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여행] 세계장신구박물관①

장신구박물관 전경

세계장신구박물관 ( 관장 이강원 ) 은 지난 2004 년 5 월 북촌의 햇빛이 아름다운 날 개관했다 .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강철과 나무 그리고 유리로 지어진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 빗살무늬의 외관은 원시시대를 연상하게 만들고 3 층의 유리건물은 지상과 하늘을 연결시켜주는 느낌을 준다 . 전체적인 스타일과 분위기는 초현대적이다 .

알고 보니 이 박물관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김승회 교수의 작품으로 작품 속에 1 천점이 넘는 세계 희귀 작품들이 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 건물 내부의 모습도 궁금했지만 그 안에 전시된 세계장신구들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 마치 영화 < 타임머신 > 에 나오는 4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면 별천지가 펼쳐질 것 같았다 .

전세계서 수집한 소장품 3천점, 현지 언어 익히며 접촉

1 층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 옆에 미소가 아름다운 여인이 반겨준다 . 바로 김윤정 씨 ( 부관장 ) 다 . 전화로 먼저 인사를 나눈터라 낯설지 않았다 . 그녀는 2 층 관장실에서 이강원 관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 미로 같은 계단을 올라가자 2 층 관장실이 나왔다 .

책상과 쇼파가 전부인 관장실은 아담했다 . 창문이 없었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 이유는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장신구 때문이었다 .

이강원 관장이 해맑은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 이 관장의 첫인상은 문학소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 역시 얼굴은 거짓말을 못하나보다 .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 관장은 ‘ 카멜레온의 눈물 ’ 등 세 권의 시집과 ‘ 세상을 수청 드는 여자 ’ 등 두 권의 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 또한 모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는 필자이기도 하다 .

이 관장과의 인터뷰는 장신구를 수집하게 된 동기부터 시작했다 . 많이 들었던 질문이라 식상할 법한데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대해주었다 .

" 남편 ( 김승영 전 아르헨티나 대사 ) 의 부임지였던 에티오피아의 한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어떤 평범한 여인을 만났어요 . 내 눈은 그녀의 목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했어요 . 초콜릿색 피부에 더할나위 없이 섬세하고 초현대적인 디자인의 은 목걸이를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 그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이었어요 ."

그때부터였다 . 이 관장은 충격의 진원지인 은목걸이를 통해 장신구의 세계로 풍덩 빠지게 되었고 평생을 함께하는 수집병에 걸린 것이다 .

이 관장이 전세계에서 수집한 3000 점에 이르는 소장품 중에는 세계적인 작가 또는 각 나라에서 문화재로 여겨지는 희귀한 작품이 부지기수다 . 멸종된 종족의 장신구와 이미 작고한 세계적인 장인이 남긴 작품도 있다 .

“ 그 후 남편을 따라 부임하는 곳에 가면 제일먼저 그 나라의 장신구를 찾게 되었고 직관적으로 전해오는 아름다움을 지닌 장신구를 하나씩 모으고 공부도 하다 보니 나름대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

이 관장은 문화재급 장신구를 찾아내기 위해 현지 언어를 익혀 직접 현지인들을 접촉해나갔다 . 그러다 보니 영어와 스페인어 , 독일어 , 불어 , 포르투갈어는 물론 에티오피아어인 암하릭어까지 배우고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가 됐다 .

특히 , 그의 아프리카 언어는 장신구를 수집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
“ 주로 부족장들이 통치하는 아프리카는 무척 보수적이고 외지인을 경계하기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았어요 . 더군다나 목걸이나 팔찌 등은 살아있는 몸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어서 감히 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죠 ."

하지만 이 관장은 수소문 끝에 처음 자신에게 마법을 건 여인의 은목걸이가 있는 곳의 행방을 알게 되자 더 이상 기다리지 못했다 .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내전으로 인해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 그런 와중에도 이 관장은 은목걸이를 구하러 진창길을 걸어서 벽촌으로 들어갔다 .

" 동양여인을 처음 본 그 부족민들이 모두 경계심을 갖고 저를 위협했어요 . 거기다 가보로 전해 내려온 은목걸이를 사기위해 왔다고 하니 분위기가 험악해졌습니다 ."

결국 그는 평소 익혀둔 아프리카 언어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원하던 은 목걸이를 손에 넣었다 . 그의 이런 노력은 , 무려 30 년 동안 이어져 아르헨티나 대사를 끝으로 정년퇴임한 남편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후 평소 점찍어 뒀던 북촌에 사설박물관을 설립하면서 결실을 보게 됐다 .

이 관장은 현재 한국사립박물관협회 수석 부회장이자 종로구박물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개인박물관의 중요성과 보존가치 등에 대해 정부관계자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

" 다른 것보다 정부에서도 인정했듯이 사설박물관들의 가치가 수조원을 넘는다고 했는데 담당과는 없어졌어요 . 박물관을 담당하는 과가 있어야 예산과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질텐데 그 점이 아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