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이만재 기자) 2025년 5월 18일, 이스라엘은 한 전설적 첩보원의 삶과 죽음을 되새기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날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스파이로 꼽히는 엘리 코헨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공개 처형된 지 정확히 60년 되는 날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모사드 국장 다디 바르네아는 고인의 아내 나디아 코헨에게 그의 유품 2,500점을 전달했다. 이 유물은 시리아 정부가 최근 자발적으로 반환을 제안하며 이스라엘에 넘긴 것으로, 정치적 의미가 담긴 외교 제스처로 해석된다.
엘리 코헨은 1961년부터 1965년 체포되기까지, 시리아군과 정부 핵심부에까지 침투한 모사드 요원이다. 그는 ‘카밀 아민 타베트’라는 가명의 시리아인 기업가로 위장해 국방장관의 고문직을 맡을 만큼 권력 핵심에 접근했다. 이 시기 그는 시리아의 군사기밀, 방공망 배치, 전차와 전투기 도입 정보까지 이스라엘에 넘겼다.
그가 제공한 정보는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시리아군을 격파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고원을 점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시리아의 수자원 전환 계획과 소련제 무기 배치 정보 등을 미리 이스라엘에 전달함으로써 선제 대응을 가능케 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전은 골란고원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게 한 것이다. 시리아 병사들에게 그늘을 제공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 나무 덕분에 이스라엘군은 6일 전쟁 당시 시리아 포진지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스파이 생활에 지친 그가 가족과 자주 무선 통신을 시도하면서 소련제 감청장비에 포착돼 체포되었고, 1965년 다마스쿠스에서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다.
18일 네타냐후 총리는 “엘리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스파이였고, 정보기관과 군 교본에 남을 인물”이라며 그의 유산이 후세 교육에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달된 유물에는 위조 여권, 육필 메모, 암호문, 시리아 고위 인사들과의 사진, 그리고 당시 나디아가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낸 탄원서 등이 포함됐다. 대부분은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다.
하지만 그의 유해는 아직도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리아는 시신 인도를 거부하고 있으며, 정확한 매장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모사드 국장은 “우리는 생존자에겐 회복을, 전사자에겐 조국의 안식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유물 반환은 단순한 추모의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시리아 이번 제안은 이스라엘과의 단절된 외교 관계를 서서히 회복하려는 신호로 분석된다. 시리아는 최근 수년간 이란과의 동맹에 기울어 있으면서도, 경제 제재와 외교적 고립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은 서방과의 접촉 재개를 위한 전환점이자,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 탈피를 위한 전략적 시도일 수 있다.
이스라엘 역시 중동의 안보 균형 속에서 시리아와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필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레바논 헤즈볼라, 이란 혁명수비대, 하마스와의 다면적 전선 속에서, 시리아가 돌연 제스처를 보낸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국익을 향한 셈법의 일부로 읽힌다.
엘리 코헨의 삶은 2019년 넷플릭스 드라마 ‘더 스파이’로도 제작돼 세계에 알려졌다. 그는 작전 직전 아내에게 “이번이 마지막 시리아 방문이 될 것”이라 말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국가가 생존을 위해 벌인 스파이 전쟁도, 국가가 평화를 위해 나서는 외교 협상도 결국은 국익의 이름 아래 이어지는 역사다. 엘리 코헨의 시계 하나만이 남겨졌던 과거에서, 유물 전체가 돌아오는 현재까지—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