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가는 시간을 끌어안다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이다 .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 경치 좋은 유적지를 가족과 함께 가거나 , 심신을 단련하는 등산을 하거나 . 선택의 수는 다양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충족시켜주는 곳이 있다 .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으로 꽁꽁 묶여져 서울 안에서도 유달리 개발 속도가 더딘 부암동이다 . 독특한 분위기 탓에 국내 유명한 드라마들의 촬영지로도 등장했던 참신한 동네 , 부암동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가 보자 .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

부암동에 가기 위해서는 경복궁역 4 번 출구로 나온 다음 버스정류장에서 0212 번 , 1020 번 , 7022 번을 타고 ‘ 부암동주민센터 ’ 앞에서 내리면 된다 .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길이 점점 한적해 진다 .

서울시 종로구에 속한 부암동은 개발제한구역이면서 군사보호구역에 묶여서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개발이 가장 더디게 진행되는 지역이다 . 인왕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동쪽으로 삼청동 , 서쪽의 홍제동 , 홍은동 , 남쪽의 청운동 , 옥인동 , 북쪽의 신영동 평창동과 접해 있다 . 부암동 동사무소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은 동네 구석구석을 연결해 준다 .

부암동 , 이곳은 서울과 ‘ 다른 곳 ’ 이다 . 한 곳에서 갖가지 소스를 가지고 확실히 다른 냄새를 풍긴다 . 공기부터가 다르다 . 산으로 둘러싸여 말 그대로 공기가 상쾌하다 . 주민센터에서 조금만 밑으로 내려가면 홍대에서나 볼법한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보인다 . 직접 로스팅해 내려주는 커피가 일품인 커피숍도 있다 . 커피숍을 안을 슬쩍 구경했더니 어이쿠 . 국내 유명한 모델이 앉아 있다 .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에서 시야를 조금만 더 확보하면 온통 산이다 . 잘 포장된 도로와 주택들 뒤로 보이는 산이 다른 지역이 가질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 이곳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그저 아기자기한 맛에 특별한 것이 아니다 .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

색감 있는 레스토랑은 반 지하 어디쯤 걸쳐 있고 그 위에는 장독이 나란히 올라가 있다 . 누구네 장독이 남의 집 레스토랑 옥상에 올라 가 있단 말인가 .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풍경을 연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이렇게 느낌 있는 거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골목에는 언제 적 건물인지 알 수 없는 방앗간과 슈퍼 , 이발소가 보인다 . 간판 한번 소박하다 . 간판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 그저 하얀 페인트로 여기가 ‘ 방앗간 ’ 임을 알린다 . 이발소는 사람이 세 명만 들어가도 꽉 찬다 . 요즘 같은 세상에 아직도 이런 이발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 슈퍼는 또 어떤가 . 슈퍼 앞에는 누런 장판을 깔아 놓은 평상이 있다 . 열대야가 기승하는 저녁녘 이면 수박을 한통 깨어서 이웃끼리 도란도란 얘기하며 나누어 먹을 장소가 될 것이다 .

방앗간을 알리는 페인트 간판 옆에는 ‘ 환기미술관 ’ 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 환기 미술관은 부암동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미술관이다 . 상시로 무료로 전시를 하고 있으며 , 가족과 함께 관람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

미술관에서 다시 골목으로 나와 맞은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 창의문 ’ 이 나온다 . 1396 년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을 얻었다 . 정면 4 칸 , 측면 2 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 . 창의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으로 잘 다듬어져 있는 산책길이 보인다 .

걸으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안성맞춤인 곳이다 . 연인과 함께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그대로 쭉 걸어가면 되지만 ‘ 난 여기 모든 곳을 섭렵 하겠어 ’ 하는 대다수의 ‘ 최대한 많은 구경 강박증 ’ 을 가진 사람들은 서둘러 나오라 . 아직도 둘러볼 곳이 무궁무진 하다 .

