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시간여행 – 군산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과 완주에서 발원한 만경강이 서로 제각기 굽이굽이 흐르다 서해바다에 몸을 푼다 . 두 줄기 강으로 흘러드는 크고 작은 물길이 대지를 구석구석 적셔주고 있다 . 그 물길 옆에는 어김없이 비옥한 논이 있다 . 그곳에서는 벼가 자라고 있다 .

두 줄기 강물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군산이다 . 금강은 위에서 감싸주고 , 만경강은 밑에서 받쳐주는 형세이다 . 두 줄기 강에서 만들어진 쌀 또한 이곳으로 흘러든다 . 이 쌀은 다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간다 . 엄청난 양의 쌀을 부린 배는 그 만큼의 일본인을 태우고 다시 군산으로 돌아온다 .

군산은 충청지역과 호남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1899 년에 개항되었다 . 일제 강점기에는 이들 지역의 농지를 탐하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군산으로 몰려들었다 .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어찌 보면 아픔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 넓게 보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이다 .

히로쓰 가옥은 신흥동에 있다 .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의 고급주택지로 형성된 곳이다 . 1925 년 군산에서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며 큰 돈을 번 히로쓰가 지은 주택이다 . 일본 전통 무가 ( 武家 ) 형식의 주택으로서 , 2 층으로 지어진 본체와 단층으로 지어진 객실 채가 서로 비스듬히 붙어있는 구조이다 .

시원하게 뻗은 복도가 본채와 객실 채를 연결하고 있다 . 정원 쪽으로는 커다란 유리창이 , 안쪽으로는 다다미방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다 . 정원에는 100 년은 족히 넘었을 향나무와 각종 관목식물들이 석등과 석탑 등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다 . 지금 보아도 으리으리하게 느껴지는데 , 당시 초가삼간밖에 보지 못했을 조선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

금광동 나지막한 산자락에 동국사가 있다 . 현재까지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절이다 .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우리네 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 지붕은 가분수처럼 크고 뾰족하다 . 벽체는 흰 색칠과 갈색 기둥 그리고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 우리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탱화 한 점 , 단청 한 곳 눈에 띄지 않는다 .

본래 이름은 금강사 . 1909 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 ( 內田佛觀 ) 이 포교소를 개설했다가 , 1913 년 현재의 자리에 본당과 고리 ( 庫裡 ) 를 건축하였다 . 해방 후 김남곡 스님이 인수하여 동국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

해망동에는 월명산 끝자락의 해망령을 관통하는 굴이 있다 . 해망굴이다 . 1926 년 군산 내항과 시내를 연결하여 쌀과 물자를 빠르고 편리하게 항구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다 . 반원형으로서 길이 130m 높이 4.5m 에 이른다 . 이 굴 바로 위에 있는 월명공원에 오르면 군산 내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일제 당시 군산의 성격을 말해주는 동네가 있다 . 바로 장미동이다 . 장미는 장미꽃의 장미가 아니다 . 쌀을 쌓아 놓는다 ( 藏米 ) 는 뜻이다 . 쌀을 수탈하기 위해 군산을 개항했으니 이보다 더 군산을 대변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 이곳에 근대문화유산이 몰려 있다 . 채만식 소설 ‘ 탁류 ’ 에 나오는 은행원 고태수가 거들먹거리며 근무했을 법한 조선은행 군산지점 , 장기 18 은행 그리고 군산세관이 나란히 있다 .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현재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구조상으로는 2 층이지만 실제 높이는 4 층 가량 되어 보인다 . 당시 군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다 . 웬만한 조선인은 출입도 못했을 것 같고 , 설사 안으로 들어갔다 해도 그 규모에 질려 “ 헉 !” 하고 입이 딱 벌어졌을 법하다 .

조선은행 군산지점 옆에 장기 18 은행이 있다 . 현재 군산근대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그 뒤쪽 그러니까 항구 쪽으로는 미곡취인소가 있다 . 역시 작은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장기 18 은행 옆에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있고 , 그 옆에 옛 군산세관이 있다 . 흰 대리석 현관이 중앙에 있고 , 양 옆으로 붉은 색 벽돌 , 그 위쪽으로는 검은색 지붕이 있다 . 대한제국 말기인 1908 년에 지어졌는데 , 서양 건축양식이 도입되던 초창기 우리나라 근대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시원한 항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 조정래 소설 ‘ 아리랑 ’ 에 나오는 건달 서무룡이 항구를 주름잡고 , 보름이가 길가에서 떡을 팔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 그곳에 부잔교 ( 浮棧橋 ) 가 있다 .

이른바 뜬 다리 . 밀물 때는 다리가 떠오르고 썰물 때는 다리가 내려앉아 수위에 따라 높낮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선박 접안시설이다 . 군산 부잔교는 아직도 본래의 기능을 왕성하게 수행하고 있는 현역이다 . 1926 년부터 1938 년까지 4 기가 설치되었는데 , 현재는 3 기만 남아 있다 .

부잔교를 건너 정박시설에 올라가 보니 , 넓은 사각형모양의 부유체 여러 개가 쇠사슬로 , 강철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다 . 바닷물이 출렁거리니 살짝 현기증이 온다 . 과연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실감난다 .

< 여행정보 >
주차장 중심의 여행지 동선

( 이성당 이면도로 ) 초원사진관 – 히로쓰 가옥 – 고우당 – 동국사 – 벽화마을 – 이성당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군산세관 – 나가사키 18 은행 – 장미공연장 – 조선은행 – 부잔교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월명공원 주차장 ) 해망굴 – 흥천사 – 월명공원

( 이마트주차장 ) 경암동 철길마을

숙박

일본식 다다미방을 경험할 수 있는 고우당을 추천한다 . 워낙 인기가 좋아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

맛집

경암동 금강식당을 추천한다 . 군산 맛 집으로 유명한 계곡가든의 꽃게장이 가격대비 만족도가 떨어져서인지 , 착한가격의 금강식당 꽃게장백반이 급부상 중이다 .

빈해원 , 복성루 , 쌍용반점 같은 유명 중국집도 있는데 , 늘 북새통이고 친절함도 기대하기가 힘들다 . 이런 푸대접이 싫다면 무우국으로 유명한 한일옥이나 떡갈비가 일품인 완주옥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

전국 5 대 빵집 중 하나라는 이성당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 야채빵 , 단팥빵 , 양갱 , 코로케를 맛보며 피곤한 다리에게도 달콤한 휴식을 주자 .
글 사진: ⓒ 엄태성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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