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천혜의 비경, 사람과 자연이 합일을 이루는 장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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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사람 사는 곁에 집을 지어도,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말이며 수레소리 시끄럽지 않네.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어찌해야 그럴 수 있소?”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마음이 멀어지니 사는 땅은 절로 외지네.”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보니,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한가로이 남산이 시야에 들어오네.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저녁노을로 아름답고,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던 새들은 짝을 지어 돌아오네.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여기 참된 뜻이 있으니,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네.
– 도연명-도잠(陶潛:365-427)의 음주시 20수 중 제 5수

신선이 살 법한 신비함을 지닌 곳, 장시성

양쯔강(揚子江) 중하류 남쪽에 위치한 장시성(江西省)은 중국 명산 중 하나인 루산(廬山)과 삼청산(三淸山), 용호산(龍虎山)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예부터 여행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성도 난창(南昌)을 비롯해 천년 도자기 고향 경덕진(景德鎭), 중국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무원 등 둘러볼 곳도 많다.

장시성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도연명이 있다. 글의 서두에 나온 도연명의 시를 보자면 자연속에서 참된 뜻을 깨닫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른 그의 모습은 그대로 신선(神仙)이나 다름없다. 마침 장시성의 대표적 명산인 삼청산은 태극권과 도교의 발상지로 지금도 많은 도교인들이 순례하는 곳이다.

저 곳 어디엔가 신선이 살 법한 절경 속으로 떠나보자.

혁명의 도시, 난창

장시성 성도는 북부에 위치한 난창이다. 장시성 정치ㆍ경제ㆍ문화 중심지로서 중국 내에서는 역사적인 혁명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공산당 첫 전투가 벌어진 1927년 난창봉기를 일으켰던 곳이 바로 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국민당에 맞서 벌어진 이 전투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지금까지도 난창봉기가 일어난 8월 1일은 중국 인민군의 건군기념일이다.

‘혁명의 도시’라는 꼬리표는 중국공산당의 자부심으로 해석되지만, 자칫 관광객들에게는 유혈의 기억이 스며들 우려가 있다. 허나 2년전 전세기 취항을 계기로 난창은 중국의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거대한 규모와 세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누각, 등왕각

대표적인 곳으로 등왕각(騰王閣)을 손꼽을 수 있다. 난창 시내 중심에 위치한 등왕각은 강남 3대 명루 중 하나로 불리는 누각이다. 당나라 태종 동생인 등왕 이원영이 이 지역 태수로 있었던 659년에 창건했는데, 당대 시인인 왕발의 등왕각서문으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멀리서 바라본 등왕각의 거대함은 관광객들에게 도대체 중국이란 나라의 스케일은 누각마저도 이렇게 작은 성만할 수가 있느냐는 감탄을 선사한다. 하지만 등왕각은 거대함과 동시에 세밀한 아름다움, 그리고 뛰어난 색조를 감상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일 뿐 아니라 내부에는 중국의 전통문물을 보존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총 9층 규모의 누각에는 송나라시대 문호 소동파의 친필로 적힌 현판, 왕발의의 등왕각서를 새긴 비석이 상감되어 있고, 누각의 문기둥에는 마오쩌둥이 지은 주련이 있다. 누각 곳곳이 그야말로 천금문화재다.

난창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는 루산은 국가 중요 풍경 명승구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명산이다. 예부터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기이한 산세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크고 작은 폭포와 기묘한 동굴, 청량한 호수와 마주하게 된다. 그저 걷고 보는 것만으로 블록버스터 만큼의 이질적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루산은 크고 아름다운 폭포가 많은 것으로 특히 이름나 있다. 그중 으뜸인 싼뎨(三疊)는 ‘이곳을 그냥 지나치면 루산 여행은 말짱도루묵’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크고 수려하다. 크게 세번을 꺾여 떨어지는 이 폭포를 보려면 2000여계단을 걸어 내려와야 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는데만 왕복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허나 그 정도의 수고쯤이야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만큼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루산의 또다른 볼거리는 1000채 정도가 모여 있는 이국적인 별장촌이다. 1897년부터 1935년까지 조약을 맺어 영국, 미국, 독일 등 25개국의 서양인들이 이주, 각양각색의 별장을 짓고 살았다 한다. 이 때문에 루산은 서양인들에게 더 익숙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중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이 어린 시절부터 지냈다는 별장을 대하니 문학가의 삶을 마주한 기쁨에 설레기까지 한다.

난창에서 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삼청산도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명대 최고 여행가 서하객이 이 산에 두 번 올랐는데, 오를 때마다 찬사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약 14억년 동안 계속된 지질 변화로 형성된 화강암이 기이한 산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 수려한 폭포, 투명한 샘물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해발 1600m 지점에 3.6㎞ 길이로 만들어진 고공잔도는 그중 백미다. 구름에 갇힌 고공잔도 위를 걸으면 마치 희뿌연 안개로 자욱한 꿈속을 거니는 듯하다. 삼청산은 총 10개의 풍경구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 동해안 풍경구, 남청원 풍경구, 서해안 풍경구는 빼놓지 말자.

루산, 삼청산과 마찬가지로 국가 풍경 명승구로 지정되어 있는 용호산 또한 뛰어난 풍광으로 소문난 노계하가 흐르는 산이다. 용호산은 중국 도교 정일파 주정이 이곳에 있어 도교를 믿는 신도들이 해마다 참배하러 오기도 한다.

수많은 봉우리가 이어진 용호산을 바라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수많은 봉우리가 이어져있고 호랑이가 업드린 듯한 산세와 용이 휘감아도는 자세의 지형을 취했다 하여 용호산이라 불려졌으며, 옛부터 운금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용호산이 비단결 같은 바위로 둘러싸인 것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나무 뗏목을 타고 노계하를 따라 대나무 뗏목을 타고 유람을 하다보면 내가 자연인지 자연이 나인지 모를 경지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투명한 노계하에 비친 양편의 기암절벽과 그 사이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그것으로 한폭의 화첩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찔한 절벽 군데군데에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들이 보인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노계하 유람을 구이린(桂林)의 이강(離江) 유람에 빗대곤 하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수려한 장관들이 펼쳐진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일대 분쟁에서 중국은 막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일본을 굴복시켰다. 그런데 이 나라는 광물자원 외에도 하늘로부터 선사받은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부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풍경속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가는 신선들은 이제 그곳에서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시아의 패권을 움켜쥐려는 중국의 야욕이 부디 하늘이 선사한 자연의 눈부신 비경을 때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사진: 김인철 기자/ 미디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