.
이 인종차별법은 80년간 통치의 수단으로 이어지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이기지 못하고 1991년 폐지되면서 1993년 UN의 제재를 벗어납니다.
우리나라도 식민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제의 35년의 식민지의 역사도 가지고 있는 잔재가 많은데 남아공은 연방으로 세워지기 이전부터의 시기만 100년이 가까운 식민역사라 할수 있을 것이고, 17세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식민지 건설로 거슬러올라간다면 3세기에 걸친 식민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긴 시간의 식민지 시절 동안 젖어든 인종과 신분의 차이는 흑인정부가 들어선 20년 만에는 해결 될 수 없는 습관일 것입니다.
적은 수의 지도층이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하는 지도체제는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먹이사슬 피라미드 구조처럼 단세포 노동자들이 구성 되어 줘야 윗 단계가 유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종차별법이 폐지된 이후, 많은 백인들이 남아공을 떠났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해외에서 살아보니 남아공만큼 누리지 못하는데, 남아공에서는 백인에 대한 특별한 탄압이 없어 보이니 다시 역 이민을 들어온 것이 흑인 정부 10년 만델라의 정권아래 보호 된 기존 백인기득권의 실세입니다.
국제적인 비난으로 무역이 불가능한 국제제재를 받은 백인이 인종 차별법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것이 경제적 기득권 이였던 것입니다.
반 대로 흑인들은 정권을 잡으면서 경제적인 불평등을 댓가로 치룬 정치적 안정을 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제적 기득권은 인종차별만큼이나 강한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흑인정부로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법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인종차별에서 벌어진 빈부격차는 새로운 차별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인종차별법 때문에 운영되기 힘든 국가를 위한 타협이지 않았냐라는 단기적인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35년 식민지시대를 겪은 국민으로서 남아공의 가능성을 희망해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물론, 벌어진 빈부격차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기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남아공의 이런 인종차별에서 빈부격차로 이어진 집단의 문화는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집단 흑인판자촌 쏘웨토, 랑가 등이 그것입니다.
남아공은 대중교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있지를 않습니다.
남아공은 치안이 불안합니다.
남아공에서 치안 유지활동의 80%이상은 흑인지역에서 이루어 집니다.
도대체 왜 대중교통을 활발히 두지 않는단 말인가?
처음 남아공에 이주해서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대중교통수단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불편을 느꼈었습니다.
이는 치안의 문제도 있지만, 기존의 백인들이 흑인들과의 섞임을 싫어해서 대중교통을 두지 않았던 것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좋은 지역에 사는 돈 있는 사람은 자기 차를 타고 다니면 되고, 거주지역이 다르고 대중교통이 전무한 곳에 사는 백인들이 부리는 메이드나 정원사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오고 나가는 시스템으로 교통이 운영되는 것은 지금도 당연한 교통편이고, 이것으로 서로의 영역에 금을 긋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종차별에서 빈부차별로 이어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남아공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것이 ‘흑인우대정책’ 이였습니다.
‘흑인우대정책’이란 흑인이 이끄는 경제활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 ‘흑인우대정책’이 선언된 이후, 많은 유색인종들이 자신들을 흑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법정에 설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인종차별시절 흑인과 같이 차별을 받던 그 긴 시간 함께하였으니 우대정책에도 참여케 해 달라는 것이였습니다.
실제 노예로 정착한 중국인의 경우 흑인으로 인정한다는 법정 판결문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그 흑인 우대정책은 소수 발 빠른 엘리트에게 적용되어 백인 전유였던 상위 10%의 경제구조에 타인종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인종차별로 인해 교육을 받지 못한 다수의 실질적 흑인들은 전혀 혜택을 못 받는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종차별이 있을 시에 교육은 상위 지도층에 집중되어 있었고, 못 배우고 못 가진 계층의 교육은 그 생활만큼이나 빈곤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흑인 정부 20년의 짧은 역사에서는 유능한 인재를 찾기가 힘든 것이고, 이로 인해 흑인정부가 운영하는 경제가 기존의 백인정부 때보다 후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아공은 백금과 우라늄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국내총생산 (GDP) 4199달러에 이르고, 1인당 GDP는 2012년 8201달러라는 안정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 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실업률 40%와, 지니 계수 0.63으로 백인정부시절의 0.59보다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 제1의 경제대국이란 명성이 무색하게 실업률이 40%를 넘는다”며 “상위 10%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하위 50%는 하루 2달러로 생계를 연명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빈부격차는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안 좋은 나라로 선정될 만큼의 수치스러운 기록 까지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빈부격차의 심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빈부의 격차 해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겠죠. 더 많은 다수의 엘리트들이 만들어져 인종차별로부터 이어진 빈부의 계층 타파에 힘쓰는 것….
과거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처럼 새벽부터 일어나 일해서 자녀교육에 힘쓰는 것처럼 더 많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 정부와 개인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Next 가난한 이들의 아이들 유학을 좋은 동네로 가고 있다.
( 사진: 남아프리카=이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