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2016년 2월의 독립운동가 한시대 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 2016 년 2 월의 독립운동가 한시대 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 관장 윤주경 ) 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한시대 선생을 2016 년 2 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한시대 선생은 1889 년 9 월 18 일 황해도 해주에서 부친 한준상 ( 韓俊相 ) 과 모친 문성선 ( 文聖善 )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 1903 년 부친을 따라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떠나 하와이에서 한인기숙학교와 중학과정인 밀스학교를 거쳐 1913 년 7 월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로웰고등학교 4 학년으로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 고교 졸업 후 1916 년 4 월 대한인국민회 맨티카지방회를 설립하고 법무원에 선임되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시작하였다 . 1917 년 흥사단에 입단하였고 , 다뉴바지방회 대의원 자격으로 1918 년 1 월에 개최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대의원회에 참석하여 1918 년 신규사업 10 개조를 입안하였는데 , 국어학교 설립 등 주로 민족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

3·1 운동 소식이 전해진 이후 미주지역에서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중심으로 선전 · 외교활동과 재정모금활동이 추진되었다 . 선생 역시 독립의연금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당시로서는 거금인 $ 550.85 를 납부하였다 .

1922 년 11 월에는 북미실업회사의 감찰원 , 1924 년경에는 다뉴바 한인국어학교 교장 , 1931 년 6 월에는 태극학교 교감을 역임하며 민족교육을 위해 노력하였다 . 1925,6 년 경 딜레노로 이사하여 대한인국민회 딜레노지방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 특히 1935 년부터 1938 년까지 딜레노대의원 자격으로 대한인국민회 대의원회에 참가하면서 한인사회의 통일과 국민회 중심의 통합운동에 앞장섰다 . 로스앤젤레스에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신축 시에는 건축준비위원으로 참여하여 총회관 신축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

1940 년 이후 3 년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광복군 창설을 위한 후원금 모금과 지원활동 , 해외한족대회 개최 ,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한 외교활동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

1945 년 4 월에 개최된 샌프란시스코회의에 대비해 같은 해 4 월 해외한족대회를 주도하고 단장으로 선임되었다 . 선생은 ‘ 비망록 (Statement of Faith)’ 을 작성해 ‘ 미 · 영 · 중 · 소 연합국의 지원으로 한국이 완전한 독립국이 될 것임을 믿으며 , 한국민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최후 승리를 이루는 데에 앞장설 것임 ’ 을 거듭 강조하였다 .

1945 년 8 월 광복 후 재미한족연합회대표단 제 1 진으로 11 월 4 일 귀국한 선생은 대표단 등과 함께 국내 각 정당과 단체 등의 장래 계획과 의견을 수렴하고 충칭에서 귀국한 임시정부 요인들과도 수차례의 회합을 갖고 ‘ 조선의 자주독립 촉성 ’ 이라는 건의안을 1945 년 12 월 미 군정청에 제출하였다 .

1946 년 9 월 초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중립적 입장에서 중간세력들과의 통합운동과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 미국으로 돌아 온 이후에도 선생은 농장사업과 흥사단 활동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

정부에서는 선생의 미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 1995 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2 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