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울린 흉탄의 상흔이 반세기를 지나 다시 공론장의 화약고로 점화됐다. 영화 ‘암살자들’이 육영수 여사 피격 서거 사건을 다루며 불러일으킨 파문이 단순한 문화계 논쟁을 넘어 정치권과 사법부, 그리고 한국 현대사 인식의 근간을 뒤흔드는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족인 박지만 EG 회장과 보수 단체들은 제작진을 사자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검·경에 고소·고발하고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을 예고했다. 반면 영화 제작진 측은 “공개된 외교문서와 역사적 기록에 남은 의혹에 대한 예술적 질문이자 헌법상 보장된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야권 일각 역시 이에 동조하며 방어막을 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은 표면적인 고소·고발이나 정쟁의 수위를 아득히 넘어선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상업적 서사로 소비해 온 일부 문화 권력이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의 부인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식의 반인륜적 암시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해 온 ‘인륜과 도덕의 금도’를 완전히 깨뜨렸다.
역설적이게도 이 파문은 보수 우파 진영에 전례 없는 전략적 ‘꽃놀이패’를 쥐여주고 있다. 사법적 단죄가 내려지면 패륜적 역사 왜곡에 쐐기를 박는 도덕적 승리를 거두고, 만에 하나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면책 판례가 성립될 경우 그동안 진보 진영이 성역화해 온 숱한 현대사 미제 의혹들을 난도질할 수 있는 합법적 무기가 보수 진영의 손에 쥐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가 한국 정치·문화 지형에 던진 거대한 구조적 충격을 짚어본다.

풍자의 선을 넘어선 패륜의 질주… ‘권력 연장 위해 영부인을 바쳤는가’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26 사건 당일 궁정동 안가의 권력자들을 우스꽝스럽고 무기력하게 풍자했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2005), 소시민의 시선에서 현대사의 굴곡을 해학으로 풀어낸 ‘효자동 이발사’(2004), 그리고 중앙정보부 내부의 권력 암투를 팽팽한 심리극으로 엮어낸 ‘남산의 부장들’(2020)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이 스크린에 올랐다.
당시에도 역사 왜곡 논란과 유족의 반발은 뒤따랐으나, 사회적 파열음이 이번처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기존 작품들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공과(功過)를 다투거나, 법원 확정판결과 정사(正史)의 기본 뼈대 안에서 인물의 내면과 권력의 속성을 재구성하는 수준의 줄타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암살자들’은 차원이 다르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종결된 ‘문세광 단독 범행’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가 유신 체제 유지를 위해 저격을 방조하거나 사실상 기획했다는 식의 ‘자작극 암시’를 뼈대로 삼았다.
이는 정치적 비판이나 역사적 재평가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명백한 ‘패륜(悖倫)’의 영역이다.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내의 비극을 남편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고 묵인했다는 식의 서사는, 인간 사회가 공유해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짓밟는 행위다.
표현의 자유라는 외피를 둘렀으나 본질은 말초적 상업주의와 결탁한 저열한 음모론의 유통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문화계 일각이 흥행과 진영 결집에 눈이 멀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훌쩍 넘어버렸다는 지적이 보수 진영을 넘어 일반 시민 사회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사자명예훼손의 법리적 딜레마… ‘의혹의 추적’인가 ‘악의적 날조’인가
사태가 형사 고소와 가처분 신청으로 비화하면서 법조계의 시선은 형법 제308조(사자명예훼손죄)의 성립 여부로 쏠리고 있다. 사자명예훼손은 일반 명예훼손과 달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야만 성립하며, 단순한 허위사실을 넘어 행위자가 그것이 명백한 거짓임을 알고도 적시했다는 ‘악의적 고의’가 엄격히 입증되어야 한다.
제작진과 야권은 방어 논리로 2005년 외교문서 해제 당시 지상파 탐사보도 프로그램(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등)에서 제기됐던 탄도 궤적 의혹, 경호원 오발 가능성, 녹음테이프 상의 총성 간격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미 공론장에 노출된 미제 의혹과 자료를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을 뿐, 고의로 날조한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이 과거의 판례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대법원은 역사적 인물을 다룬 예술 창작물에 대해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진실로 오인할 수 있는 구체적 허위사실의 적시를 통해 고인의 사회적 평가를 치명적으로 저하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왔다.
단순히 수사 과정의 미비점을 짚거나 제3의 총성을 추적하는 수준을 넘어,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영부인을 암살의 제물로 삼았다는 식의 반인륜적 인과관계를 암시했다면 이는 ‘합리적 의혹 제기’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직계 유족인 박지만 회장이 직접 고소인으로 나선 만큼, 수사기관 역시 기계적인 불송치나 각하로 사건을 덮기 어렵다. 제작진이 참조했다는 자료의 객관적 신빙성,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의 자의적 왜곡 여부, 그리고 픽션 고지의 실효성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공방이 불가피하다.
