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행의 시작과 끝 , 국내지역 02] “ 출발 ! 타국을 걷는 길 ” 첫번째
예전과 달리 요즘은 해외를 경험하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닌 시대이다 . 과거엔 사신단의 일원이 아닌 바에야 일반 백성들이 외국을 경험한다는 것은 ‘ 하늘의 별따기 ’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 전쟁으로 인한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간다거나 , 해상에서 표류하여 외국에 표착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외교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 조선의 관료 , 지식인들도 선택받은 이들이 아니면 쉽지 않았다 . 그러나 요즘시대는 누구나 마음먹으면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힐 기회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 관광 , 외교관 , 유학 , 사업 , 주재원 , 그 가족 등 해외경험의 종류와 방식 또한 천차만별이다 . 그렇다면 전통시대의 해외여행은 어떠했을까 ?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은 특별한 기회 , 특정한 계층의 신분이 아니고서는 찾아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 이렇게 국가 간 인적교류나 해외 견문의 기회가 없었던 이유는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자국을 외국으로부터 봉쇄한 쇄국 , 해금의 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다 보니 전통시대 국제관계는 사행 ( 使行 ) 이 중심이었고 , 조선 시대의 대외정책도 중국과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고 사행무역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른바 ‘ 사대교린 ( 事大交隣 )’ 의 정신을 외교관계의 기조로 삼았던 것이다 .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사행단에 합류하여 외국의 문화를 접하고 서구세계와 조우했다 . 이들이 여행의 견문과 소회를 담담하게 일기체로 남긴 기록이 ‘ 연행록 ’, ‘ 연행일기 ’ 와 같은 사행 기록이다 . 우리가 잘 아는 연암 박지원의 < 열하일기 > 가 대표적인 연행록이라고 할 수 있다 . 본 연재에서는 이러한 사신들의 연행기록을 참고하여 , 연행노정의 현장을 추적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는다 . 국내 의주대로부터 중국 연행노정에 이르는 전 노정을 차근차근 되짚어 볼 요량이다 . 2017 년 올해가 한중수교 25 주년이 되는 해여서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이기도 하거니와 전통시대 우리 선조들의 세계여행 , 해외여행의 일면을 추체험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
길 ( 路程 ) 은 인류역사의 발전과 문화의 생성 , 소멸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역사공간으로서 ‘ 옛길 ’ 은 인류의 문화와 문화가 소통하고 문명이 교류했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교통로의 의미를 넘어 이제는 하나의 ‘ 문화유산 ’ 으로 바라보는 인식들이 필요하다 .
청나라의 수도 연경까지의 거리는 3000 리길 , 왕복 5~6 개월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 조선시대 중국으로 향하는 사신단은 국제교류의 핵심이자 , 세계로 향하는 통로였다 . 사신들의 행렬을 통해 조선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 바로 이 연행노정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의주대로이다 . 조선시대 제 1 대로인 의주대로는 한반도의 서북지역을 연결하고 중국을 오가는 주요 교통로로 기능을 했다 . 그러나 남북의 왕래가 멈춘 이후부터 그 기능과 의미를 상실했다 . 새로운 남북관계의 형성과정에서 지금은 통일로와 자유로가 옛 의주대로의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의주대로의 종착지인 ‘ 의주 ’ 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본격적인 중국 연행노정 ( 燕行路程 ) 이 시작된다 . 옛 사신들이 중국을 오가던 길이다 . 국제질서 속에서의 정치외교적인 기능의 길은 물론이거니와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서구의 문물이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해지던 통로가 연행사로였고 , 조선통신사로를 통하여 일본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던 ‘ 동아시아 문명길 ’ 이이었다 . 이 연행노정은 전통시대 대외교류사의 큰 맥이었고 , 그들이 오간 ‘ 연행노정 ’ 은 바로 역사지리 ( 歷史地理 ) 의 현장이었다 .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 라고 했던 E.H. 카의 표현처럼 여전히 중국 연행노정과 국내 의주대로는 같은 의미를 가진 역사공간이자 ,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
