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한국병

427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한국병

형식 ( 形式 ) 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 명분 ( 名分 ) 은 현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원칙인 것이다 . 그러나 형식과 명분에 얽매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이는 분명 현실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

물을 담기 위해서는 그릇이 필요하지만 , 물이 없는 그릇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 명분이란 포도덩굴을 잡아주는 시렁과 같은 것이다 . 시렁이 포도덩굴의 균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포도덩굴이 시렁에 멋지게 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그런데 내용과 현실을 위해 존재하는 형식과 명분이 사회적으로 큰 병폐가 되고 있다 . 특히 조직사회의 관료화를 부채질하는 요소로 작용하는데서 그 병폐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 이런 병폐를 통쾌하게 지적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

어느 생산 공장에서 돌발사고가 일어나 수리를 하다 보니 잘 쓰이지 않는 부품의 재고가 모자랐다 . 재고수준은 정확히 유지되고 있었지만 고장부위에 특정한 부품이 다량으로 소요되었기에 모자란 것이었다 .

공장장은 구매부서에 발주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직접 부품생산업체에 연락하여 긴급수리를 했다 . 전 직원이 퇴근을 미루고 힘을 합쳐 수리를 마치고 난 뒤에 행정절차를 밟았다 . ‘ 선조치 후절차 ’ 를 취한 것이다 .

그러나 구매부서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 왜 절차를 무시하고 일을 처리했느냐는 것이었다 . 공장장은 워낙 급해서 그랬다고 했다 . 그러나 구매부서에서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절차는 밟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고 따졌다 . 공장장은 정곡을 찔렀다 .

“ 절차를 밝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재빨리 수리를 해서 생산휴지를 단축하는 것은 명제입니다 .” 위의 예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 이런 경우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나 조직체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란 것을 모를리가 없다 .

형식과 명분의 개념을 벗고 몸을 드러내면 제도가 된다 . 제도는 아무리 따져 봐도 일을 도와주는 기능을 담당할 뿐이지 일을 방해하는 기능은 결코 아닌 것이다 .

그러나 행정편의주의 , 담당자의 편의주의로 흐르다보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관료주의다 . 절차를 밟기 위해 일이 지연되고 , 감사가 두려워 소신껏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 규정집을 뒤져서 면책의 구실을 만들고 , 전화 한 통화로 끝낼 수 있는 일에 문서가 오가고 하는 것은 모두 제도의 횡포와 허점에서 싹튼 병폐들이다 .

형식과 명분의 무용론을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 질서와 절차는 목적에 버금가는 부분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 형식과 명분이 내용과 현실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 선 조치 후 절차 ( 보고 )’ 가 조직의 질서체계를 흔든다는 우려도 있겠지만 , 형식과 명분은 절차이지 모든 일을 통제하고 관리할 완벽한 수단은 아닐 것이다 . 사안의 중대성과 완급을 가려야 하는 일에는 담당자의 임기응변과 기지가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며 , 제도가 규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형식과 명분 , 제도는 분명하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방법인 것은 틀림없으나 , 질서와 절차는 형식과 명분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 책임회피와 나태의 근원이 될 분으로 우리가 고쳐야 할 병폐인 것이 틀림없다 .

고성한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