판례가 낳을 거대한 부메랑…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성역 해체의 신호탄
그러나 이 싸움의 가장 두려운 폭발력은 법정 안이 아닌 법정 밖, 즉 ‘선례(Precedent)의 탄생’에 있다. 영화 제작진과 옹호 세력이 눈앞의 작품을 방어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더라도 미제 의혹에 기반한 픽션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사법적으로 관철하는 순간, 그 논리는 스스로의 심장을 겨누는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동일한 법리가 진보 진영의 상징적 인물들과 역사적 성역에 그대로 투영될 때, 진보 진영은 이를 막아설 모든 법적·도덕적 명분을 잃게 된다.
과거 특검과 청문회를 뒤흔들었던 ‘진승현 게이트’ 속 숨겨진 딸 의혹, 옷로비·모피 사건, ‘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의 권력형 비리, 대북 송금의 은밀한 거래 내역 등 수사 기록과 언론 보도로 남아 있는 방대한 미제 의혹들이 팩트 추적형 영화와 픽션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는 문이 열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들의 금품 수수 의혹과 차명 자금 논란을 넘어, 부엉이바위 서거 당일 경호관들의 엇갈린 행적과 무전 기록의 공백 등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을 둘러싼 극단적인 가설과 픽션이 등장하더라도, 진보 진영은 ‘사자명예훼손’이라며 법적으로 상영을 막아설 방어벽을 잃게 된다.
문재인 정권의 안보 참사도 예외가 아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의 월북 몰이와 군 특수정보(SI) 51건 삭제 의혹, 탈북 어민 강제 북송 과정의 반인도적 인권 유린을 두고 “정권 안보를 위해 자국민을 희생양 삼았다”는 식의 팩트 기반 스릴러가 스크린에 걸릴 때, 이를 탄압이라 규정할 근거가 사라진다. 5·18 민주화운동의 무기고 탈취 과정 등 현장 기록의 모순들을 다룰 때도 과거의 주장이 그대로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악의적인 비방이나 날조를 할 필요조차 없다. 국회 속기록, 판결문, 당시 언론 보도에 엄연히 존재하는 ‘해결되지 않은 의혹과 진술의 공백’만을 모아 추적하는 다큐드라마를 제작할 경우, 이번 영화 ‘암살자들’이 만들어준 판례 덕분에 완벽한 법적 면책을 누리게 된다. 그때 가서 진보 진영이 법적 대응에 나서는 순간, 공론장은 적나라한 ‘내로남불’의 민낯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웹툰·AI 시대의 무한 전면전… 이겨도 져도 보수가 쥐는 ‘꽃놀이패’
상황을 더욱 파괴적으로 만드는 것은 미디어 환경의 거대한 변화다. 과거처럼 충무로 대형 투자배급사의 결재를 통과하고 수백억 원의 자본을 동원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잡아야만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생성형 AI 기술의 폭발적 진화는 시나리오 집필부터 실사 수준의 영상 생성, 음성 복제, 사운드 디자인에 이르는 전 과정을 1인 창작자의 손안에 쥐여주었다. 팩트에 기반한 국회 회의록과 판결문 데이터만 입력하면 치밀한 르포 스릴러 각본이 완성되고, 거대한 세트장 없이도 시대극의 질감을 정밀하게 재현한 영상이 쏟아져 나온다.
이 거대한 무기가 향할 곳은 스크린뿐만이 아니다. 웹툰 플랫폼, 웹소설, 유튜브 20분 기획 시리즈, 그리고 숏폼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게릴라식 문화 전면전이 가능해졌다. 이 다변화된 플랫폼은 물리적 극장 앞 시위나 상영관 대관 철회 같은 기존의 방어선으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다.
결국 판세는 보수 우파 진영의 완벽한 ‘꽃놀이패’로 굳어지고 있다. 사법부가 유족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국가 최고지도자와 영부인을 향한 패륜적 음모론 장사에 명확한 철퇴를 내림으로써 보수는 역사적 정통성과 도덕적 판정승을 거머쥐게 된다. 표현의 자유에도 넘지 말아야 할 법적·인륜적 마지노선이 존재함을 공인받는 결과다.
반대로 사법부가 제작진에게 면책을 줄 경우, 보수는 ‘합법화된 판례’라는 최강의 문화적 칼자루를 손에 쥐게 된다. 그동안 진보 진영이 독점해 온 문화 권력의 방파제가 스스로 무너져 내리면서, 진보 진영의 상징적 인물들과 성역화된 역사적 사건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팩트 기반 콘텐츠들이 쓰나미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영화 제작진과 이를 비호하는 일각의 문화 권력은 눈앞의 상업적 흥행과 진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박정희와 육영수라는 거인을 향해 패륜의 칼을 겨눴다. 그러나 그 칼날은 이미 방향을 바꾸어 자신들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 이겨도 명분을 챙기고, 져도 무기를 쥐는 보수의 꽃놀이패 앞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문화 권력은 스스로 초래한 역사상 가장 혹독한 부메랑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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