길 ( 路 ) 은 흔히 도로 ( 道路 ) 와 같이 얘기된다 . 길의 사전적 의미는 ‘ 차나 우마 및 사람 등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갈 수 있게 만들어진 , 거의 일정한 너비로 뻗은 땅 위의 선 ’ 이라고 하지만 , 나아가 길은 사람이 걷고 , 교통이 오가고 문화가 소통하는 공간이다 . 역사성이 중층적으로 쌓여있는 길에는 그만큼 사연도 많다 . 길에 서린 역사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 그 안에는 喜怒愛樂 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 . 의주대로 곳곳에는 역사 , 인물 , 사건 , 미담 , 철학 , 웃음 , 전쟁 , 고난 , 영광이 서려 있다 . 의주대로를 단순히 인마 ( 人馬 ) 가 오가는 교통로로서의 의미만으로 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전통시대 조선인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중국으로 향하는 사행 ( 使行 ), 혹은 연행 ( 燕行 ) 이 유일한 통로였다 . 사신들이 조선과 중국의 산천 , 도시를 경유하며 풍속과 문화를 견문했던 여정의 현장을 ‘ 사행노정 ( 使行路程 )’, ‘ 연행노정 ( 燕行路程 )’ 이라고 혼용하여 부른다 . 여기서는 조선사신단이 중국 연경 , 즉 지금의 북경까지를 목표로 이동했으므로 , 연행 , 연행노정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한다 . 연행노정의 현장은 크게 국내지역과 북한지역 , 중국지역으로 구분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 국내지역 연행노정은 조선 제 1 대로인 ‘ 의주대로 ’ 를 기준으로 살펴볼 것이다 . 이번 호에서는 사신이 중국으로 출발하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복명했던 한양 ( 서울 ) 지역에서의 사행출발 광경을 중심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
연행노정의 삼절 ( 三節 ) 과 육처 ( 六處 )
조선은 한양 천도 후 1410 년 ( 태종 14) 도로제도를 정비하였다 . 도성의 도로망과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형성되었는데 , 국가의 주요도로망은 증보문헌비고의 9 대로 , 대동지지의 10 대로 , 도로고의 6 대로 등으로 운영되었다 . 각 대로의 제 1 대로는 의주대로였다 . 국가도로망의 핵심이 바로 의주대로였던 셈이다 . 의주대로는 다양한 별칭이 있다 . 한양의 서북지역으로 향하는 교통로라 하여 서북로 ( 西北路 ), 관서지역을 관통하므로 관서로 ( 關西路 ), 의주까지 향하므로 의주로 ( 義州路 ), 중국을 오가는 사행들이 빈번하게 넘나들었으므로 사행로 ( 使行路 또는 燕行路 ) 라고도 불렸다 . 한양을 기점으로 종착지인 의주까지 총 연장 약 1,050 리 ~1,080 리의 교통 · 통신로였다 .
연행의 시작과 끝은 한양 ( 漢陽 ) 이었다 . 한양에서 출발한 사신은 조선 제 1 대로인 의주대로 ( 義州大路 ) 를 기본 노선으로 삼아 이동하였다 . 신경준이 구분한 6 대 간선로 체계도 모든 출발점은 경도 ( 한양 ), 즉 서울이다 . 제 1 로인 < 京城西北抵義州路第一 > 은 경성 , 홍제원 , 고양 , 파주 , 장단 , 개성 , 평산 , 서흥 , 봉산 , 황주 , 평양 , 안주 , 가산 , 정주 , 철산 , 의주에 이르는 길이다 . 이러한 구분은 당시 서울인 한양을 중심으로 각 방면의 극단지역을 방사상으로 연결하여 국토를 포괄하는 도로교통망이라고 할 수 있다 .
도로고 의 6 대로 체계는 19 세기 후반 김정호가 편찬한 『 대동지지 』「 정리고 」 에서는 10 대로 체계로 확충되었다 . 대동지지 ( 권 28) 「 발참 」 조에 따르면 당시 한양에서 의주까지 약 41 개의 역참이 운영되었으며 , 거리는 약 1,050 여리에 이르렀다 . 서북쪽의 역참과 거리 개념이 명확히 서술되어 있다 . 의주대로의 종착지인 ‘ 의주 ’ 로 향하던 기발의 여정을 보면 아래와 같다 .
< 서북쪽 의주대로 , 기발 ( 騎撥 )>
경도 · 기영참 돈화문 밖 · 검암참 23 리 양주 · 벽제참 22 리 고양 · 분수원참 20 리 파주 · 마산참 20 리 파주 · 동파참 20 리 장단 · 조현참 30 리 장단 · 청교참 25 리 개성 · 청석동참 25 리 개성 , 또는 자론참이라고도 한다 · 병전기참 25 리 금천 · 관문참 20 리 금주 · 관문참 30 리 평산 · 석우참 25 리 평산 · 안성참 25 리 평산 · 관문참 30 리 서흥 · 서산참 23 리 서흥 · 산수원참 22 리 봉산 · 관문참 25 리 봉산 · 동선참 20 리 봉산 · 관문참 20 리 황주 · 저복참 20 리 황주 · 관문참 25 리 중화 · 대정참 25 리 평양 , 혹은 지려참이다 · 관문참 25 리 평양 · 부산참 25 리 평양 · 관문참 25 리 순안 · 냉정참 30 리 영유 · 관문참 30 리 보천 · 운암참 30 리 안주 · 관문참 30 리 안주 · 광통원참 25 리 박천 · 관문참 25 리 가산 · 구정참 30 리 정주 · 관문참 30 리 정주 · 운흥참 30 리 곽산 · 임반참 30 리 선천 · 청강참 30 리 선천 · 차련참 30 리 철산 · 양책참 20 리 용천 , 어떤 이는 포원이라 한다 · 소곶참 30 리 의주 · 관문참 30 리 의주 · 모두 41 참 , 1 천 5 십리
위와 같은 의주대로의 원형을 참고하여 국내지역 의주대로의 옛길을 현장답사 할 수 있는 여정을 살펴보면 매우 한정적이다 . 그러나 문헌의 옛길 여정은 현재의 ‘ 의주길 ’ 에 남아있다 .
