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술 재심 무죄구형, ‘눈물 나게 기쁘다’에서 ‘우리 자식들’까지

사진: 동덕여고보 교사 시절 이관술(중앙 양복차림) 나무위키

— 이관술 재심을 둘러싼 한 페이스북 글이 북한 체제 옹호로 확장되는 방식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관술 재심 무죄 구형을 다룬 한 포스팅이 주목을 받고 있다. 게시물은 공개 후 좋아요 수 437개를 넘기며 빠르게 확산됐다. 관심의 크기만큼, 이 글이 무엇을 말하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독자를 특정 결론으로 이끄는 지를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연결하는 논리의 방향이다.

감정으로 문을 연다

“눈물 나게 기쁘다. 내 살아 생전 이런 소식 듣게 될 줄 몰랐다.”

이 문장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적 정서적 입장 선언이다. 독자는 이 문장과 함께 ‘기쁨에 공감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이후 등장하는 모든 문장은 ‘정의의 회복’이라는 감정의 보호막 안에서 읽히도록 설계된다. 이 순간부터 비판적 질문은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법의 권위를 호출한다

“검찰이 오늘 …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재심 무죄 구형은 분명한 법적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이 문장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이후 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판으로 사용된다는 데 있다. 법의 판단이 등장하면, 독자는 그 다음 주장들까지 ‘법이 보증한 의미’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개인에서 조직으로의 점프

“79년 만에 조선공산당과 이관술 선생이 누명을 벗었다.”

여기서 글의 성격이 바뀐다. 재심의 대상은 이관술 개인이다. 그러나 문장은 이를 조선공산당이라는 조직 전체의 명예 회복으로 확장한다. 법적 판단의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이며, 개인의 무죄가 곧바로 조선공산당이라는 조직의 복권으로 연결된다.

국가폭력의 제기, 그러나 방향 전환

“1946년 미군정이 … 고문, 조작한 사건이다.”

미군정기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조작 가능성은 역사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 지점까지는 정당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곧이어 등장하는 해석들은 초점을 개인의 피해에서 조선공산당이라는 조직의 정당성으로 이동 시킨다.

‘민중의 지지’라는 선전 언어

“인민들의 지지가 높던 조선공산당을 공격하려고 벌인 짓이다.”

‘인민들의 지지’는 검증 가능한 지표가 아니다. 자유로운 선거와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의 ‘지지’를 이렇게 표현하는 순간, 설명은 미화가 된다. 이는 오늘날 북한이 스스로를 정당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동일한 문법이다.

비극의 서술, 책임의 절단

“한국전쟁 직후 … 산내 골령골에서 처형당했다.”

산내 골령골의 처형은 분명한 비극이며 비판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쟁의 발발 책임과 분리된 채 제시되면서, 독자는 사건을 일방적 피해 서사로만 인식하게 된다. 맥락은 잘려 나간다.

영웅 서사의 구축

“사회주의혁명가다… 70번 연행… 신출귀몰했다.”

사실 전달을 넘어 찬양의 어휘가 집중된다. 문제는 이 영웅 서사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정치 현실과 비판 없이 연속된다는 점이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과 전후 좌익 활동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가장 중요한 문장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다.”

이 문장은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선공산당 정당화의 분기점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조선공산당 재건은 합법 정치 활동이 아니었고, 이후 체제 전복 노선과 맞물렸다. 이 구분을 생략하는 순간, 독립운동과 전후 좌익 활동은 하나로 합쳐진다.

국가 판단의 기준을 삭제한다

“국가는 … 서훈조차 하지 않았다.”

서훈은 공적뿐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대한 태도를 함께 고려한다. 이 문장은 그 기준을 삭제한 채, 국가의 판단을 도덕적 결함으로만 재구성한다.

현재형 정치 선언

“사회주의독립운동가의 복권은 여전히 우리 투쟁의 몫.”

재심 무죄는 법의 문제다. 그러나 이 문장은 그것을 현재 진행형 정치 운동으로 전환한다. 추모가 동원이 되는 지점이다.

계승의 언어

“그들이 우리 곁으로, 우리 자식들 곁으로…”

이는 역사 연구가 아니라 미래 노선의 제시다. 독립운동의 이름으로 특정 이념의 계승을 요청하는 문장이다.

상징적 마무리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다.”

 

재심 무죄 → 조직 복권 → 계승 정당성 → 기념 서사.

이 연결은 우연이 아니라 완성된 프레임다. 개인에 대한 재심 무죄 구형은 국가 폭력의 시정이라는 법적 판단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 조선공산당이라는 조직의 명예 회복, 더 나아가 북한의 유일 집권당으로 이어진 조선노동당 계열의 역사적 정당성까지 암시하는 순간, 글은 해석을 넘어 북한 체제에 대한 간접적 옹호로 이동한다.

이런 글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실 몇 개를 틀리게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특정 결론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개인의 비극과 법적 시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조선공산당이라는 조직의 복권과 계승의 정당성까지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서술은, 한국전쟁의 책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헌정 질서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특히 ‘민중의 지지’, ‘복권’, ‘우리 자식들’과 같은 표현은 듣기에는 인도적이지만, 실제로는 전쟁 책임을 삭제하고 체제의 폭력을 희석하는 언어다. 이것이 반복될수록, 한국전쟁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회피 대상이 되고, 북한 체제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한 갈래로 둔갑한다.

그래서 이런 글들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다. 역사를 설명하는 글의 외형을 한 정치적 프레임이며, 우리가 무심히 소비할수록 공동체의 기준은 흐려진다.

재심 무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판단을 빌미로 북한 체제의 역사적 정당성까지 열어두는 서술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이 글을 시작으로, 우리는 다음 질문들을 차례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민중의 지지’라는 말은 어떻게 폭력을 가리는가.
재심 무죄와 서훈, 그리고 국가의 기준은 어디에서 갈리는가.
왜 우리는 아직도 1948년과 1950년을 정확히 구분해 읽어야 하는가.

미디어원은 기획 연재를 통해 그 질문에 답을 하고자 한다.

연재 예고 (유지)

1회: ‘민중의 지지’라는 말은 왜 검증될 수 없는가

2회: 재심 무죄와 서훈 기준 — 법과 이념의 경계

3회: 독립운동과 정부 수립 이후 좌익 활동은 왜 구분돼야 하는가

4회: 한국전쟁의 책임을 흐리는 언어들

미디어원 ㅣ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