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일본의 도시, 가나자와金沢

206

동해 연안의 조용한 , 하지만 인상적인 도시 가나자와

가나자와는 동해 연안에 위치하고, 영산 하쿠산에서 내려오는 두 개의 강, 사이가와, 아사노가와가 지나가는 풍요로운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조용한 전통의 도시이다.
눈덮힌 가나자와 성의 전경
전국 시대 이후부터 이 지역을 지배한 마에다 가문의 성인 가나자와 성과 일본 3대 정원이라고 불리는 겐로쿠엔兼六園을 중심으로 대체적으로 높은 건물 없이 차분하게 형성된 시가지는 매우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가나자와는 2차 세계대전 중에도 공습을 받지 않았고 이렇다 할 큰 지진도 없어 도심이 파괴되지 않아 예부터 형성되어 온 좁은 골목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다.

역사의 도시 , 가가번 加賀藩 백만석의 죠카마치城下町, 가나자와
가나자와는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친우이자 부하인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가 1583년 입성한 이래로 메이지 시대에 들어 폐번치헌이 실시되기 전까지 가가 백만석의 죠카마치로 발전한 도시이다. 죠카마치는 번주의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 도시를 의미한다.

겐로쿠엔, 겨울의 라이트업가가번의 중심으로서의 가나자와를 연 마에다 도시이에는 당시 매우 절묘한 정치 감각으로 전국시대를 살아 냈고, 이러한 마에다 가문은 도요토미 가문이 도쿠가와 가문에 의해 멸문했을 때도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도쿠가와 막부의 2대 쇼군)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여 항상 정권의 중심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으로 백만석 규모의 엄청난 녹봉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도시 가나자와의 중심에 가나자와 성이 위치한다. 그리고 일본의 3대 정원(오카야마岡山市의 고라쿠엔後楽園, 미토水戸市의 가이라쿠엔偕楽園)이라고 일컬어지는 겐로쿠엔兼六園이 그 옆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옛날 이 주변에는 무사들의 저택인 부케야시키武家屋敷가 들어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겐로쿠엔은 그 어느 계절보다 겨울이 아름다운 정원이다.

“도시락은 잊어도 우산은 잊지 마라!”라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가나자와는 겨울에도 눈이 많이 내린다. 그렇게 많이 내린 눈 때문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일도 많아서, 가나자와에서는 밧줄로 쌓인 눈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묶어 둔다. 이를 ‘유키즈리’라고 하는데 겐로쿠엔을 비추는 겨울의 라이트업 행사는 이 나무들로 너무나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이렇게 눈이 아름다운 곳이 또 한 곳 있다. 겐로쿠엔 근처에는 교쿠센엔玉泉園이라는 정원이 있다. 이 곳은 ‘마음 심자 心’ 모양으로 조성된 정원으로 눈 쌓인 연못을 바라보며 다도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인데, 겨울의 눈 내린 연못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다실에서 바라보는 정취는 매우 향기롭다. 이 정원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 임진왜란 때 일본의 무사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와 마에다 가문의 사무라이로 자란 소년, 와키타 나오카타脇田直賢가 짓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교쿠센엔에는 나오카타 부자가 조선에서 종자를 가져온 수령 수백 년짜리 조선 잣나무 거목도 있다.다도회에서 제공되는 다과茶菓子
겐로쿠엔과 교쿠센엔이 가나자와의 “정원”이라고 한다면 부케야시키는 가나자와의 “집”라고 할 수 있다. 전국시대를 거쳐 주군 마에다 도시이에를 따라 이 곳에 정착한 사무라이들을 가나자와 성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저택을 지었는데, 그 저택들이 아직도 남아 지금의 부케야시키 일대를 이루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상급무사의 집이라기보다는 하급무사들의 집이며,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내부를 공개하는 곳도 몇 곳 있어 당시 무사들의 집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가나자와에는 무사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체험할 수도 있다. 묘류지妙立寺라고 하는 절은 통칭 닌쟈데라(忍者寺닌자 절)이라고 불리는데, 이 절을 한 바퀴 도는 투어는 에도 시대를 살아가는 다이묘(번주)와 무사들의 교묘한 탈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묘류지는 가나자와 성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절인데, 일설에 따르면 비밀통로를 통해 성과 연결되어있다고 한다. 다른 번의 닌자들에게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다이묘는 이 닌자데라로 피신하여 침입자를 피했다고 한다. 묘류지에는 곳곳에 교묘한 장치들이 숨어 있다.

