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정부 조율보다 먼저 움직인 정동영…대북정책 ‘선공개·후조율’ 계속됐다

정부 조율보다 먼저 움직인 정동영…대북정책 ‘선공개·후조율’ 계속됐다

4자회담에 조현 외교장관 “정부 합의 없다” 공개 제동…‘조선·한조관계’·‘평화적 두 국가론’까지, 장관 발언이 정부 결정 앞선 장면 반복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정부와 관계부처의 충분한 조율이 끝나기도 전에 대북정책의 굵직한 구상을 잇달아 앞세우고 있다.

이번 남북미중 4자회담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한조관계’, ‘평화적 두 국가론’, 남북미중 4자회담까지 남북관계의 성격과 한반도 외교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구상이 정 장관의 발언을 통해 먼저 나왔고, 뒤이어 정부와 관계부처가 범위와 의미를 정리하는 장면이 계속돼 왔다.

이번에는 외교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제동까지 걸었다.

정 장관이 하반기 주요 대북 구상으로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제시하자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 구상이 정부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관계부처의 합의도 얻지 못했다는 취지로 밝혔다. 조 장관은 정 장관의 제안을 ‘이상적인 구상’으로 평가하며 발언의 무게를 낮췄다.

북한과 미국, 중국을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4자회담은 이런 방식으로 다뤄서는 안 될 사안이다. 외교·안보·통일 정책이 한 방향으로 맞물려야 하는 국가전략이다.

한 번이면 적극적인 정책 제안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방식이 되풀이된다면 장관의 정책 추진 방식 자체를 따져야 한다.

두 달 전부터 4자회담을 말했는데 외교부와 합의는 없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4자회담이 정 장관에게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 장관은 지난 6월 4일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열린 동북아 안보대화 특별연설에서 남북 간 신뢰 회복을 거쳐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4자 대화를 시작하고, 이후 일본·러시아·몽골까지 대화의 틀을 넓혀 나가자고 공식 제안했다. 통일부가 보도자료까지 내며 알린 구상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뒤 정 장관은 대통령이 참석한 정책회의에서 이를 하반기 핵심 구상으로 다시 제시했다.

그런데 외교부 장관의 답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 내 합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대외적으로 공개해 온 구상이라면 그 기간에 외교부와 국가안보 라인을 설득하고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 정부의 입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그 과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대통령 앞에서 국가의 주요 대북정책처럼 제시했다면 ‘선공개·후조율’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책은 먼저 발표한 사람이 주도권을 갖는 경쟁이 아니다. 국가정책은 먼저 합의하고, 그 다음 한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정동영은 “현실을 바꾸려면 이상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정 장관은 조 장관의 공개적인 지적에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상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북한이 한국 정부의 대화 제안에 반응하지 않는 현재 상황을 깨기 위해 새로운 접근과 과감한 평화 구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재명 정부도 비핵화를 모든 대화의 선행조건으로 놓았던 접근에서 벗어나 평화를 우선하면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다시 열겠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북한과의 긴장을 낮추고 대화 공간을 넓히려는 것 자체는 분명한 정책 선택이다.

문제는 무엇을 제안했느냐만큼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대한민국의 정책으로 말하느냐에 있다.

통일부 장관은 새로운 구상을 만들 수 있다. 외교부를 설득하고 대통령에게 정책을 건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을 끌어들이는 외교 구상이 정부 내부의 합의에 도달하기 전에 외부로 먼저 나간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외교 상대국은 장관 개인의 생각과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구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조관계라고 적힌 명판이 깨지는 모습을 표현한 참고 이미지
‘한조관계’ 표현이 남북관계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참고 이미지.

‘조선·한조관계’도 먼저 꺼내고 뒤에서 “공론화”

비슷한 장면은 이미 있었다.

정 장관은 올해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 학술회의 등을 통해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조선’으로 부르고 남북관계를 ‘한국·조선’, ‘한조관계’라고 표현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 뒤 통일부 당국자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채널을 통한 공론화를 거쳐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발언 역시 공론화의 계기로 제시됐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순서가 거꾸로 보인다.