참신한 청정 구역

부암동에는 여기저기에 유적지들도 많다 . 창의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 무계정사 ’ 와 ‘ 석파정 ’ 이 있다 . 조선 초 안평대군이 이곳이 꿈속의 무릉도원 같다고 하여 무계동이라고 불렀고 , 산 속에 정자를 지어 무계정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질 만큼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그의 아호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석파정의 뜰은 넓고 수목이 울창하여 봄철의 꽃과 가을의 단풍 등 절기에 따라 풍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이외에도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는 청운공원과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돼 있어 장소들을 충분히 숙지해서 가면 둘러보는데 시간적인 도움이 된다 .

부암동은 한 장소에 여러 가지가 혼재된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이 이용됐다 .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드라마 ‘ 찬란한 유산 ’ 한 촬영지와 ‘ 내조의 여왕 ’ 촬영지가 있다 . 식상하지 않은 배경을 끊임없이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드라마 제작자들이 이렇게 참신한 곳을 놓칠 리가 없다 .

가장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는 ‘ 커피프린스 1 호점 ’ 에서 쓸자네 아빠 , 최한성의 집으로 나오는 ‘ 산모퉁이 카페 ’ 다 . 이 카페는 이미 유명해져서 찾아가는 이정표가 여기저기 많다 .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북악산 산책로 진입 표지가 나온다 . 설마 , 곧 나오겠지 . 이렇게 생각한다면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 이제부터 평소 운동부족인 사람들에게는 산책로가 무색한 경사진 산악코스가 시작된다 .

진입로에서 얼마가지 않으면 굉장히 오래된 낮은 층의 다세대빌라가 보인다 . 페인트도 많이 퇴색됐고 겉모양이 썩 훌륭하진 않지만 산속에 있으니 꽤 그럴듯하다 . 담쟁이가 건물을 타고 올라가고 계단을 덮은 모양이 심지어 예뻐 보이기까지 하다 . 경사진 산책로를 따라 올라 가는 길에도 특색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 여기까지 누가 오느냐 . 차를 가진 사람들이 온다 . 이렇게 생각하면 뚜벅이들에게는 조금 슬픈 구석이 있다 .

산을 오르다보면 제발제한구역에 묶여 밭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하는 마을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 그리고 점점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 시작한다 . 공기가 ‘ 청정 ’ 그 자체다 . 휴가철이나 돼서 어디 산 속 깊은 계곡을 찾아 , 큰 맘 먹고 나설 때 맡을 수 있는 그런 공기다 . 소박한 집 앞 그늘에 앉아 있는 마을 주민도 보인다 . 그리고 뒤돌아보면 산등성이로 이어진 서울성곽이 눈앞에 펼쳐진다 . 만리장성이라고 해봤자 이것과 크게 다를 게 있겠어 ? 하는 , 정체불명의 애국심이 솟아나는 순간이다 .

주변 경치에 흠뻑 매료되어 산책로를 따라 가지만 , 이 이상 올라가봤자 카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무렵 산모퉁이 카페가 나타난다 . 생각보다 소박한 규모의 이층 카페다 . 입구부터 눈길을 끄는 노란색의 이국적인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

동양풍의 자그마한 동상들도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 산모퉁이에서 만나는 틀림없이 이색적인 공간이다 .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이 통유리로 되어있고 , 산 아래의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보여 더운 날 눈을 시원하게 한다 . 1 층에는 테이블이 6~7 개 마련돼 있는데 대부분이 여자 손님이다 . 드라마 ‘ 커피 프린스 1 호점 ’ 의 주 시청자인 것 . 아니나 다를까 . 벽면에 사방으로 드라마와 관련된 사진 , 주인공들의 사진과 사인 , 캐리커처가 붙여져 있다 .

이층으로 올라가면 테라스도 마련돼 있어 실외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전망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망원경도 준비 돼 있다 . 또 이곳에는 갤러리에서는 아기자기한 조각 작품이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

산속에서 이게 웬 횡재냐 싶다 . 맛있는 식사와 커피 , 음료를 즐길 수 있는데 에스프레소 한잔 가격이 6000 원이니 , 조금은 비싸다 싶지만 주변 경치와 분위기를 고려할 때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 자 , 이곳은 발품을 팔아도 결코 아깝지 않은 곳 부암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