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 아버지의 전쟁,잊혀진 6.25》7연대 한 병영의 하우스보이

시리즈 소개 글 6·25 75주년, 한 소년병의 6·25전쟁 참전 실화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새깁니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아버지 일을 도와 소금 장사를 시작했다. 형이 중학을 마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동생이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불운한 운명은 늘 소년의 몫이었다.

그렇게 아버지 밑에서 소금을 져 나르며 소금장수 일을 배우는 동안 인천에도 해방이 찾아왔다. 해방과 함께 주안염전의 일본인 주인들이 쫓기듯 일본으로 돌아갔다. 염전 일부를 인수한 소년 아버지의 소금 장사는 멀리 충청도며 경상도, 황해도에서까지 찾아와 입도선매를 할 정도로 번창했다.

1946년 3월, 소년의 나이 열세 살 때였다. 소년은 국민학교 3학년에 보내졌다. 그러나 열 살도 되기 전부터 구르는 돌이 되어 버린 소년은 단 며칠 만에 학교를 떠났다.

학교를 떠난 소년은 집으로 가는 대신 부평역으로 가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염전 심부름을 해주며 모은 푼돈과 일본인 주인이 준 용돈, 아버지 일을 도우며 받은 용돈이 소년의 저고리 안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다.

부랑하는 소년은 서울과 양평을 거쳐 1949년 겨울 초입 춘천에 다다랐다. 춘천역 근처에 배회하던 소년은 꼭 십 년 전 방태산 골짜기 움막을 벗어나 춘천역 플랫폼에서 기차에 오르던 날을 떠올렸다. 소년은 뭔지 모르게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때 설레던 기대감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심부름이든 날품팔이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춘천을 떠돌던 소년은 1950년 초입 소양강 다리를 건너 어느 군부대 옆 상회(商會)의 문을 두드렸다. 낡은 문이 열리고 땅딸보 사내가 나와 소년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뒤 좌판에는 이런저런 잡화들이 어지러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 어느 구석에서 막걸리가 익어 가는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년은 땅딸보 주인에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땅딸보는 돋보기 너머로 소년을 훑어보더니 대뜸 군부대 심부름부터 시켰다. 소년은 땅딸보가 시키는 대로 물건들을 손수레에 싣고 군부대로 갔다. 위병소 앞에 이르자 위병이 익숙한 듯 손수레 속 물건들을 살피다 말고 소년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땅딸보네 새로 온 아이냐?”

소년이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위병은 알았다며 통과를 지시했다.

소년은 거의 날마다 수레에 물건을 싣고 들어갔다가 빈 수레를 끌고 나오고는 했다. 소년이 배달하는 물품들은 대부분 취사반으로 갔다. 그러는 동안 막사 앞을 오가며 병사들과 친해졌고, 쉬쉬 해 가며 병사들의 개인적인 심부름도 했다. 하사관들과 장교들까지도 소년과 안면이 익숙해지며 먼저 소년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4월의 어느 일요일, 소년은 그날도 취사반에 식재료 배달을 갔다. 식재료를 배달하고 막사 앞을 지나는 소년에게 병사들이 아는 체를 했다. 소년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소년이 병사들과 농담과 장난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일직사관이 다가왔다. 선임 병사로부터 휴식 보고를 받은 일직사관이 병사들과 대화를 하다 말고 소년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도 배달 온 모양이구나. 그런데 네 이름이 무엇이냐?”

“길운하입니다.”

“몇 살이냐?”

“열일곱입니다.”

“아버님은 뭐 하시냐?”

“인천에서 소금 장사하십니다.”

“고향이 인천이냐?”

“아닙니다. 강원도 인제입니다.”

“인천에서 아버님 일이나 도울 일이지 여긴 웬일이냐?”

소년은 말문이 막혔다. 일찌감치 객지 먼 친척 집에서 머슴 아닌 머슴살이를 하는 동안 소년에게는 역마살이 끼었다. 소년은 무슨 못 할 짓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냥요.”

일직사관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더니 빙긋 웃으며 객쩍은 질문을 던졌다.

“열일곱 살짜리 키가 제법이구나. 너 군인 시켜 줄까?”

소년은 눈이 동그래지며 답했다.

“저 정말요? 시켜 주면 하지요!”

농담 삼아 던진 제안에 반색 하는 소년을 보고 일직사관이 껄껄 웃더니 말했다.

“너 이 녀석, 여기서 따로 갈 데가 없는 모양이구나. 잔심부름이나 도우며 여기 머물도록 해라.”

소년은 그러잖아도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제복을 입고 어깨에 총을 멘 군인의 모습은 교육이란 것을 받아 본 적 없는 소년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특별한 신분 같은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날 이후, 그렇다고 해서 소년의 역할이 사실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다만, 땅딸보 집에서 하던 숙식을 군부대에서 해결하게 된 정도였다.

병사들 막사 침상 끄트머리에 소년의 자리가 마련됐다. 소년에게 여벌 군복 한 벌이 주어졌고 점호와 취침 시간이 기간병들의 규칙 그대로 소년에게 적용됐다. 그러나 낮 동안의 일과는 열외였다. 중대 병사들이 훈련을 하고 작업을 하는 동안, 소년은 부대 내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불려 다니며 처리하고 간부들의 심부름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대신했다. 소년은 그렇게 춘천 7연대 한 병영의 하우스보이가 되었다. 그러나 하우스보이는 두 달 뒤 포성과 함께 소년병으로 변신해야 하는 운명을 알지 못했다.

 

미디어원 ㅣ 625 기획팀

📘 이 연재는 장수하늘소 출판사의 길도형 대표가 소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부친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장편 자전 서사입니다.

📅 다음 편은 6월 19일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