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술 감홍로
“ 입을 닫고 코로 숨을 천천히 내쉬세요 ~” 뜨거운 태양을 한 모금 입에 담는 순간 데일 듯해 ‘헉’ 하는 탄성이 절로 품어져 나온다 . 이렇게 감홍로와의 첫 만남이 시작 되었고 얼얼한 입 안 가득 육전을 베어 물고 찬찬히 필름을 돌려 그 감촉을 되새김하기 시작했다
잘 우러난 한 잔의 차처럼 밝은 황금빛깔의 감홍로 향이 코끝에 살짝 스치는 순간 달콤한 계피향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 약초 냄새가 호기심과 미각을 자극했다
다시 한 모금을 입에 머금자 입 안 곳곳을 돌다 혀끝에 모여든 그 뜨거움은 말로 형언할수 없는 놀라움 이었다. 한 차례 불꽃이 일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은은하고 달콤한 꽃향이 잔잔히 입안을 감돌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 . 배꼽 주변이 묘하게 따뜻해지면서 더운 기운이 점점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몸에 좋은 귀한 탕약을 마신 것처럼 한 모금의 감홍로는 마시는 사람을 왕처럼 대접했고 친구처럼 위로 했으며 연인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따뜻함을 선물해 주었다
감홍로 ( 甘紅露 ) 의 감 ( 甘 ) 은 단맛을 , 홍 ( 紅 ) 은 붉은 색을 , 로 ( 露 ) 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으로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 , 시각 , 후각을 만족시키는 매우 매력적인 명품주이다 .
3 대 명주 중 최고로 꼽히는 감홍로는 1986 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故 포암 ( 浦巖 ) 이경찬 선생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을 , 전통식품명인 차남 이기양 선생이 이를 재현하려 하였으나 2000 년에 작고하자 , 국내에서 이를 유일하게 재현할 수 있는 차녀 이기숙 명인이 부군 이민형 대표와 함께 재현해 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의학서적인 식물본초 고사 12 집에 “ 섬라주 ( 태국산 술 ) 는 일찍이 사람들이 휴대하고 배를 탔으며 서너 잔만 마셔도 취하고 환자가 마시면 나았고 살충작용이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에는 감홍로 , 계당주가 이에 가깝다 .” 고 기술되어 있다 .
이처럼 감홍로는 약을 대신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지초 , 생강 , 방풍 , 진피 , 용안육 , 계피 , 정향등의 한약재를 넣은 감홍로는 내부에서 열이 나게 해 몸이나 장이 찬 사람을 따듯하게 해 주며 , 장의 활동을 도와주고 위를 보호하며 혈액순환을 돕기도 한다 . 물론 술은 약이 아니나 과거에는 약을 대신하여 쓴 기록이 있다
최고의 명주 감홍로는 우리나라 고대소설과 판소리에도 등장하는데 판소리 수궁가에서 별주부가 토끼보고 용궁에 가자고 하는 장면에서 “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 .” 고 하는 장면과 , 춘향전에 춘향이가 이 도령과 이별하는 장면에 향단이보고 “ 이별주로 감홍로를 가져오라 .” 고 하는 장면이 있으며 , 황진이에서 황진이가 서화담을 보고 “ 감홍로 같다 .” 고 표현하는 장면 등 감홍로는 여러 구절에서 전해지고 있으며 , 현대소설 장길산에서는 수많은 구절에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득공의 저서인 경도잡지 ,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 ( 林園經濟 ) 지와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 이규경의 물산변증설에 “ 중국에는 오향로주가 있다면 , 우리나라에는 평양부의 감홍로가 있다 .” 고 하였으며 유득공의 애련정이란 시에서 “ 곳곳마다 감홍로니 이 마을이 곧 취한 마을 일세 ” 라고 기록되어 있다
속담에 ‘ 질병 ( 질흙으로 만든 병 ) 에도 감홍로 ’ 라는 말이 있는데 오지로 된 병에도 감홍로와 같이 좋은 것이 담겼다는 뜻으로 , 겉모양은 보잘것없으나 속은 좋고 아름다운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곱씹을수록 여러 가지로 참 옳은 말이다 . 다른 술과는 달리 마시면서 몸이 순환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건 명주 감홍로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귀한 명품주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널리 알려져 면면히 전통과 명맥을 이어 나가고 더불어 더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더욱 사랑스런 모습으로 오래도록 화자 되길 바래본다 .
글: 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