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선 기자 ㅣ 미디어원
폐기될 버스를 5천만원 들여 집처럼 고치고 1만 대를 공급하면 5천억원. 청년 주거난을 풀자는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버스 하우스’ 계산이다.
곱셈은 맞는다.
그러나 주택을 만들려면 버스 개조비보다 훨씬 많은 조건과 비용이 따라붙는다.
버스를 세울 땅부터 필요하다. 수도와 하수도를 연결해야 한다. 전기와 통신이 들어와야 한다. 여름과 겨울을 견딜 냉난방과 단열, 환기와 결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이 자는 곳에는 화재에 대비한 소방시설과 피난동선도 필요하다. 쓰레기와 오수를 처리하고 주변 도로와 관리시설도 만들어야 한다.
황 의원의 5천억원 계산에서는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집의 조건’이 통째로 빠져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버스-하우스(Bus House) 제안’이라는 글을 올리고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를 사례로 들었다. 폐선박 또는 중고선박을 리모델링해 주택문제 해결에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버스 한 대의 리모델링 비용을 5천만원 정도로 잡으면 1만 세대를 5천억원 수준에 공급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대학가와 지하철 역사 주변 공간을 활용하고 직접 움직이는 이동형이나 다른 차량으로 끄는 트레일러형까지 거론했다.
아이디어는 몇 줄이면 만들 수 있다.
주택정책은 몇 줄짜리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수십 가지 현실 조건을 통과해야 비로소 집이 된다.
첫 번째 빠진 것, 땅이다
가장 먼저 황 의원의 계산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부지다.
황 의원은 대학가와 지하철역 주변을 후보지로 거론했다. 청년이 통학하고 출퇴근하기 좋다는 이유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대학가와 역세권의 토지는 비싸고 수요가 높다.
폐버스를 싸게 확보해도 버스를 세울 땅은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버스 1만 대라면 차체가 차지하는 면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차량 사이에는 사람이 통행할 공간이 필요하고 소방차가 들어갈 통로도 필요하다. 각 세대가 사용하는 설비 공간과 공용시설, 쓰레기 수거 공간, 관리시설도 따라붙는다.
대학가와 역세권의 공공부지를 활용한다면 더 근본적인 경제성 비교가 필요하다.
그 귀한 땅에 폐버스를 줄지어 놓는 방안과 같은 토지에 청년 공공주택을 지어 수십 년 사용하는 방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은 청년에게 더 오래 좋은 집을 제공할 수 있는가.
1만 세대를 정책으로 말하려면 이 비교부터 숫자로 제시해야 한다.
화장실을 만들었으면 오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두 번째는 상하수도다.
사람이 장기간 거주하는 공간에는 안정적인 급수와 배수가 필수다.
버스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 싱크대를 만든다면 깨끗한 물을 공급해야 한다. 사용한 생활하수와 분뇨는 외부로 빼내 적법하게 처리해야 한다.
상수관과 하수관을 연결하려면 버스가 있는 곳까지 기반시설을 끌어와야 한다. 굴착과 배관공사, 연결설비와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한다.
황 의원이 강조한 ‘이동형’을 유지할 경우에는 청수탱크와 오수탱크를 버스마다 설치하고 물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며 오수를 수거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소규모 캠핑시설과 1만 세대의 주거사업은 규모부터 다르다.
1만 세대에 물을 공급하고 오수를 처리하는 순간 ‘폐버스 재활용’은 대규모 도시 기반시설 사업으로 바뀐다.


세 번째는 전기다…1만대 에어컨은 어디에 꽂나
청년 한 사람이 생활하려면 냉장고, 에어컨, 난방기, 온수기, 컴퓨터, 조명, 휴대전화 충전기, 조리기구 등이 필요하다.
모두 전기를 쓴다.
버스 1만 대가 주거시설로 사용되면 1만 가구에 생활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장소에 따라 전력 인입공사와 변압설비, 배전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할 가능성도 생긴다.
폐버스 한 대를 5천만원에 개조하는 비용만으로 전력 공급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어렵다.
버스는 금속 차체와 넓은 유리창을 가진 운송수단이다. 폭염과 혹한 속에서 사람이 장기간 살려면 단열재와 창호, 냉난방, 환기, 결로와 곰팡이 방지까지 주거시설 수준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버스를 집답게 만들수록 설비는 늘어나고 비용은 커진다.
움직이는 집이라면서 수도·전기 연결하면 움직이기 어려워진다
황 의원은 자체 운전이 가능한 이동형 버스 하우스와 외부 차량으로 이동하는 트레일러형도 제안했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충돌이 있다.
안정된 주거시설로 만들기 위해 상수도·하수도·전기·통신을 연결하고 각종 기반시설을 갖추면 버스는 특정 장소에 정착하는 형태로 가까워진다.
이동성을 살리려면 급수·오수·전력·난방을 독립적으로 해결할 설비를 차량 안에 넣어야 한다. 탱크와 배터리, 전력설비가 늘어나면서 공간과 무게, 비용과 안전 문제도 함께 커진다.
도로를 실제로 달리는 자동차 형태를 유지한다면 구조변경과 튜닝, 검사와 자동차 안전기준까지 검토해야 한다. 장기간 한 자리에 놓고 주거시설로 운영한다면 건축·도시계획·토지 이용과 관련한 인허가를 따져야 한다.
‘이동형 주택’이라는 한마디 뒤에 자동차와 주거시설 양쪽의 규제가 동시에 기다리고 있다.
불이 나면 어디로 빠져나오나
소방 문제는 더 무겁다.
버스는 길고 폭이 좁다. 그 내부에 침대와 화장실, 싱크대, 수납장, 냉장고, 조리시설을 넣으면 통로는 더 좁아질 수 있다.