공론화를 거쳐 정부 방침을 정한 뒤 장관이 정책을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국가정책의 흐름이다. 그런데 장관이 국가적 의미가 큰 표현을 먼저 사용하고, 이후 부처가 “앞으로 공론화해서 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남북관계’를 ‘한조관계’라고 부르는 문제에는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현행 헌법이 전제하는 통일의 방향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까지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만큼 신중한 법적·정책적 검토와 국민적 설명이 먼저 필요하다.

국가의 대북정책이 장관 개인의 언어 선택에서 출발한 뒤 정부가 의미를 맞춰가는 방식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평화적 두 국가론’도 장관이 먼저, 통일부는 뒤늦게 선 그었다

5월에는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구상을 둘러싸고 또다시 논란이 벌어졌다.

통일백서에 관련 구상이 소개되면서 정부의 공식 대북정책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통일부는 이 구상이 정부 전체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정 장관이 여러 계기에 밝혀온 내용을 소개한 것이며, 통일부 차원에서 검토 중인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남북관계의 기본 성격을 건드릴 수 있는 구상은 먼저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고, 논란이 확산된 뒤에야 “정부 전체의 공식 입장까지는 아니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평화적 두 국가론’, ‘조선·한조관계’, 그리고 이번 남북미중 4자회담은 내용도 성격도 서로 다르다.

그러나 정책이 등장하는 과정에서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정 장관이 먼저 굵직한 구상을 내놓는다. 논란이 시작된다. 그 뒤 정부나 관계부처가 공식정책의 범위를 설명하거나 수위를 조절한다.

이번에는 그 과정이 통일부와 외교부 장관의 공개적인 이견으로까지 번졌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표현한 참고 이미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표현한 참고 이미지.

대북정책은 장관 개인의 정치철학을 구현하는 무대가 될 수 없다

정동영 장관은 오랫동안 남북관계와 평화정책에 강한 소신을 밝혀온 정치인이다.

정치인에게 철학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책 방향을 가지고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장관이 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말하는 정치인의 위치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국무위원의 자리로 이동한다.

특히 대북정책은 한 장관의 성공과 실패로 끝나는 분야가 아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한미동맹, 중국과의 관계, 군사적 긴장과 국민의 안전이 모두 연결돼 있다. 한번 잘못된 신호가 전달되면 외교적 비용과 안보 부담은 국가와 국민이 떠안는다.

국민이 통일부 장관에게 맡긴 권한은 자신의 통일철학을 먼저 실험하는 권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을 관계부처와 조율하고 책임 있게 추진하는 권한이다.

평화라는 목표가 중요할수록 추진 과정은 더 치밀해야 한다.

정부 내부의 다른 목소리는 외교 상대에게도 신호가 된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서로 다른 관점을 갖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통일부는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고, 외교부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까지 고려해 현실적인 외교 조건을 따질 수 있다. 국가안보 라인은 군사적 위험을 검토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 내부의 조정 과정이 존재한다.

각 부처가 치열하게 논쟁한 뒤 정부의 입장을 하나로 만들어 대통령의 정책으로 내놓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다.

이번에는 그 반대 장면이 국민 앞에 나타났다.

통일부 장관이 국제적 4자회담 구상을 제안했고 외교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정부 합의가 없다”고 밝혔다.

평화를 추진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정부 내부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결과를 만들었다면 그 추진방식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제 대통령이 정책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정동영 장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대북·외교·안보정책의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은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전체에 있다.

정 장관이 내놓는 구상들이 정부의 대북정책이라면 대통령이 분명하게 승인하고 외교부와 안보부처까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통일부 또는 정 장관 차원의 정책 제안이라면 어디까지가 검토안이고 어디부터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국민과 국제사회가 알아볼 수 있도록 선을 그어야 한다.

그 경계가 계속 흐려지면 장관 개인의 적극성보다 정부의 정책 통제력이 먼저 의심받는다.

통일부 장관의 권한은 국가 대북정책을 혼자 설계하고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정부가 결정한 정책을 만들고 조율하고 집행하는 데 있다.

정동영 장관에게서 ‘선공개·후조율’의 장면이 계속돼 왔다면 이제 정부도 답해야 한다.

장관 개인의 구상이 대한민국의 정책보다 계속 먼저 나가도록 둘 것인가.

그 답을 내놓아야 할 사람은 정동영 장관만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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