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까지 여성의 인공 임신중절(낙태)이 허용된다. 다만 특정 임신 주수·조건을 어긴 낙태는 지금처럼 처벌받을 수 있다.
정부는 7일 이같은 내용 등을 골자로 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헌법재판소가 현행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18개월 만이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개정안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여성의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임신 14주 때 태아는 보통 키 10~12㎝, 몸무게 70~120g에 해당한다.
또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24주까지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낙태를 허용한다. 지난해 헌재 일부 재판관은 “임신 22주 내외까지 처벌하면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지만 정부는 2주 더 늘렸다.
현행 법률상 성폭력 등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낙태를 허용하는 최대 임신 주수가 24주다. 다만 정부는 입법예고안에 14주를 초과할 경우 보건소 등에서 의사·전문가와 상담을 받은 뒤 숙려(熟慮·곰곰이 생각하거나 궁리함) 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사회·경제적 사유는 출산과 양육을 위한 소득이 불안정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임신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 그간 입법안 논의 단계에서는 성범죄 피해로 미성년자가 임신했을 때에는 아예 주수 제한을 없애는 방안까지 논의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입법안 내용에 관해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곤란하다”며 “다만 헌재의 결정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 재판소는 지난해 4월 낙태죄 처벌 조항(형법 268조·270조)에 대한 위헌 청구 심판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는 위헌성은 인정되나 대체 법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제도로 이번 경우 시한은 오는 12월 31일이다.
이후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은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 등 5개 관계 부처와 함께 현행 형법에서 아예 낙태죄 처벌 조항의 존폐 여부와 함께 조건 설정 문제를 논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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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주수 기준을 둔 일종의 절충안이 마련됐다. 암암리에 이뤄지던 낙태를 일부 합법화해 여성의 자기결정권·건강권을 지키면서 태아 생명권도 보호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7일부터 40일 이상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입법안이 공개되면 낙태죄 전면폐지를 주장해온 여성계와 낙태죄 유지를 밝혀온 종교계 양쪽 모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는 “입법안에는 여성계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하는, 인권적 차원에서 퇴보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공동행동’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정 임신 주수 허용을 비판했다. 이 단체 나영 공동집행위원은 “지난 몇 년간 허용사유, 처벌 등을 검토해달라고 한 게 아니다”며 “실질적 변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준비했냐”고 따졌다.
한국천주교주교회는 “여성의 행복과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낙태 근절 운동을 벌이고 있는 프로라이프의사회는 낙태법 개정 방향 1원칙으로 태아 생명 보호를 꼽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14주 이상 여성의 낙태 상담과정과 숙려기간 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상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또 (미성년·불륜 등)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관련 절차를 밟기가 어려울 것이며 이 경우 허가되지 않은 위험한 약물을 사용하거나 더 음성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또 “생존 불가능한 태아는 24주 이후에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낙태가 필요할 수도 있는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