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곁에 두고 파도를 가르는 속 시원한 모험

충남 태안 ‘서해안 드라이브’

틈틈이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서 떠나는 드라이브는 확실한 정보가 생명이다. 이에 ‘가깝고 괜찮은 곳 어디 없나’ 인터넷을 기웃대는 시간을 확실하게 줄여줄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뻥뻥 뚫린 서해대교를 지나 천연기념물인 신두리 사구까지 이르는 서해안 드라이브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서해안 가는 길, 혜미읍성

<혜미읍성>

이곳저곳을 뒤져서 알게 된 여행 정보라는 것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될 서해안 드라이브는 다르다. 서해안 고속도로 구간 중 경기도 평택시와 당진군을 잇는 서해대교는 서해안 드라이브의 시작을 알린다. 서해대교는 경부고속도로 진입 후 안성과 안중방면을 지나면 나타나는데 길게 뻗어 뻥뻥 뚫린 다리를 달리고 있자면, 엑셀 페달에 저절로 힘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길을 나서면서부터 차량의 물결로 주차장을 이루는 그런 짜증스러운 상황은 결단코 피할 수 있으나 주말 이른 오전 시간을 이용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높아진 하늘에는 햇살 머금은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고, 창 문밖은 바다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서해대교를 지나면 서산휴게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꼭 먹어 봐야 할 메뉴가 있다. 바로 서산휴게소의 명물이자 충남 서산의 명물, 어리굴젓백반이다. 서산휴게소에서는 간월도에서 채취한 굴을 일주일간 발효시킨 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어리굴젓백반을 맛볼 수 있다. 어리굴젓에 밥과 김, 시금치, 된장 등이 곁들여져 나오는데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인 이 음식은 6,000원에 맛볼 수 있다.

서산휴게소를 나와 해미나들목을 지나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해미읍성이 보인다. 넓은 주차공간에 주차를 한 다음 눈을 돌려 본 해미읍성의 첫 인상은 그리 크지 않고 단아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상당히 넓고, 겉모습이 돌을 쌓아 만들어 얼기설기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안쪽으로는 흙으로 토담을 쌓아 오랜 세월 왜적을 물리쳤을 읍성의 위용이 보인다.

읍성의 중앙 광장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아름답게 조경돼 있지만,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회화나무가 있다. 과거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해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둘러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세찬 바람이 몰아친다.

읍성 안에는 가슴 서늘하게 하는 천주교 박해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투구던지기와 제기차기, 아이들을 위한 승마체험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이벤트가 많다. 같이 온 동행자 중에 운전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읍성 내 주막에서 6,000에 허기를 달랠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과 뜨끈한 파전을 먹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혜미읍성>

# 해수욕장에 드라이브하러 간다?

해미읍성에서 길을 나서면 그 주변에는 이제 곧 있으면 황금물결로 출렁일 논이 펼쳐져 있다. 점점 깊어지는 가을은 드라이브를 즐기는 자의 마음도 깊어가게 만든다. 서산을 거쳐 간 태안에서는 원북, 학암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얼마 후에 백화산 중턱에 있는 태을암 태안마애삼존불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오는데 포장은 돼 있지만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조금만 올라가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태을암요사체>

태을암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광활하게 펼쳐있는 대지와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이곳을 찾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대웅전을 가로 질러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방 벽면이 나무 창살로 된 건물이 있는데 그 안에 바로 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이 마애불상은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에 앞서는 조형양식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마애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2구의 불입상과 1구의 보살입상이 한조를 이루는 형식은 보통 그 반대의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유래가 없는 독특한 불상형식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또 특이한 것으로 태을동천이라고 쓰인 바위 위에 새겨진 바둑판이다. 신선이 바둑을 두던 곳이었다는 유래가 무색하게 이 정교한 바위 바둑판은 아직도 선명하다. 울창한 녹음에 둘러싸여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곳에서 한가로이 바둑을 두었을 옛 선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곳 태을암 입구를 지나서 약 10Km 정도 가면 원북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마애삼존불상>

원북 삼거리에서 목적지인 신두리 해수욕장 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되는데 신두리 해수욕장까지 들어가는 길은 정겹게도 비포장도로다. 짭짜름한 바닷바람이 어느덧 서해안 드라이브의 절정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신두리 해수욕장이라고 새겨진 큰 돌비석을 지나치니 너른 백사장 저 건너편에 흰 거품을 내면서 달려드는 푸른 파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름도 다 지나서 무슨 해수욕장이냐 싶지만, 사람들이 많이 빠져서 한산해진 요즘 같은 때는 드라이브가 제격이다. 신두리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밭은 차를 몰고 백사장으로 내려가 신나게 달려도 모래에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모래 밑에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래 입자가 곱다는 뜻이다.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밀려오는 바닷물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는 드라이브는 드라마에서나 몇 번 본 듯하다.

신두리의 해안 사구는 우리나라 서해안에 형성된 20여개의 사구 중 그 면적도 면적이거니와 자연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 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의 영향으로 모래가 밀려들어 자연스럽게 모래 언덕이 형성되고, 그곳에 각종 희귀한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인 셈이다.

드라이브를 한참 즐기다 허기가 느껴진다면 이곳 신두리의 별미 박속낙지탕을 권한다. 신 두리에서 다시 태안으로 나와 원북 삼거리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박속낙지탕’ 또는 ‘밀국낙지’라고 간판을 내 건 식당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청양고추가 들어가 칼칼하고 시원한 박국물에 낙지를 데쳐 먹고, 칼국수와 수제비로 마감을 하는 것이 바로 박속낙지탕의 핵심 맛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내어주는 칼국수와 수제비가 의외로 양이 많으니 인원수보다 1인분 정도 줄여서 주문하는 것도 괜찮다.

<신두리해수욕장>

이처럼 오감이 즐거운 서해안 드라이브는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춰 서더라도 바다 앞에서는 물살을 가르며 속 시원하게 달려야 되는 것임을, 짜릿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