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최치선 기자)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지명부터 생소했다. 여기가 어딜까? 구글 지도부터 봤다. 독일 남쪽에 있는 바이에른 주의 아주 작은 도시다.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다. 뮌헨에서는 북동쪽 방향 124km거리로 평상시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수도인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약 400km 떨어져 있다. 인접도시 오스트리아 찰츠킴머굿에서는 편도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 레겐스부르크의 돌다리와 페터 대성당 원경(사진=최치선 기자
▲ 시청앞 광장에 있는 조형물 (사진=최치선 기자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독일의 소도시 중 우리나라 경주 같은 고대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서였다. 좀 더 큰 이유는 우리에게 생소한 바바리아의 국립공원을 가보기 위함이었다.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정착민들이 있었다는 레겐스부르크를 동부바바리안 관광청에서 나온 스테판 모더(East Bavarian Tourism Board: Stephan Moder)의 도움을 받아 소개한다.

레겐스부르크는 독일의 고대 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다. 여기서 한 가지 토막 상식을 짚고 가자. 바트 뵈리스호펜(지명 앞에 ‘바트(독일어 Bad)’가 붙은 동네는 온천이 있다는 뜻처럼 독일지명과 오스트리아 지명에 부르크(독일어:burg)가 붙은 도시는 성이 있는 지역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나라로 생각해도 될만큼 닮은꼴이다. 세계 2차 대전의 주범인 히틀러도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오스트리아 언어 역시 독일어이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지만 나치에 의해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 합병된 독일 변방지역이었다.

이런! 레겐스부르크를 소개하다 잠시 옆길로 새버렸다. 다시 돌아와 레겐스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이다.

▲ 구도시 풍경 (사진=최치선 기자)

독일의 고도로서 이곳에는 중세 때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양차대전을 치르면서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습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도시는 걸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만큼 아담하다. 하지만 구도시 대부분의 건물이 전부 문화재급이어서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며칠은 걸릴 듯 싶었다.

▲ 수천년전 만들어진 돌 보도블록 (골목길 전체가 돌을 깎아서 길을 만들었다. 사진=최치선 기자)
▲ 광장과 상크트 페터 대성당의 풍경 (사진=최치선 기자)

레겐스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인 야곱 호텔(Hotel Jakob)에서 스테판 모더를 만나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스테판은 딱딱한 독일인 답지 않게 둥글고 편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이었다. 얼굴에 여유와 미소가 넘치는 그를 따라서 구도심여행을 시작했다.

구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된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곳은 독일 정부가 꽁꽁 숨겨둔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역사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고 라인연방이 형성될 때, 라인연방국 중 하나인 레겐스부르크공국의 수도였던 때문일까. 독일의 젖줄 도나우 강을 품고 있는 레겐스부르크는 2000년이 넘는 시간을 고스란히 담았다.

걸으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은 독일인의 섬세함이다. 구도시 골목에 깔려있는 인도는 단순한 보도블록이 아닌 원형 형태로 돌들을 다듬어 촘촘히 도로를 만든 독일인들의 정성이 스며있는 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골목길과 건축물들을 보면서 스스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만약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나치의 실질적 거점 도시였던 뉘른베르크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처럼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을 공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엄청난 화마를 피해간 덕분에 레겐스부르크는 지금까지 중세 바이에른의 모습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다.

▲ 도나우강 풍경 (사진=최치선 기자)

세계에서 찾아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야외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파안대소를 하고 있는 모습도 전쟁이 비켜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스테판의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거리를 산책할 수 있는 것 역시 평화가 준 선물이 아닐까.

구도시의 매력은 골목길의 오래된 이끼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건물만큼이나 나이 들어 보이는 카페와 앤티크 상점들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이런 구도시의 역사와 클래식한 매력들이 레겐스부르크에게 ‘도나우 강변의 귀부인’이란 애칭을 만들어 줬는지 모른다.

중세도시의 감성에 흠뻑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나에게 스테판은 갑자기 수수께끼 하나를 던졌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을 찾는 것이었다.

▲ 도나우강 다리에서 포즈를 취한 동부 바이에른 관광청의 스테판 모더(사진=최치선 기자)

미리 학습하지 않고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 당황한 눈으로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나를 이곳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 호위무사처럼 위풍당당하게 세워져 있는 건물 앞으로 이끌었다. 바로 상크트 페터(베드로) 대성당이었다. 첨탑의 높이 105m로 여기서 보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대성당은 규모가 커서 카메라로도 전체 모습을 담기 어렵지만 구글 지도로 보면 거대한 십자가를 눕혀 놓은 모습이다. 이 성당이 구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스테판은 다시 도나우강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강에 가까이 가자 지금까지 보았던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리와 주변에 있었다.

다리 이름은 슈타이네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긴 돌다리였으며 한 때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돌다리와 구시가지 그리고 페터 대성당은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