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발행인 | 미디어원
“5·18이 성역이 되는 것이 자유 대한민국에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국회에서 던진 질문이 정치권에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13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이다. 이 의원과 새역사국민운동이 공동 주최한 이날 포럼에서는 5·18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평가와 다른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됐다. 객석에서는 고성과 항의가 터져 나왔고 참석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져 경찰이 출동했다. 포럼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은 이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논란의 출발점은 포럼 개최 자체와 그 자리에서 나온 발언들이었다.
이진숙 “성역과 터부는 시간이 지나면 신화로 고착”
이 의원은 포럼 환영사에서 먼저 5·18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 뒤 5·18을 둘러싼 공개적인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성역’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의미로 설명하면서 5·18이 그런 영역이 되는 것이 자유대한민국에서 바람직한지 반문했다.
이어 5·18은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되며, 성역으로 규정되면 터부와 금기가 늘어나 자유가 구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역과 터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로 굳어질 수 있다며 5·18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포럼을 둘러싼 이후의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발언을 빼놓기 어렵다.
이 의원은 애초부터 5·18에 대한 기존 평가를 그대로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기존 통념과 다른 주장이나 불편한 질문까지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 발제가 시작되면서 논란은 훨씬 커졌다.
이영훈 “법적으로 민주화운동…그러나 열흘간의 소요 사태”
발제자로 나선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는 5·18이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전제하면서도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열흘간의 소요 사태’라고 표현했다.
그는 현재의 5·18에 대한 역사적·정치적 평가를 비판하면서 기존의 5·18 담론을 재검토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주동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도 기존의 5·18 평가와 크게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주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승만과 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맥락에서 설명하면서 5·18과 이른바 ‘87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일부 발언은 정치적 좌파를 강하게 비난하는 표현까지 포함해 현장의 논란을 더욱 키웠다.
포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고성과 항의, 몸싸움…경찰까지 출동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서는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포럼 개최에 반대하는 참석자들이 5·18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항의했고 포럼 참석자들과 언쟁이 벌어졌다. 발표가 여러 차례 중단됐으며 참석자 사이의 충돌이 몸싸움으로 번지면서 경찰과 소방 인력까지 출동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포럼 개최에 부담을 나타냈다.
국민의힘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취재진에게 원내지도부가 포럼 개최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며 정점식 원내대표가 개최 전 취소를 요청했지만 행사가 진행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포럼 참석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행사는 ‘5·18을 다시 토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던진 채 정치권의 거센 공방으로 이어졌다.


민주당 의원 161명 전원, 이진숙 제명 촉구
더불어민주당은 포럼 다음 날인 14일 이 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결의안에는 민주당 의원 161명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은 포럼에서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을 부정하고 5·18 정신을 훼손하는 주장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의 제명 절차를 추진하기 위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달라는 요구도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5·18 관련 단체와 광주지역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졌다. 5·18을 왜곡·폄훼하는 주장을 국회에서 공론화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공개적인 비판이 나왔다.
한지아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이 국민의힘도 인정하고 계승해 온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라며 이를 왜곡하거나 희생을 폄훼하는 것은 당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박수민 의원도 이 의원에게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역시 5·18을 폄훼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이 의원을 비판했다.
이진숙, 사과 대신 다시 “토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포럼 다음 날인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 의원은 5·18이 특별법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토론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 5·18을 사실상 성역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포럼이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며 기존 통념과 다른 주장이나 불편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학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이야기하면서 5·18에 대한 토론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이 의원의 반박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15일과 16일까지 민주당의 사과·징계 요구와 국민의힘 안팎의 비판이 이어졌다.
포럼이 남긴 질문
사건의 사실관계는 여기까지다.
국회의원이 5·18에 대한 기존 평가와 다른 주장까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취지의 포럼을 열었다. 발제자들은 실제로 기존 평가와 충돌하는 주장을 제기했다. 반대하는 참석자들은 강하게 항의했고 현장에서는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포럼 다음 날 민주당은 주최 의원의 제명을 요구했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반면 이 의원은 사과하지 않고 5·18 역시 공개적인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질문이 정치권 앞에 놓였다.
하나는 5·18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평가는 어디까지 규명돼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적·법률적 평가가 내려진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기존과 다른 주장이나 질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두 질문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무엇이 사실인지 끝까지 확인하는 것과, 이미 내려진 평가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함께 가야 할 문제다.
5·18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커진 지금, 무엇이 이미 사실로 확인됐고 무엇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거나 논쟁으로 남아 있는지를 구분하는 작업부터 필요해졌다.
미디어원은 이번 포럼을 출발점으로 5·18을 둘러싼 법률과 국가 조사, 개별 쟁점들을 관련 법령과 판결문, 국가기관 조사보고서와 기록을 통해 차례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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