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문화 하영은 무엇을 사과해야 했나…친일의 기억, 가족의 침묵, 그리고 분노의 광기

하영은 무엇을 사과해야 했나…친일의 기억, 가족의 침묵, 그리고 분노의 광기

배우 하영이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적 행적을 알지 못한 채 ‘4대째 의사 집안’을 자랑했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논란은 멈추지 않고 친일파 후손, 재산 환수 주장으로 번졌다. 가족 자랑은 전해지고 불편한 역사는 사라진 사회에서 후손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묻고 싶다.

하영 증조부 안상호 친일 논란과 후손 책임 문제의 중심이 된 배우 하영 이미지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은 가족사의 기억과 후손의 책임 문제로 번졌다. 참고이미지: 미디어원

[역사를 다시 묻다]

이정찬 발행인 ㅣ 미디어원

배우 하영이 결국 사과했다.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적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것을 반성했고,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과문을 읽으면서 오히려 다른 질문이 생긴다.

“하영은 무엇을 사과해야 했던 것일까.”

증조부의 행동인가, 자신이 그것을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집안의 좋은 역사만 알고 그것을 공적으로 자랑했던 것인가. 세 가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하영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가문’이라고 소개하고 증조부가 고종을 진료했던 의사라는 사실까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면, 자신이 꺼낸 가족사의 다른 면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논란이 처음 제기됐을 때 충분한 확인 없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가 이를 번복한 것은 분명 좋은 대응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흥미로운 문제는 따로 있다.

“왜 하영은 몰랐을까.”

4대째 의사라는 기억은 남았는데

안상호는 1872년에 태어난 근대 의료 엘리트였다. 고종을 진료했고, 일찍 서양의학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자손들이 의사의 길을 걸었다. 그것이 오늘날 하영에게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의 기억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기억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상호가 친일 성격의 대정친목회 평의원이었던 사실, 1918년 그의 가족이 식민지 언론에서 일선동화의 한 사례로 소개됐다는 사실이다. 그의 부인은 일본인이었고, 안상호 자신도 일본인 사회와 가까운 생활을 했으며 조선인 사회와 거리를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을 가지고 곧바로 안상호라는 인간 전체를 ‘친일파’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일제강점기 삶에 친일적으로 평가할 만한 행적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종을 진료한 근대 의사’라는 이야기는 100년 가까이 가족의 자부심으로 남았다. 반면 그 사람의 불편한 식민지기 행적은 증손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좋은 기억은 살아남았고 불편한 기억은 사라졌다.

이번 논란에서 우리가 정말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낡은 역사 문서와 의료 기록, 사진을 돋보기로 확인하는 장면
친일 논란을 판단하려면 단체 명단이나 인상비평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료와 행적을 확인해야 한다. 참고이미지: 미디어원 AI편집실

이것은 하영 집안만의 문제일까

사실 이런 일은 한국의 많은 집안에서 벌어진다. 우리는 자신의 조부가 일제강점기에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른다. 증조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더욱 모른다. 독립운동을 했는지, 관청에서 일했는지, 일본 기업과 거래했는지, 만주에 갔는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의 역사를 가르치는 문화 자체가 크게 약해졌고, 예전처럼 가문과 혈통이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도 아니다. 그것은 나쁜 변화만은 아니다. 개인의 삶은 조상의 삶보다 중요해졌고, 사람을 집안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족의 역사도 함께 잃어버렸다. 하영 역시 그렇게 자란 한 세대일 수 있다. 그래서 ‘몰랐다’는 그의 설명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자신도 잘 몰랐던 가족사를 좋은 부분만 가지고 공적으로 자랑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분노하는가

이 지점에서는 하영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감정 역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모두 무지한 대중의 광기라고 치부하면 이번 현상을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장면으로 보일 수 있다. 친일적 행적이 있었던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집안은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자손들은 대를 이어 의사가 됐다. 그리고 100년 뒤 유명 배우가 된 증손녀가 방송에 나와 ‘4대째 의사 집안’을 자랑했다.

한국 사회에는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오래된 기억이 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안이 몰락한 후손들의 이야기도 숱하게 들어왔다. 반대로 식민지 시대에 권력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해방 뒤에도 재산과 지위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도 익숙하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에게 하영의 ‘4대째 의사 집안’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 자랑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친일했던 집안은 저렇게 잘살았는데 그것을 또 자랑하는가.”

이런 박탈감과 분노가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여기에서 반드시 선을 그어야 한다.

분노와 사실은 다른 것이다

안상호 집안의 오늘날 재산이 안상호의 친일행위에서 형성됐다는 증거는 현재 제시되지 않았다. 4대째 의사라는 사실과 친일의 대가로 부가 세습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명제다. 그 사이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논란은 이미 그 선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한 방송에서는 안상호 집안의 재산이 앞으로 친일재산 환수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까지 거론했고, 연예매체들은 이를 받아 ‘하영 집안 재산 환수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친일적 행적 논란에서 시작된 사건이 며칠 만에 후손의 현재 재산 문제까지 도달한 것이다.

친일적 행적 → 친일파 → 친일파 후손 → 증손녀 사죄 → 집안 재산

너무 빠르다. 역사는 이렇게 뛰어가서는 안 된다. 분노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유 있는 분노라고 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한국 가족사진과 족보를 바라보는 현대의 젊은 여성을 표현한 장면
가족의 자랑은 세대를 건너 전해지지만 불편한 역사는 쉽게 사라진다. 기억의 계승과 책임의 상속은 다른 문제다. 참고이미지: 미디어원 AI편집실

하영이 사과할 것은 따로 있다

하영이 자신의 가족사를 잘 몰랐다는 사실 자체가 죄는 아니다. 증조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하영이 선택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위 그 자체를 증손녀가 대신 사죄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하영에게 남는 책임은 훨씬 제한적이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가족사를 좋은 부분만 가지고 공적으로 자랑했다는 것, 그리고 논란이 제기된 뒤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사실무근’이라고 대응했다는 것. 그 정도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가족사를 제대로 알아보고 불편한 부분까지 받아들이겠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증조부의 죄를 대신 짊어질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역시 돌아볼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은 한 배우의 가족사보다 훨씬 큰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아직 친일 문제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작은 단서 하나만 나타나도 80년 동안 쌓여 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 분노의 배경에는 해방 후의 친일 청산 실패와 부와 지위의 세습에 대한 불공정 의식이 있다. 그것은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동조하는 것은 다르다.

한 사람의 친일적 행적을 검증하는 일과 그의 증손녀를 공격하는 것은 다르다. 과거의 재산 형성 과정을 조사하는 것과 현재 후손이 가진 재산을 먼저 의심하는 것도 다르다. 역사적 정의를 요구하는 것과 집단적 응징을 원하는 것 역시 다르다.

“이 선이 무너지면 역사는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분노의 도구가 된다.”

기억해야 하지만 상속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하영 논란이 우리에게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조상의 역사를 후손에게 얼마나 가르쳐야 하는가. 좋은 일만 가족의 자랑으로 전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도 함께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독립운동을 했다면 그것을 기억하고, 친일적 행동을 했다면 그 역시 숨기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가족이 역사와 만나는 가장 건강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과 책임을 상속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역사는 물려줄 수 있어도 죄는 물려줄 수 없다.

안상호의 친일적 행적은 안상호의 역사다. 그 역사를 알지 못한 채 가족의 좋은 부분만 이야기했던 것은 하영이 돌아볼 일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죄까지 하영에게 요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혈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로 돌아간다.

사람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분노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해할 수 있는 분노와 위험한 광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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