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가득한 유불선 2박3일 여행

번잡한 서울에서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오니 새벽녘에 들기 시작한 봄비가 잠시 주춤한 사이로 온갖 소리가 들린다. 어제저녁부터 밤새 울던 소쩍새는 사라지고, 맹꽁맹꽁, 개골개골은 물론 꼬고대꼬고대, 까르륵까르륵, 삐쪽삐쪽, 쪼삣쪼빗, 자지러지듯 숨넘어가는 소리부터 기묘하게 꺾는 소리까지 온갖 소리 가운데 가장 꿩꿩 푸드덕 하이톤이 방안까지 울려 퍼진다.

그렇구나. 봄이구나. 이렇게 분주한 새벽을 맞이하는 시절이 봄밖에 더 있겠는가? 벌써 올 1월부터 유불선 체험하자고 연암당(燕巖黨)을 졸라 드디어 5월 황금연휴에 함께하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벗들과 함께 내려와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지극히 현대적인 것에다 아득한 미래를 더한 여행을 꿈꾸니 이 또한 생의 풍요로움을 더하리라.

서울에서 KTX로 영주역에 07:20에 도착하는 쁘랑스 아줌마와 이 작가, 서산과 수원에서 한반도를 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비켜 가로질러 오는 벗을 맞이하려 부산을 떠는 내 마음은 이른 새벽 숲을 가르는 새소리만큼 분주하다.

우선 내성천 자락에 있는 무섬마을로 가 S자 섶다리에 올라 고운 모래를 보고, 강 건너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즈넉한 기와집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한 후 소수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나라 최초 서원이 만들어낸 정원을 감상하리라.

굽이치는 내를 따라 아름드리 소나무가 더 매력적인 소수서원에는 한복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릴듯한 누각에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면서 오래된 습속을 핑계 삼아 퇴계를 디스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구태여 인문학에 젖지 않더라도 선하다.

암키와를 타고 내리는 빗물을 따라 흘러가면 우리 방금 왔던 무섬마을로 다시 돌아가리. 물이 그렇게 흘러가듯 사람도 빗물 따라 무심하게 흘러가리라.

지인이 꼭 먹어보라는 묵으로 만든 기이한 음식 ‘태평초’, 간간이 돌아가신 아버님이 즐겨 들던 음식을 지인들과 함께하다니, 이 또한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가 굳이 ‘유불선’ 체험이라고 애써 강조한 이벤트가 태평초를 이어 어울러지니, 오래 묵은 우리 민족 고유의 호흡을 통한 수련이다. 천부경은 물론 삼일신고 등 잊힌 고전에 해밝은 사범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로 봄비 사이로 잊혔던 나를 깨우쳐 주리라.

이제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기 전에 부석사에 오른다. 인간 세상을 구품으로 나뉘고 맨 꼭대기에 눌러앉은 무량수전에 기대어 잦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사바의 거대한 호수 위에 중생들이 오리가 헤엄치듯 무량수전으로 다가온다고 김삿갓의 허언을 실증하면서 선묘 아가씨의 지극한 정성이 담긴 법당 아래 해룡을 지그시 밟고 108배를 하리라.

이제 오늘을 하이라이트, 58년생 쁘랑스 아줌마를 펜션 큰방으로 모셔놓고 막걸리 한 잔을 건네면서 도라지 옛 위스키 한잔에다 낭만이 묻어나는 쁘랑스식 연애담을 밤늦도록 들으면서 소백산 밤그림자가 호수 위에 내려앉을 무렵, 물가를 따라 가득 피어난 수달래를 보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내일 무오사화의 난을 피해 낙동강 동편으로 스며든 한양조씨의 후손 조지훈 생가, 영해에서 태백산 건너 퇴계의 제자가 재령이씨 이문열 생가, 담양 소쇄원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서석지(瑞石池), 미스터 션사인의 만휴정(晩休亭)에 들러 이병헌과 김태리의 러브스토리 장면을 재현하면서 남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느끼고 안동구시장에서 찜닭으로 2박3일 일정을 마무리 하리다.

글 사진: 윤일원/칼럼니스트