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공소시효 없앤 ‘태완이법’ 법안소위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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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원 = 강정호 기자 )
16 년 전 , 골목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황산으로 공격당한 태완이 . 화상의 고통속에 신음하는 아들을 두고 태완이 아빠는 반드시 그 나쁜짓을 한 어른을 잡겠다고 약속했다 . 내 아이에게 황산을 끼얹은 범인을 반드시 찾아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 그 다짐 속에 1999 년 5 월 골목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공격 당한 태완이는 49 일 만에 부모 품을 떠났다 . 하지만 부모 심정과 달리 살인죄에 공소시효 ( 당시 15 년 ) 가 있어 그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죄를 물을 수가 없다 .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실체적인 심판 없이 면소 판결을 하기 때문이다 . 2014 년 7 월 , 태완이 부모는 법원에 재정신청 (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직접 사건을 재판에 넘겨달라고 신청 ) 을 냈다 . 공소시효를 3 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 살인범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안간힘이었지만 이마저 현행법을 넘어서진 못했다 .

이처럼 제 2 의 태완이를 막기 위해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1 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 이번 개정안의 소위 통과는 태완이 부모의 심정처럼 흉악범죄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미제에 빠지는 상황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반영됐다 . 앞서 법무부도 2012 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내놨고 , 법원도 찬성하며 힘을 실었다 .

세계적으로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되는 추세다 . 대표적으로 미국과 독일이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고 , 일본은 2010 년 살인과 강도살인 등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12 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앴다 . 법조계에서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것에 대해 환영과 회의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 살인죄 등 강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 ” 이라며 “ 과학수사의 발달로 장기간 증거 보전이 가능해진데다 , 흉악범은 끝까지 벌하는 것이 정의의 관념에도 부합한다 ” 며 찬성했다 . 김웅 변호사는 “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건 관계자 진술이 부정확하고 물증 소실 등 증거의 구체성이 흐려져 공소시효가 있는 것인데 , 선진국이 한다고 오랜 논의 없이 도입하는 게 과연 맞는지는 의문 ” 이라고 지적했다 .

이처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의 계기가 된 태완이 황산테러 사건은 대법원이 지난달 말 부모의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공소시효가 지나 결국 영구미제가 됐다 . 대법원은 “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이웃주민 A 씨를 범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 A 씨가 사건 당시 태완군을 병원으로 옮겼으며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진실 반응이 나왔다 ” 는 점 등을 이유로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태완이 사건 외에도 대표적 영구미제 사건은 진범이 잡혀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경기 화성에서 여성 10 명이 성폭행 ㆍ 살해당한 ‘ 화성 연쇄살인 사건 ’(1986~1991 년 ), “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 ” 며 나간 대구의 소년 5 명이 실종된 ‘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1991 년 ), 이형호 ( 사망 당시 9 세 ) 군이 납치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 이형호 유괴살해 사건 ’(1991 년 ) 의 경우 2006 년 공소시효가 끝나 묻혀버렸다 .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 년이었다 . 2007 년 12 월 형소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10 년 더 늘어 현재 25 년이 됐지만 이들 사건들까지 소급 적용되진 않았다 .

한편 이번 형소법 개정안에서 상해 ㆍ 폭행치사 ㆍ 강간치사 ㆍ 유기치사 등 모든 살인죄에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은 개별법 별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 살인 이외에 ‘5 년 이상 ’ 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의 경우 DNA 등 과학적 증거가 확보되면 범죄자를 특정할 수 없더라도 공소시효를 10 년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심의 과정에서 빠졌다 . 오욱환 변호사는 “ 물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영원히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 유독 살인죄에 대해서만 공소시효를 폐지한다면 다른 흉악범죄와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어 형법학자들의 검토를 거칠 필요가 있다 ” 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