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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재 칼럼] 축구는 4연패, 양궁 신화는 붕괴…우리가 가르친 아시아의 역습

여자 리커브 사상 첫 ‘노골드’, 28년 단체 독주도 끝났다…메달 만드는 비법까지 수출했던 한국, 그들이 턱밑에 닿을 동안 우리는 ‘그다음’을 준비했는가

2026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연패를 표현한 한국 대표팀 우승 재구성 이미지
한국 남자축구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4연패를 표현한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환호와 충격이 잔인할 정도로 엇갈렸다.

그라운드는 축제의 도가니였다. 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3일 일본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1-0으로 꺾었다. 엄지성의 통쾌한 결승골과 배준호의 지휘 아래 거둔 이 승리로 한국 축구는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2022년 항저우에 이어 대회 역사상 유례없는 ‘4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유럽파 주축들에게 병역특례라는 거대한 날개를 달아주며 축구는 다시 한번 환희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축구장의 뜨거운 열기가 채 식기도 전, 사선(射線)에서 날아든 소식은 온 나라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반세기 가까이 당연한 권리처럼 누려왔던 금메달이 거짓말처럼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한국 여자 양궁 리커브가 단 하나의 금메달도 건지지 못한 채 빈손으로 대회를 마쳤다. 1978년 방콕 대회에서 양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한국 여자 리커브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수확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오예진·강채영·이윤지로 꾸려진 단체전은 인도에 3-5로 무릎을 꿇으며 1998년 이후 이어져 온 ‘28년 단체전 7연패 독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어진 개인전 결승에서도 오예진이 인도의 17세 신예 쿰쿰 모호드와 슛오프 혈투를 벌였으나 모호드가 10점에 꽂아 넣는 사이 8점에 그치며 또다시 금메달을 헌납했다.

한국 여자 리커브 은메달과 인도 금메달을 표현한 아시안게임 단체전 시상식 재구성 이미지
한국 여자 리커브의 은메달과 인도의 금메달을 표현한 단체전 시상식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우리가 활을 못 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무섭도록 잘 쏘게 된 것인가.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와 마주한다. 인도의 활시위 뒤편에 바로 ‘한국 사람’이 서 있었다.

한국 양궁의 기술과 훈련 체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거쳐 호주와 미국의 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일궈낸 ‘양궁 대부’ 이기식 감독이 2025년 인도 리커브 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한 것이 단적인 방증이다. 2003년 인도 육군스포츠연구소에서 인도 궁사들을 조련했던 채홍기 코치를 비롯해 수많은 지도자가 20년 넘게 현지에 K-양궁의 DNA를 심었다.

물론 인도의 약진을 온전히 한국 지도자 개인의 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인도의 과감한 국가적 인프라 투자와 풀뿌리 육성이 결합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 양궁 기술의 세계화는 이제 일개인의 도전을 넘어섰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8월에도 대한양궁협회와 세계양궁연맹은 80만 달러 규모의 국제개발 협약을 맺고 중남미 국가들에 한국 지도자를 직접 파견해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했다. 우리는 활과 메달만 수출한 것이 아니었다. 메달을 빚어내는 장인의 제조법 자체를 지구촌 곳곳에 아낌없이 가르쳐왔다.

그렇다면 그 뛰어난 한국의 지도자들은 왜 끊임없이 고국을 떠나 이국땅으로 향해야만 했는가. 여기서 한국 엘리트 체육의 그늘진 민낯이 드러난다.

평생 활시위만 당기고 매트 위에서 땀을 쏟았던 선수들에게 은퇴 후 가장 자연스러운 진로는 후진을 양성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국내 실업팀과 학교 운동부의 자리는 바늘구멍보다 좁다. 대한체육회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선수경력자 7,521명 중 은퇴 후 스포츠 관련 분야에 안착한 비율은 38.4%에 불과했다. 무직 비율 역시 38.19%에 달했다. 선수들의 평균 은퇴 연령은 고작 23.6세다. 보통의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나이에 그들은 인생의 전부였던 첫 번째 직업에서 퇴출당한다.

