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로 엇갈리는 한-일 관광업계


( 미디어원 = 정현철 기자 ) 메르스 여파가 길어지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광업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

일본은 지난 4 월 오사카만국박람회를 개최한 1970 년 7 월 이후 44 년 만에 관광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 일본의 4 월 관광수지 흑자액은 177 억 엔이었다 .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엔저 현상의 효과로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한 덕이다 .

4 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123 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약 33% 증가했다 . 특히 동남아시아 관광객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 베트남에서 온 관광객은 50~60% 늘었다 . 엔저 외에 동남아 국가에 대한 비자 발급 완화도 관광객 유치에 한몫 한 것으로 분석됐다 .

무엇보다도 중국 관광객의 방문이 일본 관광수지 흑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중국에서 온 관광객은 140% 나 급증했다 . 센카쿠열도 ( 중국명 댜오위다오 ) 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벌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은 이어지고 있는 것 .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는 메르스가 한국을 강타한 후유증이 드러나는 6 월 이후에는 그 차이가 더 극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24 일 한국관광공사와 일본정부관광국 (JNTO) 에 따르면 올 1 월부터 5 월까지 방일 외국인 관광객 수는 753 만 7800 명으로 작년 동기에 비해 44.9% 증가했다 .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이보다 적은 592 만 4683 명으로 집계됐다 . 외국인 관광객 유치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역전당한 건 7 년 만이다 . 역시 세계 관광시장에서 큰 손 역할을 하는 중국인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

2008 년부터 2013 년까지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중 · 일 갈등에 따른 반일감정 탓에 연간 최소 100 만 416 명에서 최대 131 만 4437 명 수준에 불과했다 . 그러나 엔화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작년 9 월부터 중국인의 발길이 일본으로 급격히 몰리면서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83.2% 급증한 240 만 9158 명에 이르렀다 .

그러나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행선지를 바꾸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CNBC 는 HSBC 의 보고서를 인용해 6~8 월까지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수가 20% 정도 더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증가율은 80 ∼ 140%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 HSBC 는 메르스 불안 뿐 아니라 지난 1 년간 한국 원화에 비해 약 10% 평가 절하된 일본 엔화 가치도 중국 관광객이 한국보다 일본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이같은 현실은 당장 양국에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길거리 풍경을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 일본의 식당가와 유흥가 , 쇼핑가는 24 시간 온통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24 일 전했다 . 신문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아침부터 심야까지 야키니쿠와 오코노미야끼 , 초밥 , 생선회 등 일본 전통음식을 파는 상가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외국인 관광객 , 특히 중국인들이 들이닥치고 있다 . 또한 백화점 등 쇼핑가에도 쇼핑백을 꾸러미로 든 중화권 관광객이 몰려다닌다 . 일본 최대의 전자제품 상가가 몰려 있는 아키하바라에는 이른 아침부터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으며 , 이 때문에 원래 오전 10 시인 영업개시 시간을 한두 시간정도 앞당기는 상점도 적지 않다 . 중화권 관광객이 가장 선호하는 쇼핑 품목은 디지털 카메라 , 밥솥 , 시계 등 .

아키하바라에 있는 한 면세점 관계자는 “ 나리타국제공항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 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쇼핑에 투자하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다 ” 고 말했다 . 오사카의 부엌으로 알려진 도톰보리의 한 상인은 “ 인근 호텔에 묵는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른 아침에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단체로 쇼핑 코스를 도는 경우가 다반사 ” 라고 전했다 .

방일 관광객들은 대부분 낮엔 쇼핑을 하고 저녁 이후에는 식당가나 유흥가로 몰린다 . 200 석이 넘는 좌석을 보유한 대형 식당도 긴 대기 행렬은 부득이한 상황 . 덕분에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한 오코노미야키 가게 주인은 말했다 .

노래방이나 이자카야 같은 유흥점도 외국인 특수를 누리고 있다 . 일본의 고도인 교토의 한 노래방은 올 3 월부터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한국어 능통자를 채용했다고 한다 . 외국인 관광객 이용이 기존의 2~3 배 증가했기 때문이다 . 일본 노래방 체인 다이이치고쇼의 관계자는 “ 외국인 관광객 중 35.7% 가 유럽 , 30.8% 가 북미에서 온 사람으로 서양인에게 특히 노래방의 인기가 높다 ” 며 “ 서양은 아시아에 비해 노래방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일본 문화의 하나로 노래방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 고 설명했다 .

외국인 관광객이 늘자 심야와 새벽 노선이 많은 저비용항공사 (LCC) 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 올봄 나리타국제공항에는 LCC 전용 터미널이 문을 열었다 . 간사이국제공항에서는 올 여름 국제 노선에서 차지하는 LCC 의 비율이 25% 를 넘는다 .

반면 한국은 24 시간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일본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 24 일 주중 한국 대사관은 “ 한국에서 메르스가 발병한 후 한국을 찾는 중국인의 비자 발급 건수가 평상시보다 최대 5 분의 1 까지 줄었다 ” 며 “ 특히 단체 관광객들의 비자신청이 급감했다 ” 고 밝혔다 . 대사관 측이 정확한 통계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메르스 발병 전 하루 평균 1 만 5000 여 건이던 비자 발급 건수는 3000 여 건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

이달 들어 메르스 여파로 예약 취소가 잇따르자 대한항공 ·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노선 운항 축소에 이어 이달 말부터는 일본 노선을 대폭 줄인다고 밝혔다 . 대한항공은 지난 18 일부터 하루 두 편 이상 운항하는 노선 가운데 예약이 부진한 중국 17 개 노선과 일본 나리타노선 운항을 축소했다 . 아시아나항공도 지난 11 일부터 홍콩과 상하이 , 하얼빈 등 중국 6 개 노선과 대만 1 개 노선 등 총 7 개 노선 운항을 줄인데 이어 일본 노선 6 개를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

주중 한국 대사관 측은 “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을 재유치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 고 전했다 .

정부는 한편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 중에 메르스에 걸릴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등의 대책을 내 놓았으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