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이’의 추억을 아십니까?

󰡒오라이󰡓의 추억

요즘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 겨울 시내버스의 특석은 운전석 옆 보닛이었다. 옛날 시내버스들은 대부분 히터가 나오지 않아 엔진 열로 뜨끈해진 보닛은 언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반대로 한 여름 버스기사는 이 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는데….
그 때는 남색 유니폼에󰡐빵떡모자󰡑를 눌러 쓴 여차장들이 버스를 탕탕 치며󰡒오라이―󰡓하면 버스가 출발했다.
󰡒오라이󰡓는 모든 것이 맞다는 영어의 󰡒All Right󰡓를 일본식 발음으로 한 것인데 정차할 때는󰡒스톱(Stop)󰡓이라고 외쳤다.
요즘 시내버스는 모든 것이 자동이다. 하차지점이 되면 벨을 눌러야 하고, 그래야만 기사는 문을 열어준다. 차장이 하던 안내도 이제는 버스정류장만 지나면 센서에 의해 자동으로 안내방송이 나오니 지나친 친절이라고나 할까.
지금야 모든 시내버스에 냉난방이 잘 되어 있어 조금만 더워도 기사가 에어컨을 작동하지 않으면 덥다고 난리고, 조금만 추우면 히터 틀라고 야단이다.
버스안내양이미지, SBS드라마 '화려한 시절'의 한 장면그런데 여차장이󰡒오라이󰡓를 외쳐댈 시기에 겨울철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타면 유리창엔 성에가 허옇게 서려있다. 입김으로 호호 불면 도넛만큼 녹아 밖을 내다 볼 수 있었다.
탈 거리가 마땅치 않던 시절 버스는 의례만원을 이루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콩나물 시루󰡓. 승객을 짐짝 취급했다는 불평이 나왔지만 아침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했던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 그 때는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아 정이 넘쳐났기 때문일 것이다.
여차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6월 17일자로 당시 교통부가󰡐여차장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전국 모든 버스의 차장은 17~18세에서 23~24세까지의 여성으로 바뀌었고, 무작정 상경한 소녀들의 직업전선을 형성했던 것이다.
안내양의 가장 큰 임무는 요금을 받는 일이었지만 때로는 사람들을 버스 안으로 우그려 넣는 푸시맨의 역할도 중요했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차에 오르려 하고, 안내양은 그들을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던 안내양 즉, 여차장이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85년부터 없어지기 시작, 87년 무렵 자취를 감췄다. 당시 정부가 시내버스 자율화 조치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안내양이란 직업이 사라진 것이다.
여차장이 있던 시절 신문지면에는 가끔󰡐여차장 삥땅󰡑이란 말도 나왔고, 이를 감시하기 위한 계수기 장착이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현금 대신 토큰 제가 도입되었는데 요금이 인상될 때마다 은색과 구리 색을 번갈아 사용하여 득을 볼 때도 많았다. 아날로그에서 맛보던 추억이다.
토큰 판매는 1999년 4월부터 중단되었고, 22년 간 유지되었던 토큰은 10월 1일부로 완전 폐지되었다.
현금을 받던 제도에서 차를 타는 사람이 알아서 돈 통에 토큰이나 현금을 넣기 때문에 운전자가 살펴보기만 하면 되어 차장이 필요 없어진 원인이 되었다.
이제는 교통카드를 대면 요금이 자동으로 처리되어 참 좋아진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다섯 번까지 갈아타도 환승이 되니 요금도 절약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단 10원만 모자라도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계산적이다. 불신도 사라졌다.
하지만, 남색 제복의 버스 차장들이 외치던󰡒오라이―󰡓소리가 오늘따라 그리워지는 것은 왠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