1만 세대가 밀집한다면 각 버스 한 대의 안전만 따질 수 없다.
차량 사이의 간격, 화재 확산 방지, 소방차 진입로, 소화설비, 비상대피 공간과 피난동선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전기 배터리나 가스설비를 사용한다면 관련 위험도 추가된다.
사람을 재우는 순간 ‘재활용 아이디어’의 단계는 끝난다. 정부와 사업자의 생명·안전 책임이 시작된다.
자동차인가 주거시설인가…법적 지위부터 정해야 한다
법적 지위도 먼저 풀어야 한다.
버스를 바퀴 달린 차량으로 유지하면서 이동 가능성을 살릴 것인지, 특정 토지에 장기간 설치해 전기·상하수도와 연결한 주거시설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승인과 인허가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주거용으로 내부 구조를 크게 바꾸면서 운행까지 한다면 자동차 관련 안전기준과 구조변경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특정 부지에 대규모로 배치하면 토지이용, 개발행위, 기반시설, 건축 관련 규정과의 관계도 따져야 한다.
1만 세대를 말하기 전에 정부가 답해야 할 첫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버스 하우스를 법적으로 무엇으로 볼 것인가.”
법적 성격조차 정리되지 않은 단계에서 1만 세대와 5천억원이라는 공급 숫자가 먼저 나왔다.


도시미관도 정책이다…역세권에 폐버스 1만대가 들어오면
도시경관 문제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버스 한두 대를 독특하게 개조한 시설은 관광상품이나 특수 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1만 대를 대학가와 역세권에 장기간 배치하면 하나의 대규모 도시주거단지가 된다.
외벽 관리, 차량 노후화, 녹과 부식, 보행환경, 쓰레기 배출, 사생활 보호, 소음, 주차와 차량 이동, 주변 상권과의 충돌, 도시경관까지 관리해야 한다.
청년에게 접근성이 좋은 도시 한복판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라면 그 공간의 품질과 주변 도시환경 역시 정책의 일부다.
낡은 버스를 어디에 세울지만 고민하고 그 주변에 어떤 도시가 만들어질지는 빼놓을 수 없다.
암스테르담 보트하우스를 서울 대학가에 그대로 옮길 수 있나
황 의원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를 근거로 들었다.
해외의 특정 주거형태를 국내 주택정책에 적용하려면 그 도시의 역사와 토지 이용, 수변공간 관리, 허가제도, 기반시설, 주택시장 구조까지 함께 비교해야 한다.
운하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형성된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와 서울·수도권 대학가나 지하철역 주변에 폐버스를 대량 배치하는 사업은 출발 조건부터 크게 다르다.
해외에서 배를 주거공간으로 쓰는 사례만으로 폐버스 1만 대의 국내 공급 타당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해외 사례는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책이 되려면 한국의 땅값과 법, 안전기준과 도시구조라는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청년인가
가장 불편한 질문은 따로 있다.
황 의원은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청년들이 제대로 된 주택을 마련하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할 공간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바로 이 설명에서 버스 하우스가 지향하는 주거의 수준을 따져보게 된다.
고시원에서 힘들게 사는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은 더 안전하고 쾌적하며 안정적인 주거로 이동할 기회를 넓히는 것이다.
그 사이를 폐기 예정 버스로 만든 또 하나의 임시주거로 채우겠다는 구상이라면 주거수준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먼저 증명해야 한다.
최저주거기준은 면적에 더해 구조와 설비, 환경, 안전과 생활의 기본조건까지 함께 본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잠을 잘 수 있는 껍데기를 넘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다.
보수·진보 모두 비판…논란 뒤에는 “순수한 아이디어”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황 의원 본인과 가족부터 버스 하우스에 입주해 보라는 취지로 강하게 비판했다.
반발은 보수 야당에 그치지 않았다.
김종훈 진보당 대표도 청년에게 좋은 주거공간을 제공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폐버스를 제안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취지로 비판했다.
진영을 넘어 반발이 나온 만큼 정책 자체의 현실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논란이 확산되자 황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버스 하우스 개념이 “순수한 아이디어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고시원 등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청년이 제대로 된 주거공간을 마련하기 전까지 활용할 임시공간이라는 설명도 내놨다.
황 의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입법자다.
주택정책을 심의하고 관련 법률과 국가 예산을 다루는 국회의원이 ‘1만 세대, 5천억원’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했다면 국민은 정책 제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공개 제안에는 공개 검증이 따라붙는다. ‘아이디어’라는 설명도 그 검증을 대신할 수 없다.
5천만원짜리 버스 1만대를 곱하는 것은 산수다
황희 의원의 버스 하우스 계산에는 버스가 있다.
그러나 땅값이 없다. 상하수도 비용이 없다. 전력망 비용이 없다. 단열과 냉난방 비용이 없다. 소방과 피난시설 비용이 없다. 도시 기반시설 비용이 없다. 인허가 비용과 관리비도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청년의 삶이다.
폐기되는 자원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할 수 있다. 캠핑이나 관광숙박, 재난 때 사용하는 임시시설, 특수 목적의 초소형 공간 등에서는 실험 가능성도 있다.
국가의 청년주택 대책으로 1만 세대를 이야기하는 순간 검증의 기준은 훨씬 높아진다.
국토교통위원이라면 그 차이를 누구보다 먼저 계산해야 한다.
버스 한 대 5천만원에 1만 대를 곱하는 것은 산수다. 청년 1만 명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집을 만드는 것은 주택정책이다.
황희 의원의 ‘버스 하우스’는 바로 그 두 가지를 혼동한 데서 출발했다.
그 혼동의 비용을 청년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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