 히가시챠야가이의 한 차야(찻집)의 앞또 한군데 가나자와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히가시챠야가이東茶屋街이다. 가나자와를 흐르는 두 강의 옆에는 가나자와를 대표하는 3곳의 챠야가이(에도 시대 여행객이 머물거나 손님에게 음식, 유흥을 제공하는 곳)가 있었는데, 아직도 이곳은 옛 거리를 그대로 남겨 운영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게이샤를 만날 수도 있고 가게를 들어서서 차와 과자, 샤미센 음악과 마이코의 춤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의 창조도시 , 가나자와
일반적으로 가나자와는 전통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에서 언급한 가나자와 성, 겐로쿠엔, 부케야시키, 챠야가이 외에도 무가 사회의 전통으로 내려온 전통예능 노로 유명하다. 가나자와의 노는 사무라이뿐 아니라 서민들에게 호쇼宝生식 노가쿠能楽를 장려하여 노의 전통이 가가호쇼加賀宝生라는 말로 전해질 정도이다. 또 무가사회의 발전으로 이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공예도 발전하였는데, 특히 가나자와의 금박공예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금을 불면 날아갈 정도의 얇은 두께로 두드려서 금박을 제조하는 기법은 예술의 경지이다. 또한 가나자와의 기모노는 가가유젠加賀友禅이라는 염색 기법을 쓰는데 교토의 니시진오리에 이어 유명하다.

이렇게 전통적인 도시경관, 전통 공예로 유명하던 가나자와는 1980년대 급속한 글로벌리즘으로 지역경제를 뒷받침하던 섬유공업이 쇠퇴하면서 도시경제의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가나자와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하던 이시카와 현청이 교외부로 이전하게 되면서 도심이 공동화 될 것이라고 우려되기도 했다.
저녁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2004년에 개관한 21세기 미술관으로 더 이상 가나자와가 ‘전통에 갇힌’ 도시가 아닌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도시로서 기능함을 보여준다.

21세기 미술관은 이시카와 현청이 떠나간 자리를 완벽하게 채웠다. UFO가 내려 앉은 것 같은 원형의 미술관은 외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가 훤히 보이는 개방성을 가진 특징적인 건물로 360도 어느 방향에서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내부의 작품은 체험형 컨템포러리 아트가 대부분이며 독특한 성격의 기획전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나자와로 불러들이고 있다.
21세기 미술관 내부의 상설전시

가나자와에 전통과 현대가 공존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21세기 미술관의 바로 옆에 위치한 ‘가나자와 노가쿠 미술관’이다. 이곳은 21세기 미술관의 현대성과 대비되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보인다. 또 노가쿠 미술관의 전시 역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엿볼 수 있다. 노가쿠 미술관에서는 가가 호쇼의 노에서 쓰이는 가면과 의상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이러한 전통적 방식의 실물전시와 병존하여 1층에 노의 무대를 재현은 디지털 전시로 체험자의 위치에 따라 노에서 쓰이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화면에서는 노를 상연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를 보인다.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크기의 도시 , 가나자와
가나자와를 여행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점은 아마 ‘걷는 재미’일 것이다. JR 가나자와 역에서 나오면 유리로 된 모테나시 돔(モテナシ・ドーム, 환영 접대를 의미하는 일본어 모테나시에 돔이 붙은 조어)이 우리를 맞이한다. 가나자와 역 주변은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되어 보인다. 하지만 무사시가쓰지武蔵ヶ辻를 향해 걸어 오면 그곳에는 가나자와 시민의 부엌인 오미초 시장이 있다. 오미초 시장의 풍요로움과 떠들썩함을 지나 걷다 보면 오야마 신사를 지난다. 이곳의 신문(정문)은 일본식∙중국식∙서양식이 합쳐진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고, 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면 가나자와의 모든 젊은이들이 모이는 번화가, 고린보香林坊, 가타마치片町가 있다. 그리고 화려한 불빛의 고린보에서 한 걸음 들어간 한적한 곳에 부케야시키가 오롯히 위치한다. 고린보에서 동쪽으로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여기서부터가 가나자와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문학관을 시작으로 21세기미술관과 노가쿠미술관이 나오고 히로사카広坂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가나자와 성과 겐로쿠엔이 나온다. 그리고 겐로쿠엔에서 동남쪽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으로는 이시카와현립역사박물관과 현립노악당이 있다. 걸으면서 현대와 근세와 근대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하루에 이 모든 곳을 다 돌아보기에는 너무 많은 볼거리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가나자와 시에서는 후랏토 버스ふらっとバス라는 요금 1회 100엔의 관광루트 버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 버스는 가나자와의 골목골목을 길을 꿰듯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도시 주유 버스로 디자인도 매우 귀여운 가나자와의 명물 버스이다.

권윤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 전공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콘텐츠학 석사
Twitter: @ninioh_yk
석사논문『문화의 코디네이션을 통한 도시재생에 관한 연구 –일본 요코하마의 사례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