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뜨거웠던 올 여름날의 태양이 한풀 고개를 숙이고, 어느샌가 상쾌한 바람이 수풀 사이사이를 지나 길 위의 여행자들을 따르고 있다. 곁을 다시 찾아온 이 계절의 여유로움을 산과 바다와 함께 누리려 교동도로 향한다. 교동도는 강화군의 작은 섬이다.  글∙사진 이정찬(미디어원 발행인)

작은 섬을 가득 채운 역사와 문화, 교동향교

백리 길을 쉼 없이 달리니 뭍길은 끊어지고, 섬과 섬을 이어 놓은 물길의 출발지이자 여행의 시발지인 창후리 선착장에 이르렀다. 선착장에서 갈매기 떼의 호위를 받으며 10분 남짓 배를 타고 나가니 교동도 월선포구에 다다른다. 섬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자연이 있다 하니 설렌 마음에 발걸음이 다급해진다.

교동향교로 향하는 길은 주말 오후지만 한적하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가득하고 퇴락한 농가의 텃밭엔 제대로 익은 고추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볕은 나그네의 이마에 땀방울을 가득하게 하지만 곡식과 과일을 여물게 하니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풍요로운 섬이다. 길 곁으로 수수밭 콩밭 고구마밭이 이어지고 밤나무 감나무가 빼곡하다. 코스모스가 한껏 피어 있는 길을 한 시간 남짓 걸으니 교동향교와 화개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반갑다. 한적한 나들이 길에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내심 걱정하던 중이었다.

교동향교는 이정표에서 800m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 23개 향교 중 가장 오래된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세워졌으며 충렬왕 12년(1286)에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유학 제거 안유선생이 원나라에서 공자와 10철(10哲)의 초상을 모신 유서 깊은 곳이다.

본시 화개산 북쪽의 향교골에 위치하였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부사 조호신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대성전에 봉안된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오성위와 종조2현 및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살펴보면서 매년 음력 8월 첫 번째 정(丁)일에 열리는 석전대제를 가늠해 본다.

시간이 멈춘 그곳은 작은 히말라야

화개산은 교동도의 주산이다. 교동향교에서 화개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엔 고려조의 대학자 목은 이색이 머물렀다는 화개사가 있다. 꽤나 가파른 길 끝의 작고 조용한 절 화개사에서 차가운 물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화개산 정상을 향한다.

길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달리 볼 수 없고 낙엽이 그 길을 소복이 뒤덮고 있다. 지난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을 막아선다. 급한 경사에 쉽지 않은 걸음이지만 투박하고 고집스레 시간을 잡고 있는 화개산 그대로의 길을 걸을 수 있어 행운인 듯 감사할 따름이다. 길은 점점 험해지고 깊은 숲 풀꽃 가득한 사잇길을 지나니 저만치 정상이 보인다.

화개산 정상과 잇대어 있는 연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낮은 석단만이 남아있는 화개산 봉수대는 가로 4.6m, 세로 7.2m이고 잔존높이는 1.2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쪽으로 본도의 덕산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동쪽으로 하음 봉천산 봉수로응한다’고 되어 있다.

마침내 산 정상이다. 높이는 259.6m에 불과하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가히 군사적 요충지라 할만하다. 북한의 연백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황해남도 연안군과 배천군이 지척이다. 하지만 길은 여기까지다.

저곳도 우리 땅이지만 물길 뭍길 모두 끊어져 있으니 사람은 있되 길은 없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이 길과 저 길이 만날 날은 아직 기약이 없다. 교동도와 강화도의 연륙교 공사처럼 교동도와 황해남도 사이에 큰길이 놓여지는 그날을 소망하며 하산길에 오른다.

산에서 내려오면 멀지 않은 곳에 교동읍이 있다. 읍에는 그리운 옛 정취와 인심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월선포로 다시 돌아가는 해안도로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해는 기울고 바닷바람은 풀꽃과 갈대를 흔든다. 바다 내음에 한껏 취한 채 월선포에 도착하니 어느새 교동도가 내 마음속에 살포시 들어와 있었다.

가는 길

대중교통 이용 시 3000번(직행)을 타고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까지 이동 후 터미널에서 창후리 선착장(종점)까지는 대략 50분마다 운행되는 창후리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어 창후리 선착장에서 교동도 월선포까지는 배를 이용해 들어가는데, 첫배가 07:30분, 마지막 배가 18:30분으로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뱃삯은 1300원이다. 교동도에서는 마을버스를 이용해 섬을 둘러볼 수도 있다.

맛집

송계정(032-932-5559)은 토종닭백숙과 묵은지도리탕이 별미다. 직접 사육 재배한 토종닭과 장뇌삼을 제공한다. 해주식당(032-933-7895)은 장어조림과 가정식백반이 괜찮다. 창후리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황복마을은 별미 황복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월선포선착장을 출발하여 교동향교 화개사를 거쳐 화개산 정상에 이른 후 대룡시장 삼도수군통어영 동진포 월선포선착장으로 섬을 일주하는‘다을새길’은 총 16km로 약 6시간이 소요된다. 월선포구~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 정상~교동읍성~월선포구의 경로를 택해도 좋다. 소요시간은 약 4시간.

본 기사는 한국관광공사의 월간지 청사초롱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