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첫장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여행은 낯섦의 미학이다. 단체 여행이든 소중한 사람과 떠나는 오붓한 둘만의 여행이든 여행의 묘미는 낯설음과 호기심을 깨는데 그 목적이 있다. 어디로 갈지 무었을 할지 알고 간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남이 간 길을 확인하는 일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속에 허우적대는 현대의 여행객들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행의 미학을 느끼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칼바람이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이 겨울 한가운데, 뜨거운 태양마저 삼켜버릴 정렬의 나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여행의 미학을 찾는다.
꼭꼭 숨겨진 진흙속의 진주, 바르셀로나
스페인 사람에게 스페인에서 제일 존경받는 인물을 한명 뽑으라면 십중팔구 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뽑는다고 한다. 화가인 피카소 외에도 천재 건축가로 추앙받는 가우디와 창단 된지 100년이 지난 명문 축구팀 FC바르셀로나까지, 스페인 제 2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문화면 문화, 예술이면 예술 그리고 스포츠에 이르기 까지 다방면에서 세계적인 팔방미인의 도시다. 우리에게는 지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탄생하여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한 바르셀로나. 자유여행이 일반화 되면서 세계로 나날이 뻗는 한국인이지만 바르셀로나, 이곳만큼은 진흙속의 진주처럼 아직도 우리에게 낯섦 그 자체다.
재야의 여행고수들은 의례 자신이 가본 곳을 자랑하며 여러 지역의 여행지를 추천해주지만 바르셀로나만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해주지 않을 만큼 마지막까지 비밀로 지키고 싶은 명소로 뽑는다.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의 작품처럼 추상적이고 가우디의 건축만큼이나 기하학적기도해 이곳에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결코 한결같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이곳 바르셀로나만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태양의 광량처럼 많은 색을 담아내고 있다. 점식식사 후 즐기는 달콤한 시에스타는 그들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민족성을 잘 대변해준다. 이들과 함께 혼연일체가 되어 밝은 대낮의 여유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시체스 해변이 제격이다. 시체스 해변은 스페인 문화의 집약체로도 불리는데, 동성끼리 손을 잡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풍경은 이곳 시체스만이 연출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에서도 조차 이국적인 모습 그대로다. 바다가 있는 풍경은 어디를 가나 뻔하지만 지중해의 낭만을 뽑으라면 단연 시체스해변이며, 이곳에 다녀왔다는 것이 이제는 어느덧 관광객들 사이에선 자랑거리가 되어버렸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상의를 탈의하고 열심히 살을 태우는 사람들, 모래사장 여기저기에 바람이 쓸고가는 주인 없는 모래작품들과 길게 도열한 야자수 나무는 이곳이 상상속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속의 세계, 바로 이 순간이라는 것을 직시해 준다.
시체스는 영화제로도 유명하다. 벨기에 브뤼셀의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포르투갈의 판타스포르토국제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스틱 영화제로 뽑히는 시체스영화제는 매년 가을에 개최되며, 한국어 발음상으로 특이한 그 명칭처럼 주로 공포, 스릴러 등 호러 장르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로 68년도에 창설돼 올해로 벌써 43회를 맞았다. 매해 전 세계의 시체스 영화제 마니아층을 불러 모으고 있는 시체스영화제는 우리나라 영화와도 인연이 깊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해서 배우 김옥빈이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한국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라는 아시아 영화 섹션은 이미 한국 영화들만의 잔치가 된지 오래다.

이역만리에서 한국의 맛을 찾다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재래시장을 가보면 그 나라의 소소한 부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래서 일까? 의외로 많은 여행객들이 살 것은 없어도 지역 재래시장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곤 한다. 바르셀로나 역시 지역 최대의 재래시장 라보께리아가 있다. 1700년도 초반가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라보께리아는 이제 스페인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고 그야말로 없을 것 배고는 다 있는 곳이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신선한 야채, 근처 바닷가에서 갓 잡아 올린듯한 싱싱한 생선이 여행객들의 발목을 잡고, 관광객 뿐 만아니라 내국인들까지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이 지역의 식탁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라보께리아에선 스페인의 대표적 요리 하몽을 위한 돼지 뒷다리도 정겹게 나란히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되고 열대 과일도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어 5감이 즐거울 것이다.
우리가 보통 서양 음식하면 느끼함을 떠올리며 주변의 한식당을 찾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듯하다. 스페인 사람들의 입맛은 우리와 의외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카탈로냐 지방의 음식은 역시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스페인다운 음식으로 맛보지 않고는 당신의 오장육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중해 근처의 음식들이 늘 그렇듯 대체적으로 담백한 요리가 많고 기후가 온화해서 식재료가 다양한 것이 장점이다. 그러므로 미각여행에 초점을 맞춘 여행자라면 혀가 즐거울 것이다. 유럽은 토마토를 요리에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 스페인 식당에서 자주 나오는 판콘토마테가 있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한 판콘토마테는 시골풍의 빵에다가 잘 익은 토마토를 으깨어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조금씩 뿌려먹는 요리인데 이곳 사람들이 즐겨먹는다. 주변 식당 어디를 가도 이 요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얼마나 대중적인 요리인지 말해준다.

천재가 빚고 천재가 마무리한 계획도시

바르셀로나를 마음먹고 꼼꼼히 여행하기로 했다면 일주일도 벅찰 수가 있다. 그만큼 곳곳에 바르셀로나만의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곳이 관광지나 다름없는 유럽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르셀로나인데, 이곳이 기타 유럽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엇을 지녔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꾸준한 도시 계획과 투자이다. 가우디가 도시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지만, 가우디 이전의 천재가 있었기에 그의 천재성이 더 돋보였을 것이다. 바로 일데폰스 세르다라는 토목기사다. 1859년 세르다가 세운 바르셀로나 도시계획은 가우디의 천재성을 능가한다. 세르다의 도시 계획안에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사각형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 바로셀로나 시가지를 다른 말로 ‘에이샴플라‘라고도 하는데 정말로 그의 도화지에 가우디의 건축들은 점을 찍은 수준이라 할까?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 공원이나 아직도 건설 중인 성파밀리아 성당에 올라가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네모반듯한 두부처럼 정갈하게 놓여있는 건축들은 정갈함 그 자체를 보여준다. 특히 높이 또한 일정해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은 물론이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게 되면 마치 고고학처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애정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유를 꿈꾸는 누구에게나 바르셀로나는 열려있다. 가우디의 건축이 말해주듯 여행이란 자신의 색깔과 미지세계의 색깔이 서로 융합됐을 때 발하는 새로운 그 무었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바르셀로나 여행을 할 땐 길을 잃어라, 그것이 이곳을 여행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