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광부였다 – 무대 위 진혼극, 기록 속 영혼들

(미디어원=이정찬 기자) 깊은 계곡의 밤, 무대 위로 광부의 이름들이 되살아난다.
삶의 굴곡을 닮은 산자락에서, 침묵으로 묻힌 기억들이 예술로 다시 노래가 된다.

정선 덕산기계곡 푸른별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총체극 《아버지는 광부였다》는
무명과 고통의 삶을 살아낸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진혼의 서사다.

작·연출을 맡은 최일순은 광산촌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전통연희 넋전춤, 1인극 <넋전아리랑>, 피아노, 시, 연극, 몸짓…

모든 장르가 하나로 얽혀, 하나의 생애를 조용히 떠올린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광부 가족의 이야기로 짜였고, 무대의 매 장면은 한 시대의 감정을 대신 우려낸다.

이 공연은 그 자체로 산문이자 기도다.
광산의 어둠 속에서 묵묵히 일했던 아버지들, 그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삶이
6월 6일, 7일 밤, 별빛 아래 무대 위에서 다시 불린다.

이야기는 공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제목의 사진전 “아버지는 광부였다”가 6월 6일부터 7월 30일까지 덕산기계곡 내 푸른별예술창고에서 열린다.

사진작가 박병문은 폐광촌을 돌아다니며 남겨진 작업복, 갱도, 광부의 표정을 기록했다.

그의 사진은 말 대신 묵직한 숨결로 다가온다.
프레임 안의 어둠과 침묵은, 오히려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공연과 사진은 덕산기계곡 ‘푸른별 이야기’ 산촌문화제의 일부다.
예술가 최일순은 20년 전 이곳에 정착해 예술인 공동체를 만들었고, 지금도 “예술은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고 말한다.

광부의 삶은 이제 사라져가는 역사이자, 그 시대를 건넌 자식들의 가슴속에 남은 애틋한 전설이다.
그 이야기를 우리는 아직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예술로 꺼내어 부르는 이들이 있다.

이번 여름, 정선의 계곡은 조용히 그 목소리를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