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커피 CF 를 기억하는가 .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내게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로 그 광고 카피는 강렬했다 . 아마도 커피는 아니지만 , 그 카피 속의 커피처럼 내가 예찬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렇다 , 내게 있어서 내 인생을 걸고 예찬할 대상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여행일 것이다 . 작가 타테랑이 커피예찬에서 읊조렸다시피 커피 , 아니 여행의 본능은 내 인생에 있어 달콤한 유혹 , 그 자체다 .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조그마한 침대에 내 몸을 맡기는 순간 , 감긴 눈 속에서는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영화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곤 한다 . 일년이 지나도 , 아니 평생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강렬한 기억들은 대부분 집 안에서 만들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기만 하다 . 그렇다 , 집처럼 편안한 공간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짐을 꾸리는 순간 실감하면서도 항구를 떠나는 배처럼 새로운 세계로 항해해 나가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
어디선가 날 부르는 로렐라이의 노래가 귀를 유혹하고 , 열지 말아야할 판도라의 상자는 내 손길을 끈다 . 그 안에서 숨죽이고 나를 바라보는 붉은 빛 사과의 생생한 풍미까지 … 그 모든 것이 문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면 , 이것이 바로 , 여행이 바로 유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기차역 뒷편 왠지 기분마저 후줄그레한 뒷거리로 들어서면 악마처럼 날 유혹하던 창녀들의 눈웃음을 피할 수 없었고 , 수백년 전에 그려진 숱한 명작들을 볼 때면 내 가슴은 뭔지 모를 뜨거운 감동으로 가득 차곤 했다 . 이름도 모를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인간이 왜 신이란 존재를 기려 왔는지 어렴풋하게 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 충만감이 있었고 , 수줍게 엄마의 등뒤에서 빼꼼히 날 바라보는 해맑은 눈동자를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던 찰나가 있었다 .
그 순간순간이 , 그 시간시간이 하나하나 뇌리에 , 가슴에 새겨진다 …
하나하나 쌓여가는 황홀한 기억의 편린들이 어느 순간 내가 떠나온 항구마저 잊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도 망각하게 한다 . 인류가 만들어낸 환희의 걸작들과 자연이 빚어낸 시간의 명작들에 취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 그리고는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불현듯 떠올린다 . 내가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 , 내가 가야한다고 확신했던 길 ,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들을 …
으레 이런 순간이면 왠지 모르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이 별 일 아닌 것만 같다 . 태풍처럼 거대하다고만 느껴졌던 인생의 굴곡은 여행가에게 그저 클림프의 키스처럼 몽환적인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 지진처럼 격심하기만 한 일생일대의 선택조차 오늘 밤 어디서 자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할지 고민하는 방랑자에게는 고단한 하루의 끝에 마주하는 맥주 한잔에 씻겨져 버릴 안주거리일 뿐이다 .
항구를 떠난 배의 숙명인 것일까 . 집을 떠난 여행가란 이름의 조그만 돛단배는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다 . 또 다시 떠날 곳을 찾아 끊임없이 론니 플래닛과 지도 사이를 해메인다 . 잊었던 첫사랑을 떠올리고 , 애창곡을 되뇌이고 , 자주 들르던 단골 음식점의 바로 그 맛을 찾아 해매는 것 또한 숙명이라면 숙명인 것이겠지 .
여행이 낭만과 로맨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는가 .
여행이란 고생과 외로움으로 충만한 고행길이라고 느끼는가 .
당신에게 여행이란 무슨 의미인가라고 , 감히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답변을 준비하겠는가 .
피가로의 결혼 , 마적 등의 숱한 명작을 남긴 음악가 모짜르트는 30 대에 숨졌다 . 정확하게는 태어난지 불과 35 년 10 개월 9 일만에 생애를 마감했다 . 짧은 그의 생애 중 그가 여행을 한 기간은 무려 10 년 2 개월하고도 8 일 .( 노다메 칸타빌레 , 15 권 , 65p,Tomoko Ninomiya, 대원씨아이 ) 아버지의 손을 잡고 셀 수도 없는 유럽의 도시를 유랑하며 보고 듣고 먹고 만나는 그 모든 시간들을 통해 그의 음악은 조금씩 성숙해 갔으리라 .
