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 =이연주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을 향한 핵심 공약인 장벽 건설을 위해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 밀어부치기 ” 승부수를 놓았다.
앞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예산안을 합의하면서 국경장벽 건설과 관련해 13억7500만달러를 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57억달러에는 크게 모자라는 수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예산안에 대한 서명을 거부하면서 또다시 셧다운에 돌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다. 이미 여야가 합의한 예산안을 한 차례 거부하면서 사상 최장기 셧다운을 경험한 상태다.
트럼프는 예산안에 서명해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함과 동시에 원하는 장벽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우회로로 국가비상사태 선포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국방 예산 일부를 돌려 국경장벽 건설에 사용할 수 있다. 오는 9월30일 종료되는 현 회계연도에 군 건설사업 용도로 배정된 예산은 총 104억 달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장벽 비용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다만 이 중 얼마가 남아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뉴욕타임스에서 “대통령이 의회를 건너뛰고 있다”며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대응하기 위해 “옵션들을 점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한 법적 대응 가능성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국경장벽과 관련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대통령 권한의 총체적 남용이 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경고 메시지를 던진 상태다.
공화당 일각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중도파인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은 “이것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랜드 폴 상원의원도 “우리 정부는 권력 분립을 규정한 헌법을 갖고 있다”며 “세입과 세출 권한은 의회에 주어져있다”고 강조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관련법 제정 후 40여년 동안 모두 58차례 선포됐을 정도로 흔한 조치다. 다만 대다수가 대북 제재, 핵확산 방지, 무역 등의 국제적 분쟁을 다루기 위해 선포됐다는 점에서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이번 비상사태 카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국내 사안과 관련된 역대 비상사태도 2001년 9·11 테러나 2009년 돼지독감 대유행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왔다. 때문에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비상사태 선포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