[ 남한지역 의주대로 ]
한양 – 돈의문 ( 敦義門 )- 병전거리 ( 餠廛巨理 )- 녹번현 ( 녹번 峴 )- 양철평 ( 梁鐵平 )- 관기 ( 館基 )- 박석현 ( 薄石峴 )- 검암참 ( 黔巖站 . 구파발 )- 덕수천 ( 德水川 )- 여현 ( 礪峴 )- 신원 ( 新院 )-( 신원천 , 덕명천 )- 고양 ( 高陽 )- 벽제역 ( 碧蹄驛 )- 혜음령 ( 惠陰嶺 )- 세류점 ( 細柳店 )- 쌍불현 ( 雙佛峴 )-( 쌍미륵 )- 분수원 ( 焚修院 )- 신점 ( 新店 )- 광탄천 ( 廣灘川 )- 파주 ( 坡州 )- 이천 ( 梨川 )-( 화석정 )-( 이후민간인통제구역 )- 임진도 ( 臨津渡 )- 동파역 ( 東坡驛 )- 유현 ( 柳峴 )- 장단 ( 長湍 )- 오목리 ( 吾木里 )- 견양암 ( 見樣巖 )- 조현발소 ( 調絃撥所 )- 판적천교 ( 板積川橋 )
연행의 목적이나 연행참여자의 관심사에 따라 해외에서 견문하는 내용과 활동영역은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 연행노정이라는 공간 ( 길 ) 은 중국에서 정해준 제도에 따라 운용되었기 때문에 조선 조정이나 사신들이 마음대로 노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그렇기 때문에 특히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서면 북경까지 반드시 정해진 노선을 걸어야만했다 .
옛사람들은 연행노정의 전체여정을 삼절 ( 三節 ), 육처 ( 六處 ) 로 편의상 구분해서 왕래에 참고하기도 했다 . 지리공간과 경유지 ( 도시 ) 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구분해 왔다 . 삼절은 크게 초절 ( 初節 : 압록강 – 심양 ), 중절 ( 中節 : 심양 – 산해관 ), 종절 ( 終節 : 산해관 – 북경 ) 을 말한다 . 압록강에서 북경까지는 약 2,050 여리가 되는데 , 십삼산 ( 十三山 ) 이 딱 중간에 위치하여 연행단 전체 여정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 육처는 삼절 구간의 큰 역참이 있었던 도시인 책문 · 봉황성 · 요동 · 심양 · 광녕 · 금주를 말한다 . 그 도시들이 차지하는 상징성과 중요도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육처의 지방관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 특히 육처의 관아에서는 조선 사신들의 중국지역 연행노정을 구간별로 분담하여 책임 호송 및 관리하고 이동기간에 먹을 양식과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 그들이 제공하는 물품을 하정 ( 下程 ) 이라고 불렀다 .
이 밖에도 사신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리개념을 인식하였는데 , 연암 박지원은 『 열하일기 』 에서 전체 노정을 이동경로를 중심으로 < 도강록 >, < 성경잡지 >, < 일신수필 >, < 관내정사 >, < 막북행정록 >, < 환연도중록 > 등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 본 연재도 『 열하일기 』 의 이동경로를 기본으로 삼아 연행노정 전체 구간을 살펴볼 것이다 .
자 그럼 앞서 언급한대로 한양에서 사행이 선발되는 과정과 출발에 앞서 임금에게 하직 후 동료들로부터 전별연을 받고 연행노정에 오르는 장면들의 일단을 살펴보자 .
글: 신 영 담
< 필자소개 >
신영담 : 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대표 . 문화콘텐츠학 박사 .
역사공간으로서 < 의주대로 >, < 연행노정 >, < 병자호란볼모노정 >, < 표해록노정 >, < 강홍립조선군이동로 >, < 나선정벌조선군이동로 >, < 조선족이주경로 > 의 영상기록 작업을 하고 있으며 , 영상아카이브 ( 사진 · 동영상 ·GPS) 구축에 관심을 두고 있다 . ‘ 연행노정 기록사진 ’ 의 공공전시 ( 실학박물관 / 천안박물관 / 심양총영사관 ) 와 방송다큐멘터리 < 열하일기 – 길 위의 향연 >(4 편 / 촬영 · 공동연출 ) 을 제작하였다 . 논저로 『 燕行路程 영상아카이브 구축 및 콘텐츠 활용 방안 연구 』 , 오래된 기억의 옛길 , 연행노정 ( 편저 ), 조선통신사연구총서 – 권 10 ( 공저 ), 코리아타운과 축제 ( 공저 ), 코리아타운과 한국문화 ( 공저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 공저 / 방송대교재 ), 삶과 문화의 현장을 찾아서 ( 공저 ), 연행노정 영상아카이브 ( 저서 / 근간 ) 등이 있다 .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 談 담 , 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가사문학에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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