그저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산악가들에게 여행이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행위 . 그 옛날 지구가 네모낳다고 믿던 시절 바다의 반대편을 향해 노를 젓던 선원들에게 탐험이란 말 그대로 인생을 담보로 한 무모한 도전 . 이미 거친 풍랑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를 셀 수도 없이 헤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 당신이 찾아 헤매는 것은 천국이라기 보다는 지옥일지도 모른다 . 당신이 만나고 싶은 이는 사실은 천사와는 거리가 먼지도 모른다 .
모짜르트의 10 년 여행에 있어서 명작들과 명예로 가득한 천국의 여정 못지 않게 , 그리고 완고한 아버지와 살리에르란 이름의 지옥이 함께 했듯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여행을 하지 않는 음악가는 불행하다 ” 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로 모짜르트에게 있어서 여행은 천국과 지옥이란 구분을 떠나 , 삶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비단 음악가 뿐이겠는가 . 어떠한 이유에서든 여행을 하지 않는 이는 불행하다 . 우물 안 개구리에게 그 우물이 진정으로 행복한 공간일 수 있는 것은 우물 밖의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 세상에서 우물이 가장 아늑하다는 경험에서 빚어지는 것이듯이 . 오죽하면 인류는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순간이라는 신혼을 집 밖에서 보내는 밀월 여행 , Honey Moon 이란 제도를 창조해 냈겠는가 !
결혼식장을 나오는 순간 시작된 여행은 때론 온 세상에서 마치 단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강렬한 추억을 남긴다 . 그의 미소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 그녀의 입술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 남은 생애에서 둘이 함께 해야 할 지옥처럼 뜨겁고 , 악마처럼 검기만 한 인생의 쓴맛은 이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으리라 . 아니 , 어쩌면 신혼여행은 바로 그 쓴맛을 잊을 수 있는 추억이란 이름의 진한 향기를 남기기 위한 짧은 단꿈인지도 모른다 . 부드러운 맛은 금방 사라질 지언정 진한 향기만큼은 두 사람의 생애를 통해 활활 타오를 테니까 .
세상에 본질적으로 동일한 커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 세상에 근본적으로 똑 같은 여행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 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유럽 어느 조그만 마을의 길거리일지라도 , 다른 이와 함께 걷는다면 그것은 다른 여행이다 . 같은 회사의 패키지 여행으로 마주한 홍콩의 야경 또한 여름과 겨울은 극명하게 다른 모습으로 당신과 마주한다 . 당신이 즐겨찾는 베이징의 바로 그 음식점 또한 당신의 기분에 따라 다른 맛의 메뉴를 선보인다 . 비록 같은 이름의 메뉴일지라도 . 당신의 여행은 무슨 맛인가 ? 당신의 여행은 무슨 향기인가 ?
당신이 여행의 맛과 향기에 대해 말했듯이 … 그래서 , 여행이란 유쾌하다 .
아니 , 어쩌면 그래서 인생이 즐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 인생을 논하기에는 28 년이란 시간이 짧다면 짧은지도 모르지만 삶의 3 분의 1 이란 시간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 여행만큼 유쾌한 일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 아니 , 여행이 재밌다고 느껴진다면 그만큼 인생이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 전공 수업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 과제물의 압박이 지독하면 지독할수록 여름방학의 여행은 찬란할 정도로 중독적이였으니까 .
와인 강좌를 듣던 중 재미있는 표현을 배웠다 . 샤또 마고 한잔과 캐비어를 먹어 봤다면 당신의 삶은 찬란했노라란 . 마셔도 구분도 못할 그랑 크뤼 일등급을 기울일 순간이 언제 올지는 모른다 . 삼대 진미라는 캐비어가 과연 내 입맛에 맞을지도 의심이다 . 그러나 , 사랑하는 이와 프로방스의 오솔길을 거닐고 , 일주일간 씻지도 못할 지언정 시베리아의 횡단 열차에 함께 올라 컵라면일지언정 배를 채울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감히 말하리라 . 내 삶은 찬란했노라고 . 와인보다 달콤한 그녀의 입술과 지옥처럼 뜨거운 그녀의 미소가 있었기에 .
당신의 삶을 찬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을 어디고 , 누구이며 , 무엇이건 간에 … 그것을 예찬하라 . 2014 년에는 .
글: 조명화 편집장/테마여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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