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불견 골퍼의 8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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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매너 스포츠다!’

골프의 바이블인 골프 룰(규칙)의 첫 장이 ‘에티켓 규정’으로 시작돼 있으니, 이 정의에 이의를 다는 골퍼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들 매너가 있을까? 애석하게도 대자연의 필드에 나와서까지도 주변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매너 꽝’의 몰상식한 골퍼는 여전히 많다. 골퍼를 가장 많이 대하는 캐디들은 매너 좋은 골퍼와 그렇지 않은 골퍼를 가리켜 ‘짱’과 ‘진상’이라고 나눠 말한다. 둘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상대에 대한 약간의 배려’, 그 뿐이다. 이제 곧 대지에 물이 오르고 골프 시즌이 시작된다. 올해는 다들 ‘짱’은 못되더라도 ‘진상’의 범주에는 들지 않길 바라면서, 캐디들의 눈에 비친 ‘꼴불견 골퍼’를 유형별로 소개한다. [글: 신기성]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없음]

1. 늘 준비 중인 느림보
“언니야, 롱티 하나 갖다 줄래!”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가 죽어라 빈 스윙 해대놓고는 뒤늦게 캐디에게 SOS를 치는 게으른 골퍼. 그렇게 시간 죽이는 홀이 두, 세 개 지나가면, “언제나 저 화상이 티샷을 날릴까” 목을 쭉 빼고 기다리던 동반자들은 애써 인내해 보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표정도 자연 일그러진다. 한 술 더 떠 “어, 장갑이 없네!”하며 카트 쪽으로 걸어 나올 때는, 동반자들은 “졌다!”하며 신음을 삼킨다. 그리곤 다짐한다. “저 화상하고 다시 골프 치면, 그 땐 골프채를 분질러 버린다!”
칠 준비를 미리 하지 않고 인터벌을 길게 가져가는 이기적인 골퍼는 골프에서 중시하는 플레이 리듬을 깨기 때문에 어디서든 기피1호. 고립무원을 자처하는 꼴이다.

2. 잘 되면 실력, 안 되면 남의 탓
아주 간혹 볼이 잘 맞았었을 때, “아 이거거든! 이제야 몸이 풀렸나 보네. 본 대로 볼이 가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나온 ‘오잘공(오늘 가장 잘 맞은 공)’에 자화자찬으로 입이 귀까지 찢어진다.
허나, 볼은 본 대로 가는 게 아니라 친 대로 가는 법. 거리가 짧거나 긴 것은 당연지사고, 모래에 파묻히거나 숲으로 들어가는 것도 예사다. 심심치 않게 물에 ‘퐁당’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 꼭 “거리를 엉터리로 불러줘서 그래!”라고 언성을 높이는 ‘조상 탓’ 골퍼들이 있다. 그들은 퍼팅 그린에서도 “네가 브레이크를 잘못 읽어서 빗나갔잖아!”하며 캐디를 몰아세운다. 실수와 관용이 골프의 본질이고 덕목이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

3. 분위기 파괴 형
의도한 대로 샷을 날린다? 타이거 우즈가 아니라 우즈 할아버지가 와도 어림없는 일. 하물며 주말골퍼는 오죽할까. 그런데, 샷이 빗나갔다고 클럽을 내던지거나 아니면 클럽으로 페어웨이를 작살내는 ‘깡패 족’, 또는 초반부터 동반자들과는 아예 담을 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마냥 앞만 본 채 돌격 앞으로 하는 ‘나홀로 족’이 더러 있다.
18홀 라운딩은 결코 짧지 않다. 족히 5시간은 같이 움직여야 하는 동반자들은 지은 죄도 없는데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레 또 눈치도 보며 플레이를 해가야 한다.

4. 휴대폰 떠벌이
“바람 좀 쐬러 왔어. 여긴 별로네. 잔디가 생기도 없고 듬성듬성 나있는 게 맨 땅 같아.”
골프를 즐기러 왔는지 필드에 나온 것을 광고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으로 자신을 알리는 떠벌이. 이동 중에는 그나마 애교로 참아줄 수 있지만, 절대 정숙을 요하는 티샷 때도 떠들어 될 땐 ‘웬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한동해오픈에서 세계 3위인 짐 퓨릭이 우승을 다 잡았다 놓친 것도 따지고 보면, 마지막 날 갤러리들의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 소리 때문이다. 집중력이 그 날의 스코어를 좌우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

5. 양심불량
그린에서 볼 위치를 마크한 후 퍼팅할 때는 홀 쪽으로 한 뼘 이상 가까이 볼을 갖다 붙이거나 그것도 부족해 아예 볼 마크를 볼 지점 훨씬 앞쪽에 휙 던져 놓고는 볼을 집어 올리는 철면피. 페어웨이에서 동반자 눈치를 슬슬 살피며 러프에 놓인 볼을 툭툭 쳐 치기 좋은 평지로 슬며시 밀어놓는 일은 상습이다. 나아가 스코어 카드에 90개가 넘으면 “언니가 알아서 80대로 만들어”라고 캐디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일도 마다 않는다. 양심이 스코어와 무관하지만, 골프의 필수 덕목인데….

6. 얄미운 골퍼
티샷하면서 물고 있던 담배는 캐디에게 들고 있으라고 건네주고, 피고 남은 꽁초도 캐디에게 버리라고 내미는 밉상. 산으로 간 볼은 당연 캐디의 몫이라 여기고 밑에서 뒷짐치고 선 채 “그 나무 아래!”하며 소리만 빽빽 내지르는 일은 기본이고, 벙커에서 볼 건너편에서 뚜벅뚜벅 걸어와 모래판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냥 가버리기도 일쑤다. 그러다가도 틈만 나면, 남들이 해저드에 빠트리고 그냥 가버린 볼을 주워 챙기고 캐디가 가져온 티와 마크까지 아무 허락도 없이 슬쩍 해 부수입까지 올린다.

7. 골퍼가 아니라 갬블러
약간의 돈내기는 사실 긴장감을 불러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허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내기 액수가 도를 지나치면, 즐기는 골프는 더 이상 없다. 골퍼는 완전히 치사해져 상대의 실수만 기대하고, 살벌한 분위기에 캐디는 숨소리조차 죽이게 된다. 상습적인 도박 골퍼는 비기너에게 당연한 핸디를 선심이라도 쓰듯 주고는 지갑을 통째로 턴다.

8. 느끼한 작업 꾼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명찰에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데도 “언니는 이름이 뭐야?”로 시작해, “나이는?”, “어디 살아?”, “가족은?”하며, 호구조사 나온 동사무소 직원도 아닌데 캐디의 개인정보를 ‘작업의 정석’에 따라 차근차근 더듬어 가는 능구렁이. 캐디로서는 속으로 “언제 보았다고 반말?” 또 “알아서 뭐 하시려고?” “네 일(골프)이나 잘 하세요”라고 싸주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들은 또 라운드 중 거리 목 표시 바로 앞에 서서도 ”여기서 그린까지 거리가 얼마?“하며 관계 지속의 끈을 절대 놓지를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휴대폰 번호는?“, 이렇게 깔끔히 마무리한다. 체신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마구 굴러가는데도 그 소리는 귀 등을 타고 넘어가 결코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