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중동을 설명하는 수많은 글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란을 단순한 종교 국가나 반미 국가로만 설명한다. 그러나 이란은 그런 단순한 틀로 이해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수천 년 동안 제국과 제국 사이에서 살아남아 온 페르시아 문명의 후예이며, 세계 지정학의 교차점에 놓여 있는 국가다.
지도 위에서 이란을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 나라는 중동,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남아시아, 그리고 페르시아만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다시 말해 유라시아 대륙의 남쪽 통로이자 중동의 중심부다. 이 위치 때문에 이란은 늘 강대국들의 관심을 받았고, 동시에 그들과 충돌하는 경계선이 되었다.
그래서 이란의 역사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나라는 늘 제국 사이에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시작
이란의 뿌리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다.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왕이 세운 아케메네스 제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제국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아나톨리아, 그리고 인도 서부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다.
키루스 대왕은 역사에서 특별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정복지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통치 방식을 택했다. 바빌론을 정복한 뒤 유대인들을 해방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사건은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그는 중요한 인물로 기억된다.
당시 페르시아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다. 이 종교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철학을 중심으로 하며 불을 신성한 상징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이란 일부 지역에는 조로아스터교 공동체가 남아 있다.
아케메네스 제국 이후에도 페르시아 문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로 이어지며 중동에서 강력한 문명 국가로 존재했다. 특히 사산 왕조는 동로마 제국과 수 세기에 걸쳐 경쟁하며 중동의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7세기 초 페르시아는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력과 마주하게 된다.

아랍의 정복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등장한 이슬람 세력은 빠르게 확장했다. 그리고 곧 페르시아 제국과 충돌하게 된다.
결정적인 전투는 두 번이었다.
636년 카디시야 전투
642년 니하반드 전투
이 전투 이후 사산 왕조는 붕괴했고 페르시아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 권력은 아랍 세력에게 넘어갔지만 문화와 언어는 살아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페르시아 문화는 이슬람 세계 전체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궁정 문화, 행정 제도, 문학과 철학의 상당 부분이 페르시아 전통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아랍은 페르시아를 정복했지만, 페르시아는 이슬람 세계의 문화를 정복했다”
시아파 국가의 탄생
오늘날 이란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는 시아파 국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란이 처음부터 시아파 국가였던 것은 아니다.
이 변화는 16세기 초 사파비 왕조에서 시작된다.
1501년 이스마일 1세가 사파비 왕조를 세우면서 이란은 공식적으로 시아파 국가가 된다. 이 결정은 단순한 종교 정책이 아니라 정치 전략이었다.
당시 중동에는 강력한 수니파 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를 국가 정체성으로 삼음으로써 오스만 제국과 자신을 분명히 구분하려 했다.
이 선택은 이후 중동 정치의 중요한 균열선을 만들었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쟁, 중동에서 반복되는 종파 갈등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시기에서 시작된다.

터키와의 경쟁
사파비 이란과 오스만 제국은 수 세기 동안 중동의 패권을 놓고 경쟁했다. 두 제국의 갈등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종교적 경쟁이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은 수니파 세계의 중심이었고 사파비 이란은 시아파 세계의 중심이었다.
이 경쟁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현대의 터키와 이란은 직접 전쟁을 벌이지는 않지만 시리아,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등에서 서로 영향력을 겨루고 있다.
러시아와의 전쟁
19세기에 들어 이란은 또 다른 강대국과 충돌한다. 바로 러시아 제국이다.
러시아는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코카서스 지역을 장악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와 두 차례 큰 전쟁이 벌어진다.
첫 번째 전쟁은 1804년부터 1813년까지 이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것이 굴리스탄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페르시아는 조지아와 다게스탄, 아제르바이잔 북부를 러시아에 넘겨야 했다.
두 번째 전쟁은 1826년부터 1828년까지 이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 체결된 것이 투르크만차이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페르시아는 아르메니아와 나히체반까지 러시아에 넘긴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 아르메니아가 존재하는 배경도 바로 이 전쟁에서 시작된다. 이란 역사에서 이 사건은 국가적 굴욕으로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