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풍경과 상상의 부스러기들
약 1 시간 남짓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셔텨를 눌러댄 것 같다 . 그것도 주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노출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조금 더 일찍 타지마할에 도착했다면 좋았을텐데 … 아쉬움에 출구 쪽을 향해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 하지만 이미 해가 진 후의 타지마할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때문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 좁은 시골도로는 타지마할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다 .
약속한 장소에는 먼저 도착한 배틀 수상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 일행을 태운 봉고버스는 아그라역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 하루 일정치고는 무척 힘든 스케줄이었는지 얼굴에는 피로와 고단함이 가득했다 . ( 인도 여행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지쳐버린 모습을 보자 마음 속으로 미안함이 번졌다 .) 세계문화유산답사는 순전히 취재를 위해 계획된 것이었고 여기에 그들이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2 일 동안 10 개의 세계문화유산을 취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 어쩌면 일행들과 함께 여행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혼자서 움직이기도 버거울 거란 예감이 든 것이다 .)
플랫 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인도인들처럼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을 기댄채 짧은 휴식을 취했다 . 그런데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깜빡 졸았나 보다 . 일행 중 한 명이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다 . 클락룸에 가서 짐을 찾고 식사를 하기 위해 역사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점으로 들어갔다 .
빵과 음료수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카주라호 행 기차를 기다렸다 . 보통 1 시간 이상 연착되는 게 이 곳 열차 사정이라 처음부터 도착시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안썼다 .
플랫폼에 있는 수많은 인도인들은 익숙해진 표정과 행동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 . 대부분 가지고 있던 천을 바닥에 깔고 누워 있었는데 가족단위 여행자들은 음식도 나눠먹고 게임도 한다 . 흡사 소풍이라도 나온 학생들처럼 들떠 있는 모습이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
카주라호 행 기차는 자정이 조금 안된 11 시 35 분 쯤 아그라칸트역에 나타났다 . 예정시간인 11 시 20 분보다 겨우 15 분 늦게 온 것이다 . 이 정도면 이 곳에서는 연착한 게 아니다 . 벌레와 쥐 , 소똥 냄새로 가득한 플랫 폼에 더이상 누워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
미리 예약한 카주라호행 기차는 에어컨이 없는 슬리퍼칸으로 인도서민층이 주로 이용했다 . 침대칸이지만 한 구역에 9 개의 침대가 있었다 . 좌 , 우 마주보고 3 개씩 , 통로쪽에 3 개까지 모두 9 개의 침대에 9 명이 들어갔다 . 그뿐이 아니다 . 먼저 와서 누워있던 사람들은 침대 주인이 나타나자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 앉는다 . 그들을 피해 맨 위층 침대에 올라가자 맞 닿을 듯 가까이 먼지로 새까맣게 찌든 선풍기 두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 그런데 회전하고 있는 선풍기의 상태가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르며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 카주라호역까지는 417km. 다음 날 9 시 도착이다 . 무려 10 시간 동안 침대 속에 있어야 한다 . 잠깐 끔찍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잠에 취하고 말테니까 상관 없을 것 같았다 . 그런데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
실제 침대에 누워보니 침대가 너무 작고 짧아서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새우처럼 구부정하게 누워야 했다 . 그래도 맨 위층이라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 이런 상황에서는 남을 배려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다리를 펴지 못한 채 잠을 자려고 했으나 너무 불편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 결국 통로쪽으로 다리를 펴고 잤다 . 그러다 통행하는 사람들때문에 다시 다리를 접은 채 자다 쥐가 나서 몇 번이나 깨고 말았다 .
몇시쯤 되었을까 ? 그렇게 쪽잠을 자던 중 승무원이 검표를 하러 와 다시 잠이 깼다. 그후로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 누군가 불을 꺼서 침대칸 주위는 어두웠다 . 화장실이 가고 싶었으나 내려가는게 귀찮아서 그냥 참기로 한다 . 하지만 불과 5 분도 안되 결심은 깨지고 급하게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려 보냈다 .
순간 어떤 물체가 발목을 꽉 잡는다 . 3 층에서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 등골이 오싹했다 . 잠이 확 달아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느낌에 사람 손이 분명하다 . 발목을 잡힌 채 바닥에 겨우 내려왔다 .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인도 소년의 손이 10 루피를 요구 한다 . 화장실이 급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잡히는대로 지폐를 소년에게 주었다 .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피해 간신히 통로를 빠져나오자 화장실 표시등이 보였다 . 화장실 옆에는 누더기가 된 숄 차림의 인도여인과 할아버지 그리고 여자의 아들인 듯한 소년이 바닥에 앉은 채 자고 있다 .
화장실문을 여는데 인도여인이 깨고 말았다 . 그녀의 어깨가 공교롭게 화장실 문에 걸쳐져 있었던 것이다 . 순간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 ‘ 으악 ~’ 하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 그녀의 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