국내에 머물 자리가 없는 은퇴 지도자들에게 세계는 기회의 땅이었다. 한국 스포츠의 세계적인 위상 덕에 그들은 해외 곳곳의 사령탑으로 영입됐고, 그들이 정성스레 길러낸 제자들은 10년, 20년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한국의 심장을 겨누는 강력한 라이벌로 우뚝 섰다.

오예진의 여자 리커브 개인전 은메달과 인도 금메달을 표현한 재구성 이미지
오예진의 여자 리커브 개인전 은메달과 인도 쿰쿰 아닐 모호드의 금메달을 표현한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스포츠 기술을 독점의 금고 속에 영원히 가둬둘 수 있는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현대 스포츠에서 기술과 데이터는 국경을 지우고 빛의 속도로 유통된다. 우리 역시 이번 대회 컴파운드 종목에 과거 인도 대표팀을 조련했던 이탈리아 출신 세르지오 파니 코치를 전격 영입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우리의 기술이 유출되었는가” 따위의 편협한 쇄국주의가 아니다. 질문은 오직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한다. “남들이 우리를 맹렬히 베끼고 쫓아오는 동안, 우리는 과연 그들을 따돌릴 ‘그다음’의 초격차를 만들어냈는가.”

“스포츠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메달의 제조법을 온 세계가 복제해 사선(射線)에 서는 동안, 우리는 과연 그들보다 반 보 앞선 ‘미래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는가.”

한국 양궁이 불패의 신화로 군림했던 진짜 힘은 단순히 시위를 당기는 손끝의 감각이 아니었다. 혹독하리만치 공정한 선발전, 체계적인 스포츠 과학과 심리 훈련, 방대한 데이터 분석과 장비 개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유기적 시스템의 승리였다. 그러나 추격자들이 그 시스템을 완벽히 흡수하고 자기화하는 동안, 우리는 과거의 성공 공식에 취해 안주했던 것은 아닌가. 세계의 상향 평준화는 예고된 필연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남자축구의 4연패는 한국 스포츠의 또 다른 단면을 시사한다. 아시아 축구의 전력 차 역시 얇은 종이 한 장 수준으로 평준화됐다. 한국 축구의 이름값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준결승에서 중국을 2-1로 역전하고 결승에서 일본의 거센 공세를 1-0으로 끈질기게 버텨낸 것은, 흔들리는 시스템 속에서도 선수들의 개인 역량과 투지가 극한의 순간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특정 종목의 승리만으로 스포츠 강국의 착시에 빠질 수도 없고, 특정 종목의 몰락만으로 섣부른 파산 선고를 내릴 수도 없는 것이 2026년 한국 스포츠의 복잡한 현실이다.

이제 진짜 무거운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합숙소에 선수들을 가둬두고 군기를 잡으며, 부상을 투혼으로 둔갑시키고, “애국을 위해 뛰어라”며 등을 떠밀던 낡은 국가주의 엘리트 스포츠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아니, 마땅히 끝장내야 할 야만의 시대였다.

그렇다면 국가주의의 멍에가 걷힌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선수를 달리게 할 것인가. 천문학적인 연봉인가, 개인의 명예와 프로 무대의 성공인가, 아니면 진정한 자아실현인가. 선수의 기본권과 행복권을 온전히 보장하면서도 세계 정상을 지켜내기 위한 압도적인 훈련량과 치열한 승부욕을 어떤 동기부여로 끌어낼 것인가.

금메달 몇 개를 잃어버린 수치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숙제가 우리에게 떨어졌다.

축구는 기적처럼 역사를 썼고, 양궁의 오랜 신화는 사선의 먼지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리가 가르친 아시아는 어느새 우리의 턱밑을 넘어 저만치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단 1밀리미터도 전진할 수 없다. 이제 한국 스포츠가 사선 위에 서서 증명해야 할 것은 어제의 신화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워